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20 (금)
기생충 키워 살 빼는 사람도 있다니, 세상이 옛날 같질 않구나!
기생충 키워 살 빼는 사람도 있다니, 세상이 옛날 같질 않구나!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1.03.21 13:3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오길의 세상읽기 생물읽기<37> 회충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생물학
옛날이야기로구나! 대학3학년(1962년)때 ‘기생충학’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 그 과목을 가르쳐주셨던 李周植 선생님께서 얼마 전 아흔셋에 별세하셨다. 崔基哲 선생님, 金遵敏 선생님에 이어 줄줄이 세상을 달리하셨으니 이제 대학 은사님이 한 분도 안 계신다. “세상에 섬길 분이 없는 것보다 더 서럽고 안타까운 일이 없다”는 것인데…. 결국 내 차례가 이제 코앞에 다가왔다 이거지. 그런데 그 시절만 해도 우리나라는 ‘기생충천국’이었고, 암울하고 참담했던 시절이라 한 사람이 십이지장충, 편충, 요충 등 한두 가지 기생충에 걸려 시달리기 일쑤였다. 

허참, 돌이켜보면 세월이 너무 빠르다. 세는 나이로 올해 마흔 네 살이나 된 큰 딸내미가 중학생 때의 일이다. 그날따라 일찍 집에 와서 나무손질하고 있었는데, 딩동! 딩동! 달려가 대문을 열어준다. 녀석이 다녀왔다는 인사도 없이 후닥닥, 짜증난 얼굴로 휭~~방으로 내달려버린다. 무단히 왜 저러지? 저런 아이가 아닌데, 주눅이 든 애비는 전전긍긍 딸의 눈치를 살핀다. “혜성아, 너 왜 그러니…,” 멍하니 한 참 구슬리고 달래고 나서야 제풀에, “나 오늘 아빠 때문에 창피 당했단 말이야”하고 정색을 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식이요 청천벽력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리라. 알고 보니 뿔나고 열 받을 만하다. 종례시간에 “권 혜성, 회충 쓰리플러스(+++)!” 학생들은 온통 까르르 배꼽을 쥐고 웃어 제쳤고….

요새는 회충감염률이 0.05%에 지나지 않아 ‘똥검사’라는 것이 없어져 되레 기생충보호를 부르짖어야 할 터수가 되고 말았지만, 그 때만해도 학교에서 봄가을에 거르지 않고 대변검사를 했다. 콩알보다 큰 대변을 작은 비닐봉지에 담아 실로 창창 매고, 다시 종이봉지에 넣고는 풀로 봉한 뒤 학교에 내면, 기생충박멸협회에서 대변검사(stool test)를 하고, 기생충이 있는 사람에겐 산토닌(santonin)같은 구충제를 먹였다.

그런데 문제의 불씨는 다음에 있었다. 이른 아침에 학교를 가느라 그만 대변준비를 못한 그 애가 급한 김에 때마침 내 것이라도 달라 해서 덥석 가지고 갔던 것. 망신살이 뻗칠 것도 모르고 말이지. 결국 ‘+++’는 나의 대변검사결과였다. 그러니 “아빠 때문에…”란 말이 나왔던 것이다. 그래도 그만하면 약과요 양반이다. 필자가 경기고등학교 선생 때다. 협회에서 통보해 온 결과를 살펴보니 몇 녀석 이름 옆에 숫제 ‘개똥’, ‘된장’이라 쓰여 있지 않았던가!? 일주일 벌 청소 먹은 것은 당연지사!

線形動物인 희뿌연 蛔蟲을 보통 거위/거시라 부르며, 學名은 'Ascaris lumbricoides'로 Ascaris는 ‘창자 속의 벌레’란 뜻이고 lumbricoides는 ‘지렁이 꼴’이란 뜻이다. 대체 기생충치고 한살이이가 그렇게 복잡다단하지 않은 것이 없으니 그 까닭을 알 길 없다. ‘똥이 금’이었던 시절이라, 회충 알이 거친 풋것들에 묻어 들어와 소장에 다다라 껍데기를 깨고, 애벌레는 소장 벽을 뚫고 들어가 정맥 → 문맥 →간 → 간정맥 → 심장 → 폐 → 기관 → 후두(기관입구) → 인두(식도입구) → 식도 → 위까지 몸 구석구석을 휘졌고 나서 드디어 소장에 정착한다.

그리고 회충은 기생충 중에서 큰 축에 들고 자웅이체로 암놈이 좀 더 크고(20~35 cm), 수놈꼬리 끄트머리에 뾰족한 뜨개질바늘 코 닮은 날카로운 생식기[交尾器]가 있다. 저런, 빌붙어먹는 주제에 짝짓기까지 한다? 그런데 이놈들이 생식시기가 되면 암수가 한 곳으로 와글와글 모여들어 옥신각신/아옹다옹 얽히고설키어 커다란 덩어리(mating ball)를 지우고 이것이 창자를 세게 눌러 배앓이를 하니  이를 ‘횟배(거위배)’라 한다. 이럴 때 우리형님은 담배 한대를 피우셨지.

그런데 요새 와선 기생충을 배 속에 키워서 몸무게를 빼는 사람도 있다니, 세상이 옛날과 같질 않구나! 그리고 선생님께서 “자네들 총중에 촌충 가진 사람 있으면 그것 잘 보관해 두게나, 나중에 박물관에 서있게 될 걸세”라고 하셨던 말씀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이윽고 기생충도 지구에서 곧 사라지고 말 것임을 예견하셨던 선생님의 선견지명에 새삼 감탄하면서 나도 몰래 어느새 고개가 숙여진다.

강원대 명예교수, 생물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