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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4> 청개구리는 냉동개구리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4> 청개구리는 냉동개구리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0.12.27 15: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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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잠, 비밀 혹은 생존전략

“더우면 더위가 되고 추우면 추위가 돼라”고 했던가. 말이 그렇지 아무리 겨울은 덥지 않아 좋다고 되뇌어 봐도 살밑으로 파고드는 냉기에 쩔쩔 맨다. 지긋이 나이 든 분들이 한 여름에도 목장갑을 끼는 걸 보고 참 의아했는데 늙고, 낡아보니 마침내 그 까닭을 절실히 느낀다. 물질대사가 옛날 같지 못한 탓이다. 그리고 온 사방 눈을 닦고 봐도 날짐승인 참새, 까치, 직박구리와 네발짐승인 청설모, 도둑고양이 뿐이다. 그 많은 동물 중에 조류와 포유류만 정온(항온)동물이라 한결같이 추위와 싸우지만 변온(냉혈)동물들은 도리 없이 이내 죽었거나 땅속/지하실/구석방에 숨어버렸다. 추위란 이렇게 무서운 것!

  그런데 이런 칼 추위에 청개구리 녀석들은 어이 월동하고 있을까. 冬眠은 기온이 내려가면 체온도 따라 떨어져서 몸이 동태가 돼버리는 것을 말한다. 얼음 틈에 끼어버린 붕어, 낙엽 밑에 뻗어버린 청개구리, 굴 안에 얼어터진 다람쥐들이나 산위의 저 소나무/잣나무들은 주야로 세포가 얼었다 녹았다 하면서 안간 힘을 다해 진짜 겨울잠을 잔다! 歲寒松柏이라 하지 않는가. 곰이나 오소리들처럼 추우면 굴 안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날씨가 좀 풀리면 슬금슬금 바깥으로 나와 어슬렁거리다가 다시 기어드는 것은 단지 추위를 피해 활동을 줄이는 것일 뿐 동면하는 것이 아니다.

  청개구리는 우리나라 양서류 12종 가운데 유일하게 나무에 사는 놈이다. 그래서 영어로는 ‘tree frog’라 하고, 열대우림지대(정글)에는 그것들이 무려 80%를 차지한다. 개구리는 앞다리에 발가락이 네 개, 뒷다리에 다섯 개가 나고 뒷발가락 사이에 물갈퀴가 있는데 유독 청개구리는 물에서 헤엄칠 일이 없어서 그것이 깡그리 없어지고 말았다. 대신 발가락 끝에 납작하고 동그란 ‘조막손’ 닮은 꼬마 패드(pad)가 생겨나 나뭇잎에 찰싸닥찰싸닥 잘 달라붙게끔 됐다. 얼마나 무서운 적응인가!? 거추장스럽거나 필요 없는 것은 냅다 서슴없이 버려버린다!

  송곳바람이 불라치면 물개구리 무리는 잘 얼지 않는 냇물에서, 참개구리 따위는 따스한 들쥐굴속에 떼를 지어 겨울을 보내는데 이 바보(?) 청개구리는 땡땡 언 한겨울에 누더기홑이불 같은 가랑잎 속에 헐벗은 몸을 파묻어 시체나 다름없이 꽁꽁 얼어붙어버리고 만다. 그 어여쁘던 연두색 몸도 그만 까무잡잡해지고, 잡아서 건드려 보아도 꿈쩍 않고 쇳덩어리처럼 빳빳하게 굳었다. 더군다나 심장과 대동맥 어름에만 피가 겨우 돌아 생명만 부지할 뿐 핏줄이란 핏줄은 죄다 얼어버렸다. 그러니 근육이나 신경 따위는 불문가지다.

  말해서 ‘냉동청개구리’ 신세다. 청개구리는 제 나름대로 살기 위한 한 방편으로 이런 길을 택했다는 것. 녀석들은 가을에 기름진 벌레를 한 가득 잡아먹어서 지방을 그득히 비축해 놓았기에 심장이나마 살아있다. 참 애처롭고 불쌍하고 눈물겹구나! 아니다, 청개구리는 외려 남다른 꿍꿍이속이 있다. 추위에 이골이 난 청개구리는 몸뚱어리가 얼어 터져도 개의치 않는다. 몸이 영하로 내려가 얼면 얼수록 물질대사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 몸에 저장한 양분(기름기)의 소모가 적어져 좋다. 즉, 목숨을 겨우 유지할 정도로 에너지 소비를 하므로 양분이 쉽사리 거덜 나는 것을 막자는 것이 청개구리의 간절한 겨울잠이다. 어떻게 하든 영양분을 적게 쓰겠다고 저 추위를 저렇게 줄기차게 이겨낸다.

  정자를 얼려서 냉동 보관했다가 필요하면 꺼내 쓰는 정자은행이라는 것이 있다지 않는가. 보통 정자/동물세포를 영하 196℃까지 내린 냉동 통에 넣어두면 온도가 하도 낮아서 신진대사가 조금 일어나기 때문에 오래오래 죽지 않고 살아남는다. 그렇듯 분명 얼어 죽었다고 여겨지는 저 청개구리도 봄 오면 비실비실/스르르 되살아난다. 참 지독한 생명이다. 그래서 얼음덩이 돼 죽은 듯 살아있는 청개구리를 너무 가엽게 여길 일이 아니란다. 망연자실, 변온동물의 기막힌 생존 작전에 새삼 혀가 내둘릴 뿐이다. 어쨌거나 청개구리가 발딱발딱 날뛰는 포근한 봄은 분명 오고야 말 것이니 기꺼이 동장군과 벗해 아린 이 歲寒을 마냥 즐길 것이다. 겨울이 다 돼야 松이 푸른 줄 안다고 했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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