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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학의 상대주의와 해체주의의 음모론을 넘어서
인문사회학의 상대주의와 해체주의의 음모론을 넘어서
  • 민문홍
  • 승인 2011.04.18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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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몽 부동과 한국 사회학 중흥의 조건
민문홍 서강대 대우교수·사회학
프랑스 자유주의 사회학자인 레이몽 부동의 명저『사회변동과 사회학』(한길사)이 번역됐다. 옮긴이인 민문홍 서강대 대우 교수는 이 책이 한국 사회학자들에게 커다란 호소력을 지닌다고 말하면서 한국 인문사회학의 중흥 조건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과연 어떤 측면에서 가능성이 있는지 민 교수로부터 직접 들어본다.

21세기 들어 사회학 이론은 크게 표류하고 있다. 이러한 지적 상황 속에서 유럽의 인문사회학자들과 지식인들의 관심을 가장 크게 끌고 있는 이론이 프랑스의 석학 레이몽 부동(1934~)의 사상체계이다. 그에 의하면, 21세기 이후 사회학을 포함한 인문사회학은 지식인들과 시민사회 구성원들에게 특정 사회의 가치관과 사회질서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는 시대정신 (또는 소명의식이 담긴 지식인 공동체의 새로운 지적표준)을 더 이상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레이몽 아롱과 칼 포퍼를 이어, 2008년 유럽에서 사회학의 노벨상이라 불리우는 토크빌 상을 수상한 부동교수는 인문사회학 연구의 부흥을 위한 아래의 몇 가지 적극적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방법론적 개인주의의 함의

첫째, 현대사회의 사회변동 현상을 올바로 진단하고 분석할 인식론적 (또는 방법론적) 기초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인식론은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큰 학문분야이기 때문이다. 부동은 사회과학자들이 1950년대 초에서 1980년대 초반까지 생산해 낸 기존의 사회변동이론들이, 옛 철학자들이 19세기 중반까지 발견하려고 애썼던 특정한 역사법칙을 찾으려 함으로써 사회과학의 지위에 대해 인식론적으로 혼동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본다.

따라서 이들 대부분은 사회현상에 대한 규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증명할 프로그램을 가지고 성급하게 사회현상에 관한 일반적 법칙을 발견하고, 그 법칙에 입각해서 장래에 나타날 사회현상들을 예측·통제하려 함으로써, 이른바 포퍼가 말한 역사주의적 환상을 제공해 왔다고 본다. 그런데 최근 30여 년간 쏟아져 나온 일련의 사회변동이론들-근대화이론에서 세계체제론까지-이 독자들에게 역사주의적 환상을 불러온 것은, 그들이 과학적 기준에서 보았을 때 잘못된 사고형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그 이론들의 논리적 지위가 독자들은 물론 그 이론들의 저자들에 의해서도 잘못 인식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이론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지 못한 과학적 지위를 과시함으로써, 독자들과 인문사회학자들에게 그들이 내포하고 있지 않은 해석과 믿음을 불러일으키고, 사회변동 현상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데 커다란 혼란을 불러일으켰다고 본다.

둘째, 인문사회학은 19세기 후반 이후 그들을 위협해왔으며, 20세기 후반 이후 지구촌의 시민들로 하여금 편견에 크게 사로잡히게 만든 반인본주의(antihumanism)와 상대주의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상대주의 철학이 1세기에 걸쳐 도처에 뿌려놓은 폐해의 원인을 그 역사적·사상사적 근원부터 추적해, 그것에 대한 확고한 학문적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부동은 현대 사회의 이념 갈등의 중심에는 상대주의적 가치관으로 무장한 인문사회학이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제 현대사회에 와서 이들의 학문의 지위는 너무 확고해져서, 오늘날 상대주의적 가치관은 다른 모든 인문사회학의 지적 생산물들을 공통적으로 평가하는 하는 기준이 됐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이 문제가 더 심각한 이유는, 오늘날 상대주의가 인문사회학에 있어서 가장 진지한 평판을 가져온 학문적 연구들-인류학, 사회학, 심리학, 사회심리학 그리고 철학들-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대주의적 가치관의 확산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학문들이 마르크스주의, 니체주의, 정신분석학, 구조주의, 후기 구조주의와 해체주의였다. 상대주의 철학은 반세기 전부터 서구사회 엘리트들에게 특권적인 세계관으로 받아들여졌다. 부동은 상대주의 철학이, 다른 모든 이데올로기처럼 개념적 일탈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전제한 후, 이것을 인내심 있게 해체하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본다.

