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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성=식민성’…인문학적 사유방식의 갱신 겨냥
‘근대성=식민성’…인문학적 사유방식의 갱신 겨냥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1.03.27 22: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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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강좌_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2011년 트랜스내셔널인문학 강좌 시리즈

탈식민주의 문제가 학계 일각에서 논쟁으로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다시 생각하는 식민주의와 식민성’을 주제로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가 펼치는 2011년 트랜스내셔널인문학 강좌 시리즈(이하 강좌)가 눈길을 끌고 있다. 이 시리즈가 관심을 끄는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식민주의와 식민성’을 직접 주제로 삼았다는 것. 둘째, 이를 인문학과 연계해 인문학적 사유방식을 재구축하고자 했다는 점.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의 인문한국(HK) 트랜스내셔널인문학 사업단은 2008년 발족한 이래 지식, 담론, 주체, 제도, 권력관계들의 복잡성과 중층성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기 위해서는 ‘민족’과 ‘국가’의 범주와 경계를 본질화하고 고정된 것으로 파악하는 기존 인문학의 사유방식을 넘어 이들을 지속적으로 문제화하는 트랜스내셔널인문학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점을 역설해왔다.

기존 인문학의 사유방식은 타율/자율, 억압/저항, 정체·후진/발전·진보, 전근대/근대라는 이항대립의 도식에 갇혀 식민주의와 식민성을 근대성과 대척점에 놓인 것으로 전제해왔다. 그러나 이번 ‘강좌’는 식민주의·식민성이 근대성의 쌍생아임에 주목, 이를 좀 더 깊숙하게 천착하고자 했다. ‘강좌’ 시리즈가 “식민주의와 식민성이 근대성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음을 주장한 ‘식민지 근대성’과 ‘식민지 공공성’ 개념의 문제의식을 적극적으로 수용, 식민주의와 식민성 자체가 어떻게 구성되고, 작동하며, 유지되고 재생산되는지 혹은 도전을 받게 되는지, 그 과정에서 민족과 국가의 모습과 경계가 어떻게 재상상되는지를 한국, 일본 등 동아시아와 인도에 관한 경험 연구 그리고 이론 논의를 통해 심도 있게 살펴보고”한 것은 이 때문이다. 

지난 25일 첫 번째 강좌로 소개된 것은 한국사 분야에서 식민지 근대성, 식민지 공공성 및 트랜스내셔널역사 논의를 이끌어온 윤해동 한양대 비교역사문화연구소 교수의 「예()’로부터 ‘피(血)’로의 이행: 동아시아 식민주의의 근대적 성격」이었다. 윤 교수는 일본의 조선 지배를 사례로 식민주의와 근대성의 다층적 관계를 추적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그는 라틴아메리카 연구자인 월터 미뇰로(Walter D.Mignolo)의 논의를 수용, 이를 적극 활용했다.

월터 미뇰로는 식민성과 근대성의 관련성을 새롭게 조명함으로써 최근 국내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인물. 그는 세계사 속의 식민성은 대개 근대성으로 치장돼 있고, 근대 세계는 식민작 권력 매트릭스를 지배하려는 분쟁으로 점철돼 왔다고 주장한다. 미뇰로에 의하면, 기존의 근대성 논의에서는 식민성이 ‘不在’로 존재해왔고, 그런 점에서 식민성을 근대성의 숨겨진 어두운 면을 지칭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16세기 개척기의 식민지는 근대성의 이면이고, 유럽의 르네상스는 근대성의 표면이라는 것이다. 이런 의미의 연장선상에서 유럽의 계몽주의와 산업혁명도 결국은 식민적 권력 매트릭스가 변화하는 역사적 순간에 파생된 식민성의 산물이다. 윤 교수는 “요컨대 미뇰로 역시 식민성이 근대성을 구성하고, 또 근대성에 의해 식민성이 만들어졌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이해하면서, “미완의 프로젝트인 근대성을 완성시키는 것은 다른 측면에서 식민성을 재생산하는 것을 뜻하게 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가 ‘예에서 피로의 이행’이라 지칭한 대목에는 조선이 ‘속국자주’(중화질서)로부터 ‘독립자주’(국제법 질서)로 이행하게 된 역사적 계기로서의 ‘청일전쟁’이 가로놓여 있다. 그의 설명을 따르면, ‘예’로 규율되던 조공-책봉제제로 상징되던 전통적 중화질서를 붕괴시키는 계기가 됐다. 문제는 새로운 질서의 성격이었다. “국민국가 중심의 공법질서가 그 공백을 대체할 것으로 기대됐는데, 실은 일본으로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 질서로 그 모습이 드러나게 됐”던 것이다. 윤 교수는 ‘同文同種’을 기반으로 하는 동아시아연대가 바로 이 제국주의 질서를 상징한다고 지적했다. ‘전쟁’(유혈) 특히 제국주의적 유혈을 동반함으로써 ‘예’의 중화질서가 ‘피’의 국제질서로 전환됐다는 주장이다. 

