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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amos! 나는 국가다!
Vamos! 나는 국가다!
  • 구갑우 서평위원 / 북한대학원대학 정치학
  • 승인 2011.04.05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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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_ 구갑우 서평위원 / 북한대학원대학 정치학

 

구갑우 서평위원 /북한대학원대학 정치학
낯선 스페인어. Vamos(가자)! 그리고 어떤 지경 또는 경지. 근 달포 내내 온-오프라인을 달구었던, 아니 내가 찾아 다녔던, 이제는 내가 찾아다닌 이유를 찾아다니는, ‘나는 가수다’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무기의 비판을 발하는 순간, 그 순간이 바로 Vamos였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읽고 싶은 것만 읽기에, 그 가수들 가운데 유독 인터넷 공정 키 150cm인 박정현이 Vamos를 외치는 그 순간을 사건으로 생각했으리라. 부정하지 않는다. 그게 나의 편견이자 정리다.

‘나는 가수다’는 문장은 참과 거짓을 가를 수 있는 명제다. 조금은 억지지만, 담론이 아니다. 나는 그 순간 참을 보았다. 과장하자. 그게 예의기도 하다. 반증이든 검증이든, 證이 사라진 세계에서, 증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를 보았다 하자. 참은 눈물을 만드는가 보다. 그 눈물의 원인을 한 시인은, “나는 가수이다, 그런데 당신은 무엇이냐,” 라는 질문 때문이라 한다. 온몸으로 질문하면 아픈가 보다. 쌩뚱맞게도, 문득, 더 진지하게 살아야겠구나, 아사히 맥주를 어디에 두었는지 모를 정도로, 그 순간에 탐닉하면서, 아, 내일 아침엔 조금 일찍 일어나야겠다는, 어떤 블로거의 글도, 울린다.

Vamos가 있기 전까지, ‘나는 가수다’는 집단지성의 좋은 먹잇감이었다. 그 프로는, 우리사회의 가장 중요한 ‘룰’인, 아니 갑자기 ‘룰’이 돼버린, 규칙을 어겼다. 떨어져야 하는, 패자가 돼야 하는 선배이자 국민가수로 호칭되는 김건모에게 관용을 베풀었다. 그래서 그 공간의 권력인 PD를 그보다 높은 권력이 짤랐다. 그런데, 自淨이었는지, 아니면 반성의 결과였는지, 집단지성은 놀랍게도 우리사회에 보기 드문 패자부활전이 포함된 ‘나는 가수다’에 단 일주일만에 임계점을 넘어서는 감동을 쏟아냈다. 그 극적 반전은, 가수 개개인의 노래만큼이나 그들의 연대에 기반한 경쟁 그리고 그 경쟁의 메커니즘 속에 담겨 있던 개개인의 진정성 때문이리라.

‘무엇을 할 것인가’란 질문은 '어떻게 할 것인가'란 질문을 담지 않으면, 때론 전횡과 폭력이 된다. 각자에게 어울리는 일을 하게끔 누가 결정하는가. 철인왕이나 당인가. 아니면 발견의 절차라는 시장인가. 극단적으로 평가하라면, ‘나는 가수다’는, 후자에 한 표를 던지게 한다. 그러나, 또 과잉이겠지만, ‘나는 가수다’는 공정과 연대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발견의 절차가 기능할 수 없다는, 따라서 감동이 있을 수 없다는, 규칙 하나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정치학 연구자의 직업병이 아니라 시민의 권리로서, ‘나는 가수다’를 보며, ‘임박한 선거, 어떻게 싸울 것인가,’ 쯤으로 제목을 달 수 있는, ‘다음 국가’를 말하는 책들의 경쟁, 즉 ‘나는 국가다’라는 게임을 떠올린다.

우리사회의 진화의 결과이겠지만, 놀랍게도, 다음 국가의 성격에 대한 좌우의 합의는 있는 듯하다. 계급지배의 도구도 조직폭력배도 아닌, 질서와 제도의 유지자로서 국가의 건설을 생각하며, 연대에 기초해 공공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공화주의가 그 첫 번째다. 시민적 덕성(virtue)이 공화주의를 가능하게 한다면, 다음 국가는 ‘시민국가’여야 한다. 둘째, 한반도 평화가 다음 국가의 과제임을 누구도 부정하지는 않는다. 다음 국가는 ‘평화국가’여야 한다. 셋째, 누구도 우리사회의 계급간 세대간 불평등이 해소돼야 한다는 것에도 이의를 달기 힘들다. 다음 국가는 ‘복지국가’여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다. 시민의 참여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대의제와 정당정치의 문제점은 없는가. 촛불시위와 같은 시민행동이 대안인가. 평화는 어떻게 만들어질 수 있는가. 힘의 우위나 힘의 균형이 평화인가, 아니면 협력과 제도를 통해 평화를 만들어 가야 하는가. 자긍심을 가지게 하는 복지의 형태는 무엇인가. 복지의 재원은 어떻게 만들 것인가. 시민의 참여와 평화와 복지의 관계는 어떻게 설정될 것인가. 시민의 참여가 어떻게를 결정하고, 평화가 복지의 기초이고 복지가 평화라는 인식을 어떻게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를 말할 수 있을 때, ‘나는 국가다’는 명제가 된다.

‘나는 국가다’가 ‘나는 가수다’만큼의 감동을 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를 자임하고 있는 선수들이 실력과 진정성을 가져야 한다. 집단지성의 평가는 싸늘하다. 공익을 가장하고 사익을 추구하더라도 공익이 무엇인지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정치다. 그리고 선거제도와 같은 게임규칙에 문제가 있다면 게임규칙의 개정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게임규칙을 준수하지 않고 게임규칙이 문제라고 투덜거리는 순간, 실력과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그리고 노래를 부르기 전까지 무엇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시민?평화?복지국가로 가는 길 어디에 서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그리고, 연대와 공정이야말로 발견의 절차에서 발견되고자 할 때, 간직해야 할 원칙임을 잊지 않아야 한다.

구갑우 서평위원/북한대학원대학·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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