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1:45 (금)
“학생들 잘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데…낯을 들 수 없다”
“학생들 잘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데…낯을 들 수 없다”
  • 김봉억 기자
  • 승인 2011.04.11 09: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차등수업료’ 폐지 밝힌 카이스트, 어디로 가나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
“가슴 아픈 일이 잇따라 생겨 너무 안타깝지만 단편적으로만 봐서는 안 된다. 복잡한 문제다. 가장 민감한 나이의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지도해야 하는 것이 대학의 할 일 가운데 하나인데 4명이나 이렇게 됐다는 것에 총장으로서 정말 낯을 들 수가 없다.”

서남표 카이스트 총장(75세,사진)은 4명의 카이스트 학생이 연이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지난 7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서남표 총장은 “연이은 사건으로 지금 카이스트는 개교 이래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그 구체적인 사유를 불문하고 있어서는 안 될 일들이 카이스트에서 벌어지고 있는 지금의 상황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 학부모님들께, 학생들에게 머리 숙여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라고 말했다.

이날 카이스트는 학사운영 개선방안을 내놨다. 카이스트는 학점 3.0 미만을 받은 학생들에게 최저 6만원에서 최고 600만원까지 차등적으로 수업료를 부과하는 ‘징벌적 등록금제’를 폐지하기로 했다. 이균민 카이스트 교무처장은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되면서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입학하고 있기 때문에 성적만을 근거로 수업료를 부과하는 것에 변화를 줘야 한다는 판단 아래 조정안을 마련했다”고 전했다. 최종적으로 마련된 안은 학부 4년간은 수업료를 면제하지만 연차를 4년 이후에는 한 학기당 150여만 원인 기성회비와 600만원의 수업료를 모두 내도록 하는 방안이다. 학내 구성원들의 동의와 교육과학기술부 협의를 거쳐 확정할 예정이다.

신입생 대학생활 적응 프로그램도 확대할 계획이다. 더 많은 교수와 대학원생이 프로그램에 참여해 신입생들과 더욱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도록 할 방침이다. 최병규 교학부총장은 “담임교수와 지도선배가 멘토가 돼 신입생의 전반적인 대학생활을 관리하고 조언하는 프로그램을 2~3학년까지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신입생이 수강해야 하는 5개의 기초필수 과목을 줄이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최 교학부총장은 “인간적이고 실험적인 교육방법을 최종적으로 8월말까지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카이스트 재학생의 학내 커뮤니티인 ‘아라’에서는 ‘전 과목 100% 영어수업’ 폐지와 재수강 개수제한 폐지,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 전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최 교학부총장은 “영어강의는 양면성이 있는데 학생들의 글로벌화를 위해 불가피한 면이 있다. 조교들이 별도의 연습시간에 지도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며 “과학고, 인문계고, 전문계고 출신 학생들을 서로 다른 틀로 평가하는 방안 등도 다각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서남표 총장의 진퇴여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일고 있다.
조국 서울대 교수(법학전문대학원)는 지난 8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카이스트 학생이 네 명 자살한 후에야 서남표 총장은 ‘차등수업료제’ 폐지를 발표했다. 학생을 ‘공부기계’로 만들려고 수업료로 위협하며 비극을 낳게 한 장본인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서남표 총장은 학생자살이 계속되는데도 ‘명문대생은 압박감을 이겨야 한다’는 대학생 메시지를 보냈다”면서 “일응 맞는 말이지만, 교육자로서 할 얘기는 아니었다. 대학은 공장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카이스트 학생의 상당수가 과학 공부가 아니라 의전ㆍ치전 준비를 하고 있다. 카이스트는 당장 이 흐름을 바꾸는 일에 착수해야 한다”며 “과학영재 소리 듣던 학생이 과학을 포기하거나 학점관리에 시달려 자살하는 것은 비극 중 비극”이라고 말했다.

한편, 오는 15일 카이스트는 긴급 이사회를 열기로 했다. 예정된 안건 없이 긴급히 소집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최근 학생들의 연이은 자살 사태의 원인과 대책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대학이 경쟁논리에 빠져 있는 사이, 학생들에게 무관심했던 대학가에 부메랑이 돼 돌아오고 있는 것일까. 이번 카이스트 학생의 자살 소식은 카이스트만 고민할 사안은 아닌 것 같다.

김봉억 기자 bong@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