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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간 휴일없는 ‘5분 대기조’ … 업무 쏠리는 시기, 묘안은?
한달간 휴일없는 ‘5분 대기조’ … 업무 쏠리는 시기, 묘안은?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12.20 14: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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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철 풍경] 동원되는 교수들은 고달프다

신입생 모집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입시전형은 다양해진다. 입시전형이 다양하면 선발과정이 복잡해진다.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발간한 2011학년도 대학입시전형 책자는 정시모집요강만 무려 1천700쪽이다. 수험생들의 ‘눈치싸움’도 그 많은 입시전형을 숙지하고 나서야 통할 말이다.

입시철이 되면 교수들은 오금이 저려온다. 입학처장들은 “대학에서 입시란 시작이자 끝”이라고 입을 모은다. 교수들은 시작부터 끝을 달려야 한다. 수시모집이 시작되는 9월부터 정시모집이 끝나는 2월까지 긴장을 풀지 못한다. 논술·적성검사 출제, 시험 감독, 채점, 면접 중 어느 하나는 치러야 한다. 이때 대학입시는 곧 교수의 일상이 된다.

입시철, 대학은 교수의 책무성으로 밀어붙이지만, 이 기간에 교수는 업무가 한꺼번에 맞물린다. 학생선발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까. 입학사정관 전형 응시생들이 시험을 치르고 있다.
사진제공: 건국대 홍보실

‘차출·동원·투입’ 교수들의 입버릇

지원자가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이 몰려도 걱정이다. 입시철이 되면 교수들은 출제위원이다, 면접관이다 ‘동원’되고 ‘차출’된다. 은연 중에 입버릇처럼 통용되는 ‘차출’이라는 단어는 대학입시와 교수 간 상관관계의 깊은 골을 드러낸다. 신입생 선발에서 일임을 담당해야 할 교수들이 노곤함을 느끼는 건 비단 과중한 업무만의 문제일까.

대학이 입시에 들이는 공력의 반작용으로 교수들은 쉬이 피로감을 호소한다. “대학입시는 어차피 교수가 해야할 일이니 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안 왔으면 한다.” 입학처장을 지낸 경험이 있는 수도권대학 ㅎ교수는 입시철 교수들이 느끼는 피로감에 대해 “교수의 책임감에만 기대선 문제를 제대로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입시전형이 다양해지면서 ‘차출기간’도 길어졌다. 논술 출제 등으로 ‘차출된 교수들’은 적게는 4주에서 길게는 6주 동안 입시업무를 맡는다. 재학생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면접과 시험은 주말에 본다. 이 기간, 이들은 늘 대기상태다. 입학처도 공정성 문제를 의식해 미리 연락하지 못하는 처지다. 다만 일정 기간에는 출장을 자제해 달라는 공문을 보내 협조를 구할 뿐이다. 2~3일 전에야 확정 명단이 개별 통보된다. 입시의 긴장은 일부 원로급 교수를 제외하곤 예외가 없다.

수시모집 입시경쟁률이 높아지면서 선발과정이 보다 세밀해지는 추세다. 수시모집전형은 크게 나눠 1차 심층면접, 2차 논술시험이다. 면접에서 평가해야할 부분은 창의력이다. 요즘은 면접도 ‘문제해결형’으로 내야 한다. 면접장 밖에 있는 대기자들에게 음악을 들려주거나 그림을 먼저 보여준 다음 그것을 바탕으로 면접을 보기도 한다. 면접문제를 만드는 데에도 교수들은 4박 5일 씩 합숙을 한다.

입시전형이 다양해지는 데에는 비단 신입생 모집에 국한하지 않는다. 2학기 수시모집이 끝나면 편입시험이 있다. 편입입시가 끝나면 약학대학 시험이 줄줄이 이어진다. 9월부터 이듬해 1월까지 교수들이 숨을 고를 수 없는 이유다. 수도권대학의 한 교수는 대학입시가 강화되는 추세는 공감하면서도 “교수의 일정이 고려되지 않는 입시행정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특히 수시모집 채점이나 평가가 집중되는 11월말~12월초는 교수의 업무가 한꺼번에 맞물리는 시기다. 기말고사 출제, 학부생 취업지도, 대학원생 지도 등이다. “학기 말이라 학생들 취업을 위해 추천서를 쓰거나, 면접지도를 하다보면 낮 시간을 다 써야 한다. 밤이나 주말이 돼서야 겨우 책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조금 익숙해지면 논문마감 같은 업적관리를 미리 다 해놓지만 학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는 건 어쩔 수 없다.”
재임용이나 승진심사가 겹치면 난감하다. 재임용·승진심사는 10월~2월에 집중된다. 연구업적의 경우 논문실적 2~3년치를 평가한다지만 마감이 다가올수록 챙길 일이 많다. 대다수 대학은 입시에 투입될 교수들을 단과대학 할당제로 모은다. 입학처가 단과대학으로 책임을 분산시켜서 결국엔 젊은 교수들의 몫으로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대학입시가 변할 순 없을까. 입시를 출제하고 평가하는 건 교수지만 입학정책을 만드는 건 입학처다. 더군다나 입시정책은 2~3년을 먼저 움직인다. 입시모델은 최소한 2년 전에, 아이디어는 1년 전에 내야 한다. 그래야 입학정책에 변동이 가능하다. ㅎ교수는 평교수가 입시업무를 수행하면서 아이디어를 내놓기 어려운 구조적 요인이 있다고 말했다. “올해 입학처장은 자기가 설정한 입시모델을 관리하는 게 아니다. 전임이 만들어 놓은 입시정책을 집행하면서 후임 입학처장이 할 입시모델을 만들어 놓는다.” 교수는 한시적으로 차출됐다가 할당된 업무를 수행하는 일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선발과 교육’ 역할 나누기

경쟁률이 높은 대학은 ‘채점’에 거의 모든 교수가 매달린다. 그래도 1주일이 걸린다. 공력이 가장 많이 들어가는 논술 채점에서 강사가 배제되는 추세도 읽힌다. 최근 학과제로 전환한 대학이 특히 그렇다. 10명 안팎의 전공교수들이 수천~수만 명의 입시를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선발과 교육’으로 역할을 나누자는 의견이 나온다. “교수들이 뽑는 데 전문성이 있는 건 아니다. 학과교수 중 학생선발에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몇몇 교수에게 강의시간을 줄여주더라도 전문성을 키워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은 거의 모든 교수가 일정부분 나눠맡지만 하고나서도 찜찜하지 않나.”

지난해까지 입학처장을 지낸 박제남 인하대 교수(수학통계학부)도 “입학정원 3천명 내외의 대규모대학의 경우 입학사정관 40~50명에 학과별 입시전문교수 한두 명이 투입되면 입시업무 분담의 효과를 톡톡히 볼 것”이라고 내다봤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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