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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이라는 이름의 신선놀음
수학이라는 이름의 신선놀음
  • 구자현 서평위원 / 영산대 과학사
  • 승인 2011.03.14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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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gitamus 우리는 생각한다] 구자현 서평위원 / 영산대 과학사

인간이 동물과 구분되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무엇일까? 동물도 우리처럼 먹고 자고 놀고, 때로는 일을 하고 자식을 키우고 심지어 초보적 언어로 대화도 한다. 인간을 다른 영장류와 구분짓는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는 인간이 추상적 사고를 한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수학은 고귀한 인류의 유산이다. 수학은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현실 세계를 한 단계 추상화하여 고안해 낸 독특한 산물이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든지 수학을 발전시켰지만 그 내용이나 성격은 크게 달랐다. 문화 간에는 우열이 없다고들 말을 하지만 단순한 초보적 산수를 할 수 있었던 원시 문명에 비하여 고차의 방정식을 풀 수 있었던 문명이 우월하다는 주장에 대해 반대하기는 어렵다. 그런 점에서 고대 바빌로니아부터 그리스를 거쳐 유럽에서 발전하여 오늘날 우리 교실에서 가르쳐지는 서양의 수학은 가장 추상화되고 논리적으로 독특한 형식을 발전시킨 사고의 산물로서 가치가 크다. 

뿐만 아니라 수학은 실용적 가치 또한 크다. 만물은 수로 되어 있다는 주장을 하며 세계에서 수학적 질서를 찾고자 했던 피타고라스의 꿈이 17세기에 근대 과학 혁명을 거치면서 갈릴레오, 호이겐스, 데카르트, 케플러, 뉴턴을 거치면서 현실로 나타났다. 자연은 철저하게 수학적 설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 분명해지면서 인류의 과학은 새로운 궤도로 올라섰다. 오늘날 자연을 이해하고 설명하는 보편적인 언어로서 수학은 그 가치가 더 커지고 있다.

수학이 문화적 유산으로서 인간의 정신을 고차원으로 훈련시킬 뿐 아니라 현대 과학 문명을 건설하는 초석이 된다는 점에서 온갖 수학 서적들은 특정한 시대의 수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영구적으로 보존될 가치가 있는 소장품들이다. 인류가 존재하는 한 수학은 지속될 것이기 때문이다.

 수학이 이렇게 가치가 크고 국가적으로도 수학을 잘하는 사람들을 키워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지만 정작 수학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우리나라 초중고 학생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쏟는 과목이 수학이지만 그것은 대학 진학의 수단일 뿐이다. 수학과 관련 없는 전공의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자마자 부랴부랴 수학을 머리에서 내몰고 수학과 담을 쌓아 버린다. 학교를 졸업하고 사회에 나온 어른들을 붙들고 수학 이야기를 하면 절레절레 고개를 흔든다.

실제로 수학은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활동이다. 영국의 수학자 하디는 수학의 아름다움이 예술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에게 수학은 사람들이 즐기는 음악처럼 심미적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정신적 산물이었다. 일반인인 우리도 수학책을 읽으면 세상의 번잡함과 치열한 경쟁을 잊고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의 세계로 들어가 수정처럼 차갑고도 맑은  메시지를 접할 수 있다. 그 논리의 정교함과 표현의 간명함은 지적 아름다움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다. 수학을 할 때 우리는 인간으로서 추구할 수 있는 가장 고상한 활동 중 하나를 한다는 점에서 스스로의 정신과 가치가 고양됨을 느낀다.

우리 주변에서 수학을 즐기는 사람들을 많이 보지 못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특히 많은 시간을 수학 공부에 들이는 학생들에게 수학이 고역으로 인식됨은 개탄할 일이다. 많은 학생들이 수학을 꼭 넘어야 할 통과의례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그것이 즐거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망각하게 만든 것이 문제이다. 우리 스스로 추상화된 개념을 가지고 놀아야 한다. 제시된 개념을 스스로 시험하며 기존의 자신의 생각을 확장하고 심화시키는 재미를 느껴야 한다.

또한 수학의 자유를 만끽할 수 있어야 한다. 흔히들 수학은 산속에 나 있는 좁은 오솔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 보일듯말듯하는 오솔길을 찾아내는 과정은 고역일 수밖에 없다. 사실 수학은 넓은 바다에서 항해하는 배처럼 자유롭다. 목적지를 정하는 것부터 경로를 택하는 것까지 자신이 규정할 수 있다. 가령, 어떤 개념을 어떤 기호로 표현할지를 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점에서 미술만큼 자유롭고, 사고의 방법을 나름대로 규정하고 그에 따라 논리적으로 답에 도달하면 된다는 점에서 게임에 가깝다. 창조적 수학 작업은 수학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개념을 배우는 데에서 그치지 말고 그 개념을 확장시켜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 풀어보자. 수학적 개념을 가지고 노는 것은 실로 신선놀음이다. 그 놀음을 하다보면 세상 시름을 잊게 되고 머리가 맑아진다. 수학의 맛을 느끼는 사람들을 많이 만들어 가면 수학은 대중화될 수 있고 우리나라의 수학을 세계적 수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초석을 마련할 수 있다. 어른들부터 신선놀음에 도끼자루 썩는 줄 모르는 경험을 해보자. 수학에 중독되면 신기하게도 해가 없고 득이 많다.

구자현 서평위원 / 영산대 자유전공학부·과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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