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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의 '근대 기획의 피로' 지압하는 참조틀
한국사회의 '근대 기획의 피로' 지압하는 참조틀
  • 이성훈 서울대 HK교수
  • 승인 2011.03.09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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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_ 가르시아 칸클리니 지음, 『혼종문화: 근대성 넘나들기 전략』(이성훈 옮김, 그린비, 2011.2)

 

시케이로스가 디자인한 후아레스 상. 위압적으로 서서 현재의 모습을 액자처럼 담아내고 있는 이 벽은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상징한다

 

1980년대 이후 라틴아메리카를 둘러싼 이론 지형을 단순화하자면 미국의 대학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라틴아메리카 연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입장의 대립이라 할 수 있다. 문화연구, 탈식민주의연구, 하위주체연구 등의 이론틀을 가지고 라틴아메리카를 분석하는 입장과, 이것들을 또 다른 형태의 지적 식민주의로 간주하는, 주로 라틴아메리카에 거주하는 좌파 지식인들의 입장이 대표적이다.

호미 바바 푸코와 정신분석학을 통해 주로 식민담론의 양가성에 주목하면서 담론 층위의 혼종성에 주목
이런 논쟁의 지형에서 가르시아 칸클리니의 『혼종문화』는 독특한 지점에 위치해 있다. 민중문화와 자본주의 문화를 대립적인 것으로 간주하던 초기 입장에서 벗어나, 문화연구 방법론을 수용한 라틴아메리카 문화 분석으로 이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혼종문화』는 혼종성이라는 ‘지극히’ 라틴아메리카적인 개념을 통해서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분석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서구 개념의 일방적 채용이라는 일부의 비판과는 거리가 있다. 호미 바바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해진 혼종성 개념은 실은 라틴아메리카 현실의 복합성을 설명하기 위해 가르시아 칸클리니에 의해 먼저 사용됐다. 호미 바바가 푸코와 정신분석학을 통해 주로 식민 담론의 양가성에 주목하면서 담론 층위의 혼종성에 주목했다면, 가르시아 칸클리니는 구체적인 문화현상 속에 존재하는 ‘탈영토화’와 ‘재영토화’ 과정에 개입하는 ‘재전환’ 전략으로 혼종성을 개념화하고 있다.

 

가르시아 칸클리니 구체적인 문화현상 속에 존재하는 ‘탈영토화’와 ‘재영토와’ 과정에 개입하는 ‘재전환’ 전략으로 개념화
이러한 가르시아 칸클리니의 혼종성이 갖는 현실적인 성격은 라틴아메리카가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서 비롯한다. 모든 문화는 섞임의 결과이자 기록이지만 라틴아메리카의 경우 1492년 이후 이런 섞임을 직접적이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경험했고 또 현재까지 그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차별성을 갖는다. 라틴아메리카 지식인들은 거의 지적 강박관념처럼 이런 섞임을 이론적으로 개념화하려고 시도해 왔다. ‘메스티소’로 시작한 섞임을 설명하는 개념의 계보에서, 가르시아 칸클리니의 혼종성은 이전에 존재하던 근대적이고 결과론적 설명방식에서 벗어나 초국적인 맥락으로 논의를 확장시켰다는 의미를 갖는다.

이 책의 핵심적 키워드인 ‘문화적 혼종성’은, “분리된 형식으로 존재해 온 불연속적인 구조나 실천들이 새로운 구조, 대상, 실천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서로 결합하는 사회문화적 과정”으로 혼종화를 이해한다. 그는 근대와 전통, 고급문화와 민중문화, 혹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에 존재하는 이분법을 해체한다. 이렇게 근대적 기제를 해체하는 혼종화 개념은 라틴아메리카 근대성에 대한 비판적 입장으로 이어진다. 근대화가 전근대적인 전통을 배제하고 개발과 진보에 기반한 새로운 가치체계와 삶의 질서를 이식하는 것이라면, 라틴아메리카는 이와는 차별적인 근대화를 경험하고 있다는 것이다. 라틴아메리카는 “전통과 근대성들(다양하고 불균등한)의 보다 복합적인 절합으로, 개별 국가에 다양한 발전 논리들이 공존하는 나라들로 구성된 이종적인 대륙”이다.

