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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대학별 연봉제 <끝>
기획연재 : 대학별 연봉제 <끝>
  • 손혁기 기자
  • 승인 2002.05.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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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9 17:57:13
이상천 영남대 총장은 최근 ‘교수계약임용제’에 대한 지상토론에서 “연봉제는 서구 사회의 개인주의·능력주의 전통이 농축돼 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며, “동양 사회의 연공주의 문화와 집단주의 문화를 서구사회의 성과주의 문화 및 개인주의 문화와 어떻게 접목시켜 갈 것인가가 연봉제의 성공적 정착에 주요한 관건”이라고 지적했다.

연봉제 기획을 진행하며 확인한 것도 이 총장의 지적처럼 정서적으로 낯선 제도를 도입하기 위해 고심하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교수와 대학당국사이에서 평가방식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광경이 자주 목격됐다.

단과대학별로 상대평가를 하는 아주대에서는 교수들 스스로 합리적인 평가기준을 설정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전공들이 묶여 있는 상태에서 이를 찾아가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경희대는 동일한 기준으로 평가될 수 있다고 판단되는 학과를 24개로 묶었지만 이 안에서도 합의와 조정은 쉽지 않았다. 예컨데 같은 국어국문학과에 묶여 있다고 하더라도, 문학을 전공하는 교수와 어학을 전공하는 교수가 전혀 다른 연구환경을 지니고 있고, 국어학이 영어학과 학문적으로 가깝다고 해서 이들을 함께 묶을 수도 없는 처지인 것이다.

그렇다보니 아예 학과장이나 학장에게 평가의 전권을 맡기는 대학도 있었다. 포항공대와 인제대가 바로 그러한 사례. 그러나 이런 경우 학과장이나 학장은 막강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그만큼 평가의 부담도 커진다. 인제대 학장들이 평가에서 대학발전기여도 등 정성적인 부분을 모두 포기하고 연구논문 등 정량적 평가기준만을 적용한 것도 이러한 고뇌의 결과였다.

공정한 평가의 어려움에 정서적인 거부감을 고려해 많은 대학에서는 성과에 따라 매해 전체 연봉액을 결정하는 미국식 연봉제 대신 기본급은 보장하되 성과에 따른 상여를 차등 지급하는 성과급형 연봉제를 채택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는 조사된 전 대학이 마찬가지였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기본급의 인상비율에 전체 연봉인상액의 얼마를 할당할 것인가의 문제. 연봉제를 시행한지 7년째 접어든 아주대는 기본급 인상률이 극히 낮은 반면, 2003년부터 성과급제도를 도입할 고려대의 경우 기본급 비율을 높게 책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일단 연봉제를 도입한 대학들은 교수들간의 임금격차를 점점 넓혀갔다. 연봉에 대한 교수들의 거부감을 시나브로 줄여 가는 것.

아주대는 도입 이듬해 최고등급과 최하등급 교수의 임금차이가 2백만원이었으나 현재는 1천만원을 훌쩍 넘어, 낮은 직급의 교수가 높은 직급의 교수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는 경우도 생겼다. 성균관대도 1999년 도입 첫해에는 성과급으로 30만원을 지급했으나 앞으로 몇 년이내에 특채를 통해 ‘모셔온’ 교수들까지도 연봉제 내에서 소화할 수 있도록 성과급의 차이를 벌려나간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연봉제를 도입함으로써 교육인적자원부나 대학측의 목표처럼 교육의 질이 향상되고 대학의 경쟁력이 제고 됐을까.

교육인적자원부는 SCI에 등재된 학술지에 국내 교수들의 논문수가 늘어나고 있다고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만 이를 연봉제의 성과라고 판단하기에는 아직 이른 듯 하다. 연봉제의 기반이 되는 업적평가점수를 맞추기 위해 논문의 수는 예전보다 늘어났지만 질은 오히려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취재를 통해 확인된 사실은 교수들에 대한 대학의 영향력이 크게 늘어났다는 점이다. 취재중에 만난 교수들은 “느긋하게 완성해야 할 논문도 시기를 맞추게 됐으며, 강의와 대외활동 모두 ‘점수’로 환산하게 됐다”며 씁쓸해 했다. 그러나 일부 대학에서는 연봉제가 교수들을 바쁘게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았다.

기획 진행과정에서 만난 한 교수는 “20년이 넘도록 재직하고도 2천만원이라는 터무니없는 연봉액을 제시받았다”고 하소연했다. 기획 진행과정에서 만난 또 다른 교수는 “연봉이 1천만원도 안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나 자신의 월급명세서까지 들고 기자를 찾아온 그 교수는 대학으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걱정에 끝내 자료를 공개하지 않았다. 가장 열악한 근무조건이라는 것을 확인한 그 교수는 또 다시 대학으로 돌아가 1년 계약을 맺었다.

이와 관련 이헌환 서원대 법학과 교수는 최근 연봉제 관련 기고문에서 “아무리 정년이 보장됐다 하더라도 기본급을 최소화하고 성과급 중심으로 급여체계를 갖춘다면, 정년보장도 무의미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연봉제가 단순히 급여차원이 아니라 신분을 결정하는 기제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다. 이 교수의 우려는 미래형이었지만 기획진행과정에서 이는 분명히 현재형이었다. 연봉제가 확산될수록 연봉제의 그늘도 짙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손혁기 기자 phar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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