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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레티아, 브루투스 그리고 '광주'의 택시 기사
루크레티아, 브루투스 그리고 '광주'의 택시 기사
  • 안재원 서울대 HK연구교수
  • 승인 2011.04.25 18: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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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 담론을 재조명한다_❶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로마 공화국의 역사적 기원

최근 학계에서 이어지고 있는‘공화주의 담론’은 국가와 개인, 국가와 공동체의 관계를 사유하면서, 현실적으로는 어떤 국가를 구상할 것인가라는 실천적 문제의식을 동반하고 있다는 점에서 재조명이 필요하다. 598호‘공화주의 담론을 재조명한다’에서는 공화주의의 서구적 기원을 짚고, 다음호부터는 국가와 국가-공동체, 국가와 개인의 관계 설정을 따지면서, 프랑스나 미국 학계에서의 공화주의 논의, 새로운 국가건설과 민주주의 문제를 검토하고자 한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2010년 12월 17일에 일어난 일이었다. 한 청년이 있었다. 이름은 모하메드 부아지지(MohamedBouazizi, 1984.3.29~2011.1.4)였다. 부아지지는 길거리에서 과일과 채소를 판매하는 노점상이었다. 그런데, 판매 허가를 받지 않은 일이라 해서 경찰이 과일과 저울을 빼앗고 청년에게 폭행까지 가했다. 이에 항의하고자 청년은 몸에 불을 붙였다. 그런데, 이 불은 그 자리에서 꺼지지 않았다. 그 불은 청년의 나라 튀니지로 번져 나갔고, 엄청난 속도와 위력으로 북아프리카를 휩쓸었으며, 지금은 아랍의 중심부로 밀고 들어가고 있는 중이다. 혹자는 이 불길을‘재스민’혁명이라 부른다.

‘재스민’이란 이름은 튀니지의 國花에서 유래했다. 그런데,이 불길이 리비아의 카다피라는 자에게도 덮쳤다. 이 자의 말이 가관이다. ‘시위는 범죄 조직의 소행’이라 떠들어댄다. 불길을 막아 보려 안간힘을 쓰는데, 그게 잘 안 되는 모양이다. 좋다. 그런데, 정녕‘재스민’불길은‘범죄 조직의 소행’일까.

그러면, 이와 유사한 사건을 하나 소개하겠다. 때는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이다. 1980년 5월 17일 광주에서 일어났다. 사실, 나는 그 자리에 없었다. 해서 이 사건을 다룬 영화를 한편 소개하겠다. 「화려한 휴가」라는 작품이다.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전남 도청을 빠져 나온 남자 주인공이, 공수부대원들이 겨누는 총 앞에서, “나는 폭도가 아니다”라고 절규하는 장면이다. 남자는 튀니지의 부아지지처럼 평범한 청년이었다. 직업은 택시기사였다. 소박하고 인간적인 사람이었다. 이런 청년이 마지막으로 외친“나는 폭도가 아니다”라는 말이 기억에 생생하다. 물론 자신이 폭도로 몰린 상황에서 광주의 택시기사는 자신의 행위를 말로 정당화할 수 있을 만큼, 자신의 행위에 대한 평가와 의미를 재구성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지식인은 분명 아니었다.

국가는 한 개인의 사적 왕국이 아니라 ‘공동의 나라’

어쩌면, 「국민교육헌장」에 입각한 국민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서 영화 주인공인 택시기사도 물론‘자유’,‘ 민주주의’, ‘공동체’에 대한 말은 들어서 알고 있는 정도는 아니었나 싶다. 어쨌든, 광주의 사내는, 영화에서 보여주듯이 ‘이주일’ 주연 영화에 감동해 눈물을 흘리는 소박한 시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부터다. 이런 소박한 청년이 영문도 모른채 자신의 가족과 동료들이 무자비하게 학살당하자, 자동적으로 총을 들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런 행위를 어떻게 해석하고 어떤 의미로 평가해야 할까. 이해를 돕기 위해서 이와 유사한 사건을 하나 더 들어보겠다. 그런데 역사를 조금 많이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기원전 510년에 일어난 일이다. 이에 대한 키케로의 보고다.

“여기에서부터다. 저 새로운 전환이 비롯됐다. 자연적인 운동의 순환과 방향을 저 발단에서부터 살펴보고 통찰하기를! 이것이야말로 국가(civitas)에 대한 통찰을 얻을 수 있는 핵심 사건이다. (중략) 내가 말한 저 왕, 타르퀴니우스 수페르부스는 일찍이 아주 뛰어난 선왕을 살해했다. 때문에 종종 두려움에 떨곤 했다. 자신이 저지른 비행으로 인해 받게 될 중벌에 대한 두려움에 시달린 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두려워 하도록 만들기로 생각했다.

