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2-13 13:04 (금)
[짧은 글 깊은 생각] 거리에서 배운 한해
[짧은 글 깊은 생각] 거리에서 배운 한해
  • 교수신문
  • 승인 2000.12.18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0-12-18 13:28:01
김도현/ 우석대·자동차공학과

요즘 동료 교수님들과 전화통화를 하면 요즘 힘들지 않냐는 걱정의 말씀을 가장 많이 듣게 된다. 이른 봄, 벤처기업에 참여해 보겠노라고 휴직원을 냈을 때 보내주던 격려(심지어 부럽다고 말씀하신 분까지 계셨다)와 견주어 생각하면 몇 개월 동안 세상이 바뀌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학교에 계신 분들이 염려하시는 것은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일이다. 주식시장이 한참 활황일 때는 모두 잘 될 것만 같던 수많은 벤처기업들이 어느새 M&A 시장에 나와있거나 이미 파산상태에 이르렀다. 필자 역시 조정기가 이처럼 금방 올 거라고는 예측하지 못했었다. 벤처기업에서 일하는 (이미 충분히 지친) 많은 사람들은 나를 볼 때마다 당신은 돌아갈 학교가 있으니 얼마나 좋겠냐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필자가 휴직이라는 다소 과격한 방식으로 벤처판에 뛰어든 것은, 무엇보다도, 학교라는 공간에서 느꼈던 두려움 때문이었다. 세상은 저렇게 빨리 변하는데, 과연 나는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세상과의 충분한 통로가 되어줄 수 있는 선생인가. 그것도 명문대학이라는 프리미엄 없이 오직 자신의 능력만으로 세상과 승부해야 할 지방사립대의 학생들에게 멀미날 만큼 빨리 돌아가는 이 세상에 맞설 지식과 용기를 심어줄 수 있을 것인가. 별로 잘난 것 없는 사람을 그나마 선생이라고 믿고 의지하는 학생들의 초롱한 눈빛을 바라보면서 때로 나는 뒤돌아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었다. 학생으로 십여 년을 보내고, 불과 1년의 직장생활 후에 자리잡은 교단. 여기서 내가 하는 말이 정말 저 학생들의 삶에 지침이 될만한 옳은 말일까. 이런 의심이 생기자, 두려움은 점점 더 커졌다. 취직을 앞두고 지방대 핸디캡을 체득하기 시작한 학생들에게 주워들은 말대로, “대기업이 아닌 기업들에 주목해 봐. 결국은 벤처기업이 세상을 바꿀 거야”라고 말하면서, 나는 정말 벤처기업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자문했고, 휴직을 결심했다. 나는 책이 아닌 손과 발로 얻어진 확신을 갖고 싶었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떳떳할 것 같았다.
그리고 몇 개월, 사람들은 이제 판을 걷으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중독자가 되어버렸다. 잠시 학문의 길을 접어놓고 들른 이 판에서 나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보았고, 그리고 그 가운데에서 희망을 보았다. 물론 이 곳에는 벤처사기꾼, 혹은 ‘먹튀(먹고 튀는)’라 불리는 사람도 셀 수 없이 많고, 학맥과 인맥으로 사업을 영위하려는 사람 역시 너무 많다. 그러나, 학력과 나이를 불문하고 실력으로 평가받고자 하는 사람들의 열정이 느껴지고, 더 가진 자가 아니라 더 노력하는 자를 존경하는 분위기가 살아 있다. 나는 어설픈 백면서생출신으로서 이들로부터 배울 것이 너무나 많다고 느낀다. 시간강사로 내 수업시간을 메꾸는 미안한 휴직상태를 지속할 것인가 하는 갈등도 무척 크고, 휴직이 아니라 사표를 써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적지 않다. 그러나 언젠가 내가 돌아갈 곳이 학교라는 점은 분명하다. 학교로 돌아가는 날, 나는 조금 더 확신에 가까운 어조로 세상은 바뀌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올 한해, 나는 연구실이 아니라 거리에서 배움을 얻었다. 쉽게 얻어지지 않을 것 같은 그런 배움이었다.

dhkim@core.woosuk.ac.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