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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성정으로 김홍도 윤두서 해석 가능
기본 성정으로 김홍도 윤두서 해석 가능
  • 지상현 한성대 시각영상디자인전공
  • 승인 2011.05.09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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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에 나타난 '한국인의 마음'

 

예사롭지 않은 대비를 통해 현대미를 발산하는 일본 민예관에 있는 삼단함
‘감성’은 필자의 오랜 화두였다. 감성은 이성의 뒤에 숨어 우리의 판단과 행동을 조정한다. 필자가 대학과 대학원에서 미술과 심리학 양쪽을 전공으로 삼은 이유도 아름다움의 이유, 감성을 파악하기 위해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처음에는 아름다움에 대해 생겼던 호기심이 시간이 흐를수록 감성에 대한 그것으로 확장된 것이다.

 

  감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인간과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없다고 하지만, 감성을 명확히 정의하기는 쉽지 않다. 필자가 가장 명쾌한 정의로 꼽는 것이, 은사이기도 한 지각 심리학자 정찬섭 교수의 “비인지적 내적상태”다. ‘비인지적’은 감성의 원인을 명확히 인식하거나 의식적으로 통제하기 힘들다는 뜻이다. 예컨대 명화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수는 있지만 그 마음의 작용을 어떻게 인지할 수 있겠는가.

  감성의 작용을 밝히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가 두가지 있다. 하나는 감성을 유발하는 대상, 예컨대 미술품의 지각적 특징들을 체계적이고 객관적으로 기술할 수 있는 일종의 언어가 있어야 한다. 음악은 악보라는 기술체계를 갖고 있다. 그러나 미술에서는 워낙 변수가 많아 그런 체계를 개발하기가 쉽지는 않다.

  그 동안 필자도 미술양식 기술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해왔지만 아직 만족스러운 수준에 이르지는 못했다. 약간의 성과가 없지는 않은데, 그 덕에 우리 미술의 몇 가지 특징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예컨대 다분히 수사적으로 사용되던 대비나 색상중심 대 형태중심이라는 개념을 명확히 규정해 객관적 지표로 삼을 수 있었다. 이 대목은 『한국인의 마음』(사회평론, 2011)이라는 책을 쓰는데 큰 보탬이 됐다.

우리민족의 지배 감성을 찾아서

  다른 하나는 감성이 대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슬픔, 공포 등과 같은 정서(Emotion)와 달리 감성은 은근하게 작용해, 그 정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필자가 파악한 것은 감성의 생성에 관여하는 것으로 밝혀진 몇가지 기제 정도다. 그중 하나가 심리적 욕구다. 심리적 욕구는 한 개인의 생각에 지향성을 주어 특정 감성을 선호하게 한다. 이 특정 감성에 대한 선호는 성격으로 이어진다. 이런 논리를 확대한 것이 민족의 지배감성이다. 다시 말해 비슷한 환경에서 성장한 민족 구성원은 유사한 심리적 욕구를 갖게 되고 유사한 감성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민족의 지배 감성에 따라 역사적 경험이나 지배이념, 종교 등을 받아들이는 방식은 달라진다. 그리고 이것이 문화를 형성하는 바탕이 된다.

  이렇게 해서 필자의 또 다른 관심사는 우리 지배감성을 파악하는 것이 됐다. 현대 미술이나 디자인을 대상으로 지배 감성을 분석하다 보면 때로 시원으로 내려가 이 문제를 짚어보고 싶어진다. 그리고 이 대목에서 오래 전부터 풀리지 않는 궁금증이 하나 있었다. 우리 미술의 지배감성에 대해 매우 상반되는 평가가 있다는 것이다.

 한쪽에서 ‘신명, 흥, 열정’으로 한국미술의 감성을 표현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한(恨), 적조, 검박의 미’ 같은 표현을 빠뜨리지 않는다. 두 감성은 한 나라 미술의 특징이라 하기에는 너무 극에서 극이다. 필자는 그래서 두 표현이 모두 지엽적인 특징일 뿐, 우리 미술 전체를 관통하는 또 다른 감성의 맥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또 하나 걸리는 대목이 있었다. 필자는 우리 고미술품에서 종종 피카소나 몬드리안, 마티스의 그것과 유사한 현대성을 느껴왔다. 다만 현대미술이 회복하고자 하는 것의 하나가 생명력 넘치는 원초적 미의식이기에, 여느 민족의 고미술품도 어느 정도 현대적 특징을 보이기 마련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1년여간 일본에 머물면서 그곳과 우리의 미술품을 비교해보니 그게 아니었다. 일본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운, 중국에서는 간혹 발견되는 유형의 현대적 양식특징을 우리 미술품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두 개의 생각이 만난 지점에서 쓴 것이 “한국인의 마음”이다.