서구의 근대성이 전근대적인 가치를 배제하는 선형적인 시간관에 기반해 있다면, 라틴아메리카에서 근대는 ‘다시간적 이종성(heterogeneidad multitemporal)’으로 특징지어 진다. 이런 그의 성찰은 서구적인 근대성 개념에 입각해 라틴아메리카 근대성의 기원과 성격을 묻는 이른바 ‘부재의 서사’를 비판하고, 또 미학적으로 라틴아메리카를 이미 ‘탈근대적’으로 평가하는 또 다른 역편향에서도 벗어나게 한다. 중심부 국가들의 근대화 과정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라틴아메리카 근대화를 재단하지 않고, 라틴아메리카 문화를 지배 엘리트들의 헤게모니 전략이 아니라 라틴아메리카 사회의 ‘다양한 역사적 시간성들의 교차’점에서 나타나는 문화적 현상으로 사고하는 것이다.

이런 그의 입장은 서구적인 근대성의 이식이나 맹목적인 추수가 아니라, 라틴아메리카가 근대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으로 확장된다. 혼종성에 기반한 라틴아메리카 근대성, 혹은 라틴아메리카적인 ‘차이’는 라틴아메리카적인 근대성이 불완전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혼종성은 단일하고 위계적인 근대성 개념에 맞서 그 자체로 하나의 근대성이 되기 위한 방법, 즉, ‘근대성을 넘나들기 위한 방법론적 전략’이 된다.

가르시아 칸클리니는 혼종성이 현실 속에 존재하는 갈등과 갈등 구조를 간과하고 현실의 섞임을 ‘기술’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다양한 혼종화의 가능성과 이종성의 회복이야 말로 세계가 동질화 논리 하에 고착되지 않기 위한 이론적 전략이라고 강조한다. ‘재전환’의 전략에 기댄 그의 경험적인 분석은, 혼종화를 통해 헤게모니 영역뿐만 아니라 민중영역 또한 근대성의 성과를 전유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지배 권력 역시 직접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고 있으며, 여기에 대한 저항 역시 직선적인 방식이 아니라 ‘사선적인’ 방식으로 가능하다는 것을 드러낸다.

『혼종문화』에 나타난 혼종성은 이후 세계화 담론으로 확대됐다. 특히 그가 보여주고 있는 세계화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는 혼종화를 통해 세계화에 저항하거나, 혹은 그것을 조정할 수 있는 수단들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그의 이론적 확신에서 기인한다. 세계화 과정 속에서 제국주의 국가들의 문화가 개별 국민국가 문화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복합적인 상호교환, 그리고 불균등하고 비대칭적인 혼종화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멕시코와 미국의 국경도시인 티후아나에 대한 분석은 세계화 시대 문화적 혼종성을 바라보는 이론적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의 지난하고 뿌리깊은 피식민 경험은 다양한 ‘탈식민적인’ 이론과 운동들을 만들어 냈다. 서구중심적인 학문 패러다임으로부터 탈주를 꿈꾸면서도 우리는 이런 풍요로운 역사적 경험에서 자양분을 얻지 못하고 여전히 ‘서구적인 대안’들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다양한 이론과 운동들은 한국 사회가 가지고 있는 ‘근대 기획의 피로’를 지압할 수 있는 유용한 참조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으로 소개되는 가르시아 칸클리니의 저작이 그 출발점이 되기를 바란다.

이성훈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HK교수
필자는 스페인 콤플루텐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지은 책으로는 <차이를 넘어 공존으로>(공저) 등이 있으며, 논문으로 세계화 시대 문화적 혼종성의 가능성」등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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