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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로 읽는 책갈피] 도시는 초조하지 않다
[텍스트로 읽는 책갈피] 도시는 초조하지 않다
  • 교수신문
  • 승인 2010.12.27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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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조한 도시』  이영준 글 사진 | 안그라픽스 | 2010.11

초조한 도시가 모두를 초조함의 매트릭스 속으로 밀어 넣으려 할 때 슬그머니 빠져 나오는 사람들이 있다. 굳이 의식적으로 저항하지 않아도 자연스러운 삶의 리듬을 따르다 보면 그들은 도시의 빈구석을 발견하다. 매우 신비롭게도, 그들이 발견한 공간에서는 시간의 밀도가 희박해진다. 그리고 그들은 거기에 자신의 시간과 이야기를 써넣는다.

대단한 얘기가 아니다. 도시의 어딘가에 들어앉아 밥을 먹고 휴식을 취하고 일하는 그런 평범한 얘기다. 초조하다는 것은 점점 더 세분화되는 시간의 매트릭스에 떠밀리기 때문인데, 도시의 사람들은 그 매트릭스 속에 알게 모르게 자신의 자리를 만들어 나간다. 만일 도시가 사람을 초조하게 만드는 거대하고 조미한 구조물의 덩어리일 뿐이라면 우리는 도시를 버려야 할 것이다. 그래도 아직 도시를 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들어가 쉴 틈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 틈은 도시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창조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다.

차 밀리고 공기는 나쁘고 범죄는 들끓고 물가는 비싸지만 우리는 도시에서 살아간다. 그래도 도시에 뭔가가 있기 때문이다. 좋은 학군이나 문화시설, 취업 기회 같은 것들이 있다. 그것뿐인가. 그렇게 밖으로부터 주어진 여건들 때문에 도시에 사는 것일까. 다른 이유는 없을까.
사람들은 숨 막히는 도시라고 말하지만 도시는 오히려 무수히 많은 숨구멍을 가지고 있다. 작은 골목, 안 알려진 식당, 빌딩과 빌딩 사이의 틈새, 자투리 공원, 남들이 모르는 옥상 등 도시에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숨구멍이 준비돼 있다.

도시에 사는 이유는 실용적인 이득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숨구멍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공간은 무너지고 사라지지만 그만큼 새로운 숨구멍이 생겨나는 다이내믹함 때문에 도시에 사는 것이다.
물론 날로 폭력적이 돼 가는 재개발은 그런 숨구멍을 밀어 없애 버린다. 그러나 여백이 없는 책이 없듯이, 아무리 거대한 주상복합건물이 예전의 골목길을 차고 들어와도 도시에는 항상 여백이 있다. 사람들은 그 여백에 사는 것이다.

재개발은 점점 커져 가는 밀도와 고도로 공간을 채우기 때문에 숨 쉴 공간은 점점 작아지는 것 같다. 그러나 거대공간이 담고 있는 밀도가 높아지는 만큼 작은 공간의 밀도도 높아진다. 도시 주차장의 놀랄 만큼 좁은 공간에 차들을 아슬아슬하게 대면서도 일도 보고 밥도 먹으러 다니듯이, 좁으면 좁은대로 사람은 자신이 살아갈 공간의 의미를 찾아간다.

□ 이영준은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로 있다. 사진비평가이자, 이미지비평가이며 그 스스로 말하듯 ‘기계 비평가’이기도 하다. 즉 기계를 관찰하고 비평적으로 해석하고 사진으로 찍고 다양한 지식들과 결합하고, 전시로 꾸미고 책으로 만든다. 지은 책에는 『사진, 이상한 예술』 등 다수가 있다. ‘사진은 우리를 바라본다’ 등 여러 전시를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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