  왜 우리의 고미술품, 특히 민예품에서 현대적 양식특징들이 자주 발견되는 걸까. 민예품은 고급미술과 달리 당대의 미적 규범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법이다. 그래서 민족의 기본 성정이 잘 배어 있고, 현대성의 비밀도 그 성정에 있을 것이라는 가정을 하게 된다.

  우리 미술품에서 발견되는 현대적 양식특징들은 몇 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었다. 강한 대비, 기하학적 단순성, 윤곽의 해체 등이 그것이다. 예컨대 일본 민예관에 있는 삼단함은 흐트러짐과 단정함의 예사롭지 않은 대비를 통해 현대미를 발산하고 있었다. 그림에서 보는 것처럼 삼단함의 형태는 단정하고 단순하다. 정밀하게 재고 섬세하게 다듬었다는 것을 한 눈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채색은 거칠고 간단하다. 이런 대비를 책에서는 작위와 비작위의 대비 혹은 단정함과 흐트러짐의 대비라고 했다.        

 통상 고미술품에서 발견하는 대비라고 하면 색상대비 정도다. 심리학 용어를 빌어 표현하면 지각적 대비에 속한다. 반면 삼단함에서 보는 대비유형은 인지적인 것이고 현대에 이르러서야 여기저기서 발견된다. 예컨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을 보면 육중하고 거칠며 단단한 콘크리트와 가볍고 매끄러우며 깨지기 쉬운 유리의 대비를 통해 현대인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 인지적 대비는 지각적 대비에 식상 했을 때 새로움을 찾는 과정에서 나타난다. 오래된 미술에서는 보기 힘들 수밖에 없다.

 

안도 다다오가 디자인한 놋본기의 디자인 박물관. 유리와 노출 콘크리트의 대비를 처음 선 보인 건축가가 안도 다다오다.

 

민예에 나타난 조울증형 문화의 정체

  어떻게 이런 현대적 양식특징들을 우리 민예품에서 볼 수 있는 것일까. 우리 미의식이 그렇게 선진적이었기 때문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이 대목에서 만난 것이 病前 기질로서의 조울증형 문화였다. 躁와 鬱 상태가 교차하는 조울증형, 다시 말해 매닉친화형 성격을 가정하자 ‘신명, 흥, 열정’ VS ‘한, 적조, 검박’이라는 양립하기 어려워 보였던 특징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감정이 격앙되는 조의 상태가 만든 것이 신명과 열정의 문화이고 가라앉는 울의 상태가 만든 것이 한, 적조, 검박의 문화가 되는 셈이다. 그리고 우리 미술의 현대적 특징은 바로 두 문화의 상호작용 속에서 탄생한 것으로 보였다. 반면 멀고도 가까운 이웃, 일본은 울의 상태가 강한 멜랑코리 친화형 성격으로 보였다.

  강한 색상대비의 단청, 요란한 색채의 사천왕상, 목어 등에서 보는 열정과 신명, 김홍도의 그림, 민화에서 보는 해학이 모두 조의 성정이 만들어낸 양식이요 감성이다. 반면 인제 강희안, 심수 이정근의 그림에서 보는 무위와 순응의 미술, 화엄사의 귀고주나 담양 소쇄원에서 보는 천연주의, 윤두서 등 조선시대의 초상화나 석굴암의 석조 등에서 보는 강박적 정교함은 울의 성정에서 비롯된 감성이요 양식이라 할 수 있다.

 다소 생소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매닉친화형이라는 한국인의 기본 성정은 현대문화의 기저에서도 계속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그 위에 얹힐 역사적 경험이나 이념이 만들어내는 문화적 지형에 영향을 주는 방식으로 말이다.

지상현 한성대 시각영상디자인전공

지상현 한성대 시각영상디자인전공

 

필자는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연세대에서 심리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심미적 아름다움과 감성을 주로 연구하고 있다. 『시각 예술과 디자인의 심리학』, 『한국인의 마음』등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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