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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과 학문이 상품으로 변질될 때
대학과 학문이 상품으로 변질될 때
  • 북학 기자
  • 승인 2011.03.09 10: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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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저널리스트가 쓴 『대학 주식회사』

“시장으로 간 대학, 기업가가 된 교수, 상품이 돼버린 학문은 우리사회를 어떻게 파괴하는가.” 이 섬뜩한 질문, 그렇지만 정곡을 찌르고 있는 이 물음은 뉴 아메리카 재단 연구원이자 저널리스트인 제니퍼 워시번이 『대학 주식회사』에서 던진 중요한 ‘?’이다. 이를 두고 캘리포니아주립대(노스리지) 역사학 교수 존 브로섬은 “워시번은 1918년 베블런이 쓴 『미국의 대학교육』이후로 대학 교육에 대한 기업 문화의 영향에 대해 가장 중요한 책을 썼다. 탐사 저널리즘의 모델이기도 한 워시번의 이 책보다 더 중요한 미국 대학에 대한 연구를 본 적이 없다”고 평가했다. 물론 이 책은 2005년에 초판이 나왔다. 6년의 시차가 있긴 하지만, 상당 부분 시사적이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간단하다. 비영리 대학이 미국의 가장 독특하고 중요한 경제적·문화적 자산이며, 따라서 공공의 특별한 지원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대학이 시장 세력들과 정치적 요구로부터 독립돼 있지 않았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산업계에 그토록 큰 기여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녀의 지적대로 대학의 가장 중요한 사회적 기능이 지적 창의성과 재능을 육성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학생을 가르치는 일은 점점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 배경은 뭘까. 바로 대학 私有化 움직임이다. 197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이 사유화 움직임은, 일본을 비롯한 여러 국가들과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정재계, 산업계 세력들이 똘똘 뭉쳐 대학들에게 민간 기업과 더 밀접한 연계를 맺고, 스스로 경제성장을 이끄는 기관차가 돼 상업적 가치가 있는 발명품을 만들어 내라고 밀어붙이기 시작”한 것을 말한다.

워시번은 대학 교육의 새로운 상업적 풍토가 과학과 공학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대학이 무엇을 우선 순위로 꼽는지 ‘우선 순위’에도 변화가 일어나고 있으며, 학부모와 학생들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등록금의 대가로 대체 무엇을 돌려받고 있는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게 만들고 있다. 컴퓨터 공학이나 경제학 분야에서의 스타 교수들은 수십만 달러의 연봉 등 대단한 대우를 받고 있지만, 대학 교육과정의 중심인 인문학 분야는 대강당에서 한 번에 수백 명의 학생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면서 학생 개개인의 지도와 채점은 거의 전적으로 대학원생인 조교들의 몫이다. 그녀가 교육과 인문학의 몰락을 걱정하는 이유다.

대학 상업화가 불러온 또 하나의 우려할 대목은 대학에서 객관적인 연구가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유명한 의과대학의 교수들이 기업이 대필한 논평기사나 학술 논문에 이름을 빌려주고 제약회사로부터 뒷돈을 받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그리고 그 기사들은 기업과의 관계를 전혀 밝히지 않은 채 유력한 의학 저널에 실린다.” 하버드대에 자금을 대주고 그 학문적 영향력을 사려고 했던 엔론(Enron) 사 사례도 이에 포함된다. 학문적 연구에 대한 기업의 위협이 가장 두드러진 분야는 의학·약리학·생명공학이다.

저자가 지적하고 있듯, 대학 상업화 경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시장 자체의 가치를 폄하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시장을 너무나 완벽한-다른 어떤 형태의 사회조직보다도 우월한-것으로 가정한 나머지, 이전에는 다른 동기에 따라 규제돼 온 부문에 시장논리가 파고들도록 허용할 때 발생”하는 문제들 때문이다. 시장의 자기조절 능력은 부족하다. 때문에 대학은 자신의 고유한 논리와 역할로 시대적 책무를 짊어져야 한다.

산적한 교육 현안에 휘청거리고 있는 한국 대학과 학문 공동체에 이 책은 무엇을 시사할까. 교육과 학문의 공공성은 왜 지켜져야 하는가, 객관적인 연구를 생산해낼 수 있는 유일한 독립적 기관인 대학을 사유화하는 것이 정당한가, 사회의 모든 부분이 시장에 잠식되고 있는 지금, 시장이 간과하는 문제를 탐구하고 비판하는 대학의 독립적인 기능마저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의 미래를 담당할 시민을 키워 내는 기관이어야 할 ‘대학’ 스스로가 똑바로 질문해봐야 할 물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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