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키워드] : 이메일, 새로운 지평의 확대인가
[문화키워드] : 이메일, 새로운 지평의 확대인가
  • 박나영 기자
  • 승인 2002.05.2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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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8 13:10:41
△요즘 며칠 간격으로 이메일을 확인하세요?
매일 하지.
△매일요? 만드시기 전에는 확인하기 귀찮을 거라며 부담스러워 하셨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웃음) 그거 참 매일 확인하게 되더군. 자네 메일도 그 날 바로 받아보았다네.
△이메일 만드신 후 좋아진 점과 나빠진 점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세요?좋아진 점이라…도서관에서 예약해둔 책이 들어오면 바로바로 연락해 주니까 그 점이 좋더군. 나빠진 점은 아직까지 없지. 아니, 이메일 확인하느라 시간을 뺏겨서 그게 나쁜가? (웃음) 아니네. 별로 시간 많이 뺏기지 않네.
△현재 이메일 문화의 실태를 진단하신다면?
글쎄. 아직은 내가 이메일 문화에 완전히 편입되었다고 할 수 없으니까 뭐라 말할 수 없겠군. 좀더 겪어본 후에 말해주지.

Y대학의 임 아무개 교수는 최근까지 이메일 주소를 만들지 않았었다. 학생들이 학점 때문에 성가시게 구는 것이 싫었고, 이메일을 확인하느라 시간을 빼앗기는 것이 싫었고, 무엇보다 컴퓨터에 능숙치가 않았다. 그러나 지금 그는 이메일을 사용한다. 정년퇴임을 바라보고 드디어 이메일 문화의 마지막 대열에 합류한 한 노교수, 그에게도 이제 이메일은 없어서는 안될 필수품이 되었다.

우리는 올라가고 있다

개봉 사흘간 수입 최고기록, 최단시일 내에 1억달러 돌파, 개봉 둘째주 주말에 미국·캐나다에서 사상 최고의 입장료 판매 기록. 영화 ‘스파이더맨’에 붙는 수식어들이다. 미국 극장주협회의 폴 데르가라베디언 회장에 따르면 ‘스파이더맨’은 “주요 기록들을 모두 경신했다” ‘로맨스+액션’이라는 흥행공식 때문에? 10대를 겨냥한 마케팅 전략이 성공했기 때문에? 흡족치 못하다. ‘스파이더맨’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음에 분명하다.
불빛으로 밤을 낮처럼 밝히는 대도시의 밤거리. 고층빌딩들에는 불빛보다 많은 사람들이 있을 터인데, 그 안에 선 소년은 왜 이방인이어야 하는가. 소년은 그들과 연결되고 싶다. 그래서 소년은 사방으로 거미줄을 분사한다. 거미줄로 자신과 그들을 연결한다. 소년은 더 이상 소년이 아니다. 가면으로 얼굴을 가린 소년은 새로운 이름 ‘스파이더맨’으로 고층빌딩들 사이를 누빈다.
우리는 ‘스파이더맨’에 열광한다. 아니,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열광한다. 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가 연결되어 있는 지금의 모습은 원작이 제작된 1960년대 당시 만화에서나 꿈꾸던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이메일을 통해 불과 수분 내에 어느 곳의 누구와도 안부인사, 자료, 의견을 교환할 수가 있다. ‘스파이더맨’ 앞에 도사린 그 어떤 위험도 없이 말이다.

당신은 내려가고 있다

그러나 스파이더맨이 사랑하는 엠제이와 키스를 하기 위해서는 가면을 벗은 소년이 되어야 했다. 입맞춤이 주는 단순한 ‘접촉’을 넘어 혀와 혀가 맞닿아 하나가 되는 ‘합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면을 벗어야 한다. 조한규 부산대 교수(전산학)는 ‘바로 보내고 바로 답하는’ 이메일 연애의 실태를 꼬집는다. 키스하고 싶은 당신, 가면을 벗어라. 그러나 당신이 부딪힌 장애물 … “당신의 가면에는 고무줄이 달려 있다.”이메일, 저항하기 싫은 향기로운 유혹. ‘전송’ 버튼 하나면 언제, 어디서나, 누구에게도 수십분 내에 문서 배달이 가능하다. 편지지도, 편지봉투도, 우표도, 향기나는 싸인펜도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이 된 듯 싶다. 그러나 생각해본 적 있는가. 이메일의 용량은 한정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군가의 새로운 메일을 받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의 지난 메일을 지워야 한다는 사실을. 지금도 그가, 그녀가 다른 누군가의 메일을 받기 위해 당신의 메일을 지우고 있다는 사실을. ‘삭제’ 버튼 하나만으로 그 모든 것이 순식간에 처리된다는 사실을.
사람이 좋아,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기 위해 시작한 이메일. 그러나 아무리 ‘나’를 인식시키려 발버둥쳐도 그들은 당신을 인식하지 못한다. 당신에게 그들이 ‘그들’이듯, 그들에게 당신도 ‘그들’ 중의 하나일 뿐. 그래서 당신이 생각해 낸 처절한 방안, “그들을 괴롭혀서라도 ‘나’를 인식시키자”. 키스하고 싶은, 그러나 가면을 포기할 수 없는 당신의 변질된 사랑, 바이러스.

‘우리’가 되는 법

그들은 계단을 오른다. 저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해 한시가 급한 그들에게 이메일은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뒤를 돌아보지 않아도, 걸음을 멈추지 않아도 다른 이들과 소통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들이 오르고 있는 계단은 진정 ‘오르는’ 계단인가. “이봐요, 당신이 오르는 계단은 오르는 계단이 아닙니다” 희미한 소리에 뒤돌아보는 그들, 아아 그들은 가면을 쓰고 있었지.
살인현장에 놓여진 목없는 시체를 본 적이 있는가. 우리는 그가 누군지 확인할 수 있다. 그의 것이 분명한 팔다리, 푸른색 와이셔츠, 결혼반지, ‘그’임을 말해주는 모든 증거들. 그러나 ‘그’는 아직도 ‘그’인가. 머리의 상실에 따르는 표정의 상실, 생에서 죽음으로 이어지는 마지막 흔적마저 빼앗긴 ‘고깃덩어리’. 줄리아 크리스테바가 말하는 ‘두 번째의 살인’. 수많은 이메일들을 받으며, 왜 가끔은 그의 수줍은 미소로 건네는 편지를 그리는지. ‘아바타의’ 표정이 아닌 살아있는 ‘그의’ 표정. 최혜실 과기대 교수(국문학)는 “이메일을 통한 교류가 오히려 현실에서의 접촉을 단절시키고 있다”며 이메일 문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편리함들을 만끽하되, 멀어져가는 인간관계를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올라가기에 급한 그들, 올라가기에 급한 당신, 왜 모르는가. 한번의 되돌아봄도 없는 당신의 ‘올라가기’가 실은 ‘내려가기’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진정한 ‘오름’을 꿈꾸는 당신, 이방인이 아닌 ‘우리’를 꿈꾸는 당신, 가끔은 뒤돌아 상대편을 마주보자. 그리고는 가면을 벗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키스를, 그들과 하나가 되는 깊은 키스를.
박나영 기자 imnaria@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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