상대주의 철학이 진정한 인문사회학 지식을 세우는 데 커다란 장애가 되는 이유는, 이 철학이 인간의 의식을 맹목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일상적 지식’이 세상에 대해 무지하다고 생각하며, 상식을 사회구조가 만들어 낸 환상의 조작에 불과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부동은 이때부터 인문사회학이 일상적 삶 속의 지혜인 상식을 거부하면서, 현대사회의 지적인 혼란을 부추키는 데 부정적 의미로 크게 기여했다고 본다. 따라서 인문사회학의 중흥을 위해서는 토크빌, 막스 베버, 그리고 짐멜 같은 위대한 고전적 사회학자들의 이론적·방법론적 전통을 다시 해석함으로써 상대주의 철학이 크게 오염시킨 기존의 인문사회학을 새로 만들 필요가 있다. 그리고 이 작업에 선행돼야 할 작업은 사회과학의 구조적 법칙탐구를 거부하면서, 인문사회학을 중심으로 잘못된 사회제도나 거시적 현상에 시민과 정치인 또는 지식인이 상당한 책임이 있음을 적극적으로 가르쳐 주는 것이다. 이것이 그가 주장하는‘방법론적 개인주의’의 정치적 함의이다.

셋째, 이 작업을 위해 사회학은 지금의 대안적 세계관을 제시하지 못하는 맹목적·경험적 사회학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 위기에 처해 있는 인문사회학은 단순한 기술주의(descriptivism) 이상의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사회학은 1990년대부터 면접이나 참여관찰 같은 조사방법을 사용하는 작은 규모의 경험적 연구들을 양산하는 데 열중한 나머지, 전통적인 중요한 이론적 질문들을 포기해 왔다. 특히 1970년대 미국에서 태어난 민속학 방법론(ethnomethodology)의 부분적 영향을 받은 작은 규모의 경험적 연구들은 이제 사회학 공동체에서 거의 성스러운 모델의 위치를 점유하게 됐다. 그리고 이러한 연구 풍토의 변화는, 사상사적 관점에서 볼 때 마르크스주의와 구조주의가 심어놓은 환상의 쇠퇴와 함께 인문사회학의 새로운 학문적 대안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회학 연구방향의 이러한 변화과정-이론적 문제의식 없는 경험적 연구의 활성화-은 장래 사회학 공동체의 진정한 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모습이 아니다. 어떤 과학이든 기초 이론적 연구와 경험적 응용연구를 병행해야만 연구방향을 잃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게다가 지식시장의 이러한 왜곡된 구조화는 사회과학의 생산에 부정적으로 큰 영향을 끼쳤는데, 진지한 이론적 사유가 사라진 공간에 포스트모더니즘 이론이라는 이름으로 울리히 벡의『위험사회』라든가 바우만의『유동성 사회』같은 문학적 평론들이 건설적 대안 없이 후기 현대사회의 침울한 모습을 다시 그려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주 통탄할만한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접근방식만으로는 후기 현대사회가 직면한 심각한 문제들을 진단하고 처방을 제시할 수 없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사회학은 고전사회학 이래 소중히 간직돼왔던 이론적 문제의식과 방법론-로버트 머튼적 의미의 중범위 이론과 방법론적 개인주의-으로 다시 무장해야한다. 그래서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는 거시적 사회현상들(시민들의 왜곡된 믿음, 상대주의적 가치관, 잘못된 평등관 등)을 과학적으로 올바르게 진단하고, 거기에 적합한 정책적 처방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위의 문제의식을 가지고, 현대민주주의의 위기와 그 인문사회학적 기초에 대한 분석과 진단을 다시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부동에 의하면, 현대 민주주의는 프랑스 엘리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신성한 종교적 교리로서의‘국민주권론’이 아니라, 일반시민들이 정치지도자들과 함께 끊임없이 소통하며 지속적으로 만들어가야 할 프로그램으로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직된 민주주의관에서 탈피할 때에야 우리는 비로소 무기력한 정치관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함께, 기존의 대의민주주의제도를 대체할 새로운 우월한 민주주의제도가 있을 것이라는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다.

