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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의 시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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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익현 편집국장
  • 승인 2011.02.22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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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치와 예의

   우리 학문의 전통 가운데 굳건한 기상으로 서 있는 ‘江華學’은 霞谷 鄭齊斗(1649~1736)에서 발원하고 있다. 이러한 하곡의 계보가 구한말의 지적 전통으로 수렴되는 한 광경을 담담하게 서술한 책이 민영규 연세대 교수의 제자들에 의해 1994년에 『강화학 최후의 광경』, 『사천강단』 두 권으로 엮어져 나오기도 했다.


   민영규 선생에 의하면, 일의 성패가 문제가 아니라 동기의 순수성 여부가 문제일 따름이라는 것이 양명학의 가르침이고, 하곡의 변함없는 정신이었다. 대체로 이 강화학파의 지적 전통에 서 있는 인물들이 나라 잃은 망국의 시절에 만주와 블라디보스톡 등 북국을 거치며 풍찬노숙의 삶을 살아가면서도 그 꿋꿋한 기상을 훼손하지 않았음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일의 성패가 아니라 동기의 순수성’이라는 강화학의 이 유명한 언표는 과거의 것으로만 머무르지 않는다. 최근 감사원장으로 내정된 양건 한양대 교수와 국립중앙박물관장직에 취임한 김영나 서울대 교수의 행보를 보면서 문득 강화 앞바다, 모래 날리는 외로운 해변에 선 늙은 양명학자의 가르침이 머릿속을 스쳐간다.
두 사람 모두 학계 중진이다. 양 교수는 1947년 생, 김 교수는 1951년 생이다. 그간 다져온 학문적 평판을 발판으로 했겠지만, 이들의 행보는 석연찮다.


   알려진 대로 양 교수는 2008년 3월 출범한 국민권익위원회의 초대 위원장을 맡았다가 2009년 8월 일신상의 이유로 중도 사임, 한양대 법대 교수로 복귀한 전력이 있다. 당시 그의 ‘중도 하차’를 놓고 의견이 분분했다. 초대 국민권익위 위원장을 지내다 임기(3년)를 채우지 못하고 1년 5개월여 만인 2009년 8월 “이명박 정부의 국정쇄신에 일조하겠다”며 중도 사퇴했기 때문이다.  “국민권익위가 도대체 무엇하는 곳이냐”라는 이명박 대통령의 질타가 알려지면서 ‘문책성 경질’이라는 추측이 제기됐다. 흥미롭게도 양 교수가 사임한 바로 그 자리에 국회의원 선거에서 참패한 정치인 이재오 씨가 낙점되면서, “실세 이재오에게 자리를 만들어주기 위한 사임”이라는 주장도 이어졌다.


   대통령의 질타가 작용했다면 그것은 양 교수의 ‘무능’ 문제이며, 야권 등에서 제기하는 것처럼 ‘이재오 자리 만들기용’ 사임이었다면, 그것은 더더구나 公私를 이만저만 착각하지 않은 중대한 실책일 수밖에 없다. 공적 소임을 사사로운 인간관계로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이것은 경륜과 전문성 이전에 양 교수의 능력과 공인으로서의 자질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방증이 된다. 그런 그에게 청와대가 다시 ‘감사원장’이란 더 크고 중요한 과업을 맡기려 한다니, 어안이 벙벙할 따름이다. 그는 3년 전의 명예롭지 못한 ‘사임’으로부터 어떤 ‘수업’도 받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감사원장은 사적인 ‘친분’ 관계로 나아갈 자리는 더더욱 아니지 않은가.

 
   국립중앙박물관. 이른바 13개의 ‘국박’ 시스템(13개인 까닭은 나주국립박물관을 건립하고 있기 때문이다)은 거대한 야전 세계와 다를 바 없다. 그 광활한 조직의 수장에 취임한 김영나 교수는 “박물관 경영과 전문 지식은 별개”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서양현대미술’이 그의 전공 영역이기 때문이다. 박물관 전문가들은 새 국립박물관장의 이런 주장에 일부 동의한다. 그렇지만 어디까지나 ‘일부’ 동의일 뿐이다. 왜 그럴까. 김 교수는 2003년부터 2005년까지 서울대박물관장을 지냈다. 비록 적임은 아닐지라도 ‘능력’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생각 같은데, 그렇다면 문제는 간단하다. 서울대박물관장을 지내면서 그가 진행한 사업의 평가 지표를 제시하면 된다. 그러면 논란은 종식된다. 그렇지만, 김 교수가 서울대박물관장직에 있을 때, 그 2년의 시간동안 대학 박물관의 수준을 확 끌어 올렸다는 소식은 아직 듣지 못했다. 그런 김 교수가 취임식 자리에서 한국의 국립중앙박물관을 세계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 포부를 밝혔다.


   염치와 예의는 공적 자리로 가시는 분들에게 매우 중요한 도덕적 요소다. 대학과 교수들이 政權 또는 政府와 손을 맞잡을 수는 있다. 그러나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 있다. ‘대학과 교수’ 이미지이다. 정부에서 자리를 만들어 줄 때, 그렇게 내미는 손을  잡는  방식에서 특정 이미지가 생산된다. 염치와 예의를 잃어버리는 순간, 정치권력은 대학을, 교수를, 학자를 ‘푸들(poodle)’과 같은, 관리하기 손쉬운 전문인으로 전락시켜버린다. 그게 학문을 망친다.


   ‘일의 성패가 아니라 동기의 순수성’을 강조했던 강화학을 오늘 그리워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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