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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명의 타자 속으로 들어간 방법으로서의 ‘자기성찰’
15명의 타자 속으로 들어간 방법으로서의 ‘자기성찰’
  • 북학 기자
  • 승인 2011.02.22 11: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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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한국 인문학 지각 변동』의 공저자 김항 고려대 연구교수

   자유주의, 식민지 근대, 87년체제 이후, 우리안의 파시즘, 문화연구, 지역사, 근대문학의 종언… 한국 인문학 20년의 궤적이 깃든 항목들이다. 각 항목에는 담론을 일군 논쟁적 인물들이 포진해 있다. 이들을 ‘인터뷰’라는 형태로 호명함으로써, 이들과 함께 현재 진행중인 한국 인문학의 지각 변동을 추적한 흥미로운 책이 출간됐다. 『인터뷰-한국 인문학 지각 변동』(그린비, 2011.1)이다. 김항 고려대 HK연구교수와 이혜령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HK교수의 共著다. 김철, 정근식, 백영서, 조한혜정, 강내희, 황종연, 임지현, 이성시, 윤해동, 이영훈, 양현아, 천정환, 진태원, 김영옥, 김진석 등 ‘선배’ 연구자 15명을 직접 만나 몸으로 공감의 언어를 교환했다. 이 기획의 의미와 성과 등을 김항 연구교수에게 들었다. 


△ 이 책은 ‘세기말’, ‘한국인문학’, ‘지각변동’이란 층위가 맞물린 흥미로운 구상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결과, 확인할 수 있었던 ‘지각변동’은 있었는지.
    “단적으로 지각변동이 ‘있었다’고 하면 정확한 답이 아닐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서문에서도 썼듯이 지각변동은 ‘여전히 진행 중’이니까요. 그래서 한국인문학이 여러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여전히 흥미로운 언설을 생산해낼 가능성과 잠재력을 가졌음을 확인한 것이 지각변동의 내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통용되는(된다고 믿는) 가치와 범주를 끊임없이 되묻고 허무는 일을 선배 세대 연구자들이 해왔기에 그렇죠. 솔직히 선배 세대에게 불만을 넘어선 불신이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인터뷰를 통해 그것이 불식됐다는 말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불만과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어디에서 비롯됐는지를 묻고 답하는 것이죠. 저희가 설정한 ‘세기말’은 그야말로 한국 인문학에서 이런 문제제기가 분출되는 최초는 아니더라도 범례적 시기였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 김철에서 김진석까지, 인터뷰 대상자들이 대개 ‘논쟁/논란’의 한 복판에 섰던 이들이다. 이들 15명을 어떻게 골라냈나.
  “저희 입장에서는 누구를 인터뷰할 것인지가 가장 어려운 과제였습니다. 굳이 선정 기준을 말하라면 학술대회를 개최해서는 도저히 한 자리에 모일 수 없을 것 같은 연구자들을 한 분 한 분 만나자는 생각 정도겠죠. 각각의 인터뷰도 중요하지만 인터뷰들 사이의 대질이 어떤 시너지를 낳을까를 고려했던 겁니다. 그래서 문학, 역사, 철학 등 분야별로 어느 정도 분포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죠. 결과물이 나온 지금도 아직 그 시너지가 어떤 것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인터뷰를 통해 묻고 답을 들은 것은 단순한 방법 이상의 것이었고 이 방식을 택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20여년 동안 한국 인문학이 걸어온 발자취를 조망하는 것이 아니라, 몸과 말과 글로 체험한 이들의 생동감을 듣고 싶었고 전달하고 싶었고 인터뷰는 그것을 위해 아주 적합한 방식이었던 듯합니다.”

△ ‘자기성찰’을 강조하고 있는데, 이것은 80년대 후반~90년대 대학에서 공부한 세대의 방법론인가.
  “서문에서도 썼습니다만 자기성찰이란 타자로부터 시작하는 것이죠. 소급해서 말하자면 자기라는 주체성 자체가 타자 없이는 불가능한 것이기도 하구요. 물론 이런 생각은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중반에 대학에 다닌 세대에 전형적인 유형일 겁니다. 저희 세대의 키워드를 감히 말해보라면 타자가 될 거니까요. 그런데 한 세대를 풍미한 주요 용어나 개념은 너무나도 쉽게 텅 빈 상투어가 되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타자란 자기를 반성하기 위해 마주해야 하는 이질적 존재인데, 역설적으로 타자라는 말이 이질적 존재를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라 너무나도 익숙한 말이 돼버리는 것이죠. 아마도 타자란 ‘우리’와 이질적인 어떤 존재들이 아닐 겁니다. 누군가를, 무언가를 ‘타자화’하는 조작을 거쳐 자기를 반성하는 방법을 가능케 하는, 철저하게 비판적 사유로만 산출 가능한 존재일 겁니다. 저희는 선배 연구자들을 그런 타자로서 만나보려 했습니다.”

△ 흥미롭게도 2000년대 이후 대학 인문학이 계량화의 덫에 빠진 반면, 오히려 대학 외부에서 다양하게 인문학적 모색을 감행하고 있다. ‘대학 인문학’에 새로운 갱신의 가능성이 있을까.
  “지금 제도권은 계량화와 표준화를 통해 인문학을 형해화하고 있습니다. 연구자들 모두가 논문 쓰는데 급급해 천천히 생각하고 음미할 시간을 갖지 못하죠. 그러나 계량화와 표준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한 사회 내의 주요 제도인 대학 교육의 관행과 악습을 투명하게 만든 성과도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제도가 필연적으로 내포하는 규칙과 통제는 양가적이라고 봅니다. 계량화의 공과를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는 외부에서 찾아야 할 것이 아니라 내부의 변증법에서 모색해야 합니다. 이 때 내부의 변증법이란 반드시 자기 경계를 허물고 외부와 만났을 때 작동 가능한 것이고 말입니다. 따라서 갱신의 주체는 대학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습니다. 저희 인터뷰가 노린 것이 한국 인문학의 역사적 경계 의식에 대한 보고서였던 까닭입니다.”

△ ‘학진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다양한 논의가 있었다. 공저자 세대가 생각하는 대안적 시스템은 무엇인가.
  “글쎄요. 시스템의 대안을 말로 하기는 어렵기도 하고 쉽기도 합니다. 상상력이 부족하고 바꿀 힘이 없어서 어려운 거고, 반대로 책임과 권한이 없기 때문에 쉽기도 하죠. 다만 국가가 인문학을 ‘지원’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국가가 인문학을 지원하는 것은 의무입니다. 근대 국가란 인문적 지식을 바탕으로 성립했고 존립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인문학이란 국가적 지식의 총체이기도 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중요한 것은 인문학이 국가적 지식의 총체라고 했을 때 인문학을 관변적 지식이라 해석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인문학이 국가적 지식인 까닭은 국가가 끊임없이 자기 경계를 되묻고 갱신해야 하는 제도적 총체이기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인문학이 비활성화되면 국가가 형해화하고 전제적인 체제가 도래하겠죠. 따라서 ‘돈’을 지원하고 ‘따내는’ 일이 학진 시스템의 알파이자 오메가여서는 안된다고 봅니다. 말하자면 학진 시스템에 대해 인문학적으로 생각하고 변화를 꾀하는 일이 필요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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