우리는 기존의 민주주의 제도가 만족스럽지 못할 때, 참여민주주의를 대안으로 내세우거나 삼권분립의 원리를 더 명확히 하고 대통령의 권위를 축소시키기 위한 다양한 조치들을 도입하려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나 여기서 문제 해결의 핵심은 의회와 정부의‘성찰적 노력의 과정’을 통해 최선의‘공공이익’(루소가 말한 의미의 일반의지)을 찾아내는 것이지, 새로운 제도를 형식적으로 도입하는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공익을 대표하는 여론과 괴리된 소수 집단들이 일방적으로 주도하는 정치를 보면서,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쉽게 부정하고 그 대안으로 환상적인 또 다른 민주주의 제도를 찾으려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이 경우 정치사회학자들의 과제는 대의민주주의 제도를 또 다른 우수한 제도로 바꾸는 대신에, 그것을 더 나은 제도로 개선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균형잡힌 새로운 사회변동관 제시할 때

나는 지난 20여 년간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주요한 이념 논쟁과 좌우 이데올로기 논쟁이 어떤 점에서는 현대사회 변화의 흐름을 읽는 사회변동관의 대립이었다고 본다. 한국사회는 60년대부터 30여 년간 압축 성장을 하고, 최근 10여 년간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서 새로운 발전모델을 찾는 진통을 겪었다. 그러나 이 작업은 용기와 열정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뼈를 깎는 성찰을 필요로 한다. 그리고 동시에 현대 사회과학의 축적된 학문적 업적들에 기초한 균형 잡힌 사회변동관을 요구한다. 한국사회가 기본적인 헌법 이념에 대한 해석적 합의도 이루기 어려울 정도로 이념논쟁이 극렬해지고, 중·고등학교 교과서까지 이데올로기 논쟁의 치열한 싸움터가 된 것은, 우리가 한국사회의 발전과정에 대한 뚜렷한 이념적 정체성 없이 압축 성장에만 매진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지난 10여 년간 이념적 혼란 속에 빠져 있었던 것은, 21세기 한국의 이념적 정체성과 새로운 발전 모델을 찾는 작업에 게으른 채, 경제규모만 키우는 불균형 성장에만 몰두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이 그 경제적 위상에 걸맞는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이제 사회·문화·정치적으로도 성숙한 사회가 돼야 한다. 그리고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있는 보수와 진보진영의 이념 투쟁을 넘어서 양진영이 서로 합의할 수 있고,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을 넘어서는 한국사회의 바람직한 발전모델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적 작업이, 21세기 세계사회학 공동체의 사상사적 변화 흐름을 읽어 내면서, 한국사회학 공동체에 균형 잡힌 새로운 사회변동관을 제시하는 것이다. 이 점에서 부동의『사회변동과 사회학』은 한국사회의 급격한 변동현상을 읽어내고, 21세기를 선도하는 대한민국을 세우는 데 가장 적실성 있는 방법론적 성찰을 제공하는 귀한 사회학 고전이 될 것이다.

민문홍 서강대 대우교수·사회학

필자는 파리 소르본대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신학대학교 교수 및 서울대 국제대학원 책임연구원을 지냈다. 주요 저서로 『현대사회학과 한국사회학의 위기』,『 에밀 뒤르케임의 사회학』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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