 

1895년 청·일 전쟁에 종군했던 프랑스 언론인 조르주 비고(Georges Bigot.1860~1927)가 파리로 돌아간 1899년 찍어낸 그림엽서 세트. 그림의 제목은 '조선을 둘러싼 일·청·러'(上), '러시아와 싸우라고 일본의 등을 떠미는 영국과 미국'(下). 이 청일전쟁이 조선을 중화질서에서 국제법질서로 전환시키는 계기였다.

 

윤 교수의 발표에서 좀 더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존의 일국사적 접근의 부적절성을 지적한 대목이다. 그는 근대성과 식민성을 구분하고 식민 지배를 역사적인 일탈상태로 전제한 뒤 이들이 상호규정하거나 어느 한 쪽이 우위를 점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혹은 식민지의 문제를 제국과 분리해 일국사적으로 접근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강조한다. 식민지 조선에서 일본제국의 국체를 강조하기 위해 민도의 상승으로 표현되는 근대화의 진전을 근거로 삼아야 했던 것처럼 식민성이 근대성을 구성하고 또 근대성에 의해 식민성이 만들어진다는 주장이다.

그의 강조점은 이렇다. “모든 근대가 곧 식민주의이기도 하다는 인식을 갖추지 못하고서는 전후 일본에서 제국주의 총동원체제가 복지국가로 전환하는 토대를 제공함으로써 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을 무력화한 것이나 후기 식민지 한국에서 제국의 총동원체제가 잔존, 확대된 준전시동원체제가 근대화의 기반을 제공한 것을 제대로 포착할 수 없다.”

토론자로는 최근 이삼성 한림대 교수(정치학)와 김백영 광운대 교수(사회학)가 참여했다. 식민주의, 식민성과 근대성에 대한 이 같은 통찰은 과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뿐 아니라 오늘날 한국 사회가 당면하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현상을 이해하는 데에도 중요한 함의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좌’ 시리즈는 이후 4월에는 김규현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UC Davis) 교수(사학과)가 「제국 대 민족: 제국의 모순과 씨름하는 일본 지식인들, 1919-1945 (Empire versus Nation: Japanese Intellectuals Grapple with Contradictions of the Empire, 1919-1945)」, 9월에는 정근식 서울대 교수(사회학과)가 「식민지 통치성과 검열 (Colonial Governmentality and Censorship)」을, 10월에는 캐나다 토론토대 사학과의 리투 비를라(Ritu Birla) 교수가 「법, 계약과 ‘경제적 인간의 배열’: 자유주의 통치성의 식민지적 계보 (Law, Contract and the ‘Arrangement of Economic Men’: Colonial Genealogies of Liberal Governmentality)」, 그리고 11월에는 영국 노팅엄대 지리학과의 스티븐 레그(Stephen Legg) 교수가 「규모와 식민지 통치성: 전간기 인도에서의 민주주의, 전제주의와 권한이양 (Scale and Colonial Governmentality: Democracy, Autocracy and Devolution in Interwar India)」을 발표할 계획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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