그는 전쟁에서 얻은 승리와 재산을 믿고서 극도의 오만함으로 자신을 과시했고 자신의 난폭한 성격과 욕정을 제어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그의 큰아들이 콘라티누스의 부인인 루크레티아를 강제로 겁탈하게 된다. 고귀하고 정숙한 여인이었던 그녀가 저 불의의 폭행에 맞서 죽음으로써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게 된다. 그순간 이를 보고 한 남자가 의연히 일어난다. 그가 바로 덕과 능력에 있어서 탁월한 사람이었던 브루투스였다. 그는 질곡의 노예 상태에서 시민들을 구원한 사람이었다. (국가로부터) 어떤 공직도, 어떤 중책도 맡고 있지 않은 私人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는 공동체 전체를 구했고, 시민들의 자유(libertas civium)를 지키는 일에 있어서는 公私의 구분이 없다는 것을 가르친 최초의 인물이다. 그를 중심으로, 그의 주동을 통해서 함께 일어선 국가(concitata civitas)는 가깝게는 루크레티아의 아버지와 그의 친척들이 낸 탄원을 받아들여서, 멀리는 타르퀴니우스 왕의 폭정과 그 자신과 그의 자식들이 저지른 수많은 범법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 왕과 자식들은 물론 그의 일가를 추방하는 명령을 내렸다.”(키케로『공화국론』제2권 45~46 장)

루크레티아 사건 자체는 여느 나라의 역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한 폭군이 있었다. 폭정에 시달리다 못해 반란 내지 혁명이 일어나고, 폭군은 추방되고 덕과 능력을 겸비한 새로운 왕이 들어서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나야 하는데, 키케로가 보여주는 루크레티아 사건은 매우 특이하다. 얼핏 보기엔 타르퀴니우스라는 오만한 폭군의 폭정을 물리치는 쪽으로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핵심은 루크레티아라는 한 여인의 폭행 사건 속에 들어 있는 사건의 본질에 대한 브루투스의 통찰에 있다. 그것은 국가란 한 개인의 사적 왕국(res privata)이 아니라 공동의 나라(res publica)라는 사실이다. 그런데 원래는 공동의 나라인데, 이를 개인적으로 사유화한 왕의 아들이 공동체에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즉 로마 시민의 공동체에 속하는 한 여인이 겁탈당했는데, 이는 단순히 한 여인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공동의 나라에 대한 폭행이라는 것이다. 이는 비록 한 사람의 사건이지만,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 사건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는, 공직에 있든 없든 관계없이 로마 시민이라면 의당 일어나서 싸워야 하는 문제라고 한다. 루크레티아라는 한 여인의 일이되 그것은 또한 공동의 일이기에. 한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될 때, 그것은 공동체에 대한 심각한 침해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로마라는 국가-공동체는 탄생했다. 시민의 자유(libertas civium)가 침해되는 순간, 그의 자유를 지켜주기 위해 이에 대응하기 위해 ‘함께 일어선 공동체(concitata civitas)’, 이 때 로마라는 국가-공동체가 자동적으로 발동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자동적으로 ‘함께 일어선 국가(concitata civitas)’의 성격이다. 그것은 政體, 즉 주권과 권력구성의 문제를 포함하는 의미에서의 국가의 구성조건, 가능조건이다. 요컨대, 아리스토텔레스나 로마 전통에 의한 구분, 즉 공공의 영역으로서의 폴리테이아(politeia)와 사적 영역인 오이코스(oikos)의 구분, 또는 폴리테이아(공동의 통치)와 튀란니스(tyrannis, 사적 지배)의 구분으로부터 ‘공공의 것은 공공의 것으로’를 원칙으로 하는 ‘국가-공동체(res publica)’개념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적 지배의 왕정에 대한 대립 개념으로서 주권구성을 요체로 하는 근대 국가의 기본 母型이 브루투스가 호소해서 일어선‘국가-공동체’에서 발견된다 하겠다.

‘시민의 권리’지켜야 할 의무를 지닌 국가-공동체의 등장

물론 이 공동체는 제도적 형식으로서 완성된 조직체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정체로서 공화정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다. 이 공동체는 제도적 형식으로 한 조직체를 지칭하는 의미의 국가라는 제도가 성립하기 위해 선행돼야 하는 구성조건으로 요청되는 개인과 공동체와의 관계 규정에서 성립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니까 브루투스가 호소하고 주동하고 있는 이 국가-공동체는 시민의 자유와 권리가 침해 받을 때, 보호를 요청할 수 있는 일종의 의지(voluntas)와 의식(conscientia)의 산물로서의 국가-공동체이다. 시민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지켜 줘야 하는 의무를 지닌 새로운 종류의 국가-공동체가 역사의 지평 위에 등장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함께 일어선 국가’, 즉 국가-공동체는 왕을 몰아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데, 그 힘이 바로 개별 시민의 總體인 로마 인민에게만 주어진 권리(ius populi Romani)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비록 한 여인의 폭행 사건을 계기로 촉발됐지만, 결론적으로 로마는 이와 같은 로마 인민의 권리에 기초해서 사적인 왕국(res privata)에서 공동의 나라(res publica), 즉 공화국으로 전환하게 된다. 폭행 사건이 난 후 일년 뒤인 기원전 509년이었다.

다시「화려한 휴가」로, 튀니지로, 리비아로 돌아가자. 공화국이라는 국가-공동체가 로마에서 발견된 지 어언 2500여년이 지났지만, 루크레티아 사건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키케로가 말하는 ‘새로운 전환’은 시작만 됐지, 아직 완결되지 않은 역사임이 분명하다. 각설하고, 그렇다면 영화에 나오는 택시기사는 누구일까. 단지 광주에 살았던 한 사람이었을까. 아니다. 헌법 제1조가 보장하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었기에, 그는 한 시민이었다. 바로 이 대목에서 간과해서는 안 될 사실이 하나 있다. 그가 시민인 한, 광주의 택시기사가 바로 ‘함께 일어선 국가’였다는 사실. 그런데 실은 튀니지의 부아지지가 바로 그였고, 거슬러 올라가면 로마의 브루투스 또한 바로 그였다는 사실. 그것이다.

안재원 서울대 HK 연구교수

필자는 독일 괴팅엔대에서 철학 박사를 받았다. 키케로의『수사학』의 역서와「키케로의 인문학에 대하여」등 다수의 논문을 저술했다. numeniu@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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