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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여성교육의 선구자 제인 오스틴
[역사 속의 인물] 여성교육의 선구자 제인 오스틴
  • 김희선 성결대·영어영문학과
  • 승인 2010.12.13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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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Jane Austen)은 1775년 12월 16일 영국 남부 햄프셔의 스티븐튼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목사인 아버지 조오지 오스틴과 어머니 카산드라 사이에서 6남 2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제인 오스틴이 살던 시대에는 여성에게 교육의 기회가 제한돼 있던 때라, 그녀의 오빠들이 옥스퍼드대에서 교육을 받거나 사업가 또는 목사가 됐던 것과는 달리 제인과 언니 카산드라는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 여덟 살 무렵 친지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일 년, 이듬 해 레딩에 있는 수녀원에서 운영하는 기숙학교에서 일 년 교육을 받은 게 제인과 언니가 받은 정규 학교교육의 전부였다. 그 후에는 줄곧 아버지에게서 배웠고 노래, 그림, 피아노, 자수 등을 즐겼다. 다행히 그녀의 가족들 모두 문학적 성향이 뛰어나 가족끼리 문학작품을 낭송하거나 연극을 하기도 했으며, 이런 문학적 분위기 속에서 제인은 폭넓은 독서와 문학적인 감성을 키울 수 있었다.

제인 오스틴은 21세 되던 1796년, 『첫인상』이라는 소설을 완성하고 아버지가 이를 출판사에 가져갔으나 원고조차 보여주지 못하고 거절당했다. 이것은 후에 개작과 수정을 거쳐 16년 뒤에나 출판됐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오만과 편견』이다. 이 소설의 여주인공 엘리자벳은 생기발랄하고 도전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해 제인 자신과 자주 동일시되곤 한다.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 『센스와 센스빌리티』, 『맨스필드 공원』, 『엠마』, 『설득』, 『노생거 사원』등 모두 6권의 소설을 완성하고, 1817년 7월 18일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결혼하지 않고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는데, 그녀 소설의 여주인공들 모두 사랑을 성취해 결혼에 이른 것과는 사뭇 대조된다.

제인 오스틴은 “시골의 서너 가정만 있으면 소설 거리로 충분한 재료”라고 늘 말했고, 이는 그녀의 소설이 주로 가정의 티 테이블 주변에 모여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결혼 적년기의 남녀들의 애정관계를 다루었다고 해서 ‘티 테이블의 로맨스’라고 부른 것과도 상통한다.

이를 두고 그녀의 소설세계가 협소하고 제한돼 있다고 보는 이도 있다. 그러나 그녀의 문학세계를 일컬어 ‘섬세한 붓으로 작업하는 2인치 넓이의 작은 상아조각’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이는 그 상아조각의 공간이 비좁다 할지라도 그 안에 조각돼 있는 세밀함과 정교함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만큼 우수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오스틴은 탁월한 언어감각을 가지고 영국 역사의 지극히 작은 공간인 18세기 말 영국 사회의 일면을 실로 생생하게 묘사했다. 계급이 존재하던 당시 영국사회에서 각 계층의 인물들의 태도와 언행을 사실적이고 예리하게 포착하는데, 그중 젠트리(신사) 계급의 속물근성과 위선을 향한 오스틴의 시선은 매우 신랄하고 따갑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은 한마디로 여성교육의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메리 올스톤크래프트와 같은 선구자적 페미니스트들의 영향을 받아, 당시 18세기 영국사회의 젊은 여성들이 당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결혼과 경제문제를 조명한다.

오스틴은 지적이고 도덕적으로 성장 가능한 여성의 능력을 믿었고, 남녀 간의 평등과 상호존중에 바탕을 둔 결혼, 가정의 화목과 책임 등에 대해 확고한 신념을 지녔다. 당시 여성들에게는 선거권도 주어지지 않았고(영국에서 여성에게 선거권이 주어진 때는 1928년)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자유는 상당히 제한돼 있었으며, 결혼 이외에 여성이 안정된 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때였다.
여성의 교육도 음악, 그림, 춤, 소설읽기 등에만 국한돼 있었고 여성이 세계를 경험할 기회는 남자들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다. 이렇듯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사회적 활동과 행동의 제약을 받던 당시의 사회에서 오스틴 소설의 여주인공들은 당차고 주체적인 목소리를 냈다.

인생의 문턱에 서게 되는 여주인공들이 여러 가지 시련에 의해 정신적인 성장을 겪고 비로소 자기확립에 도달하게 되는 과정을 그려냄에 있어서, 오스틴은 셰익스피어 이후 처음으로 사려 깊고 믿음직하며 야심과 재치를 지닌, 그리고 남자들로부터 독립적인 사고를 하는 여성들을 문학에서 만날 수 있게 했던 것이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오스틴 소설의 여주인공들이 결혼을 통해 자아성취를 완성한다는 점이 21세기 독립적인 현대여성상과 거리가 멀게 느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제인 오스틴이 살던 18세기가 여성이 한 인간으로 자아실현을 한다든지 사회적 발언을 하는 것이 금기시되던 시대임을 상기할 때, 그녀가 충분히 시대적 상황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노력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남성중심적 사회를 향해 주체적인 여성의 자기인식의 주제를 당차게 표출한다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필요한 일이고, 결혼의 주제가 시대를 막론하고 모든 청춘남녀의 주된 관심사임을 인정하면 이 시대에 제인 오스틴의 소설을 다시 읽어보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김희선 성결대·영어영문학과

성결대 인문과학연구소장, 한국18세기영문학회 편집이사로 활동하고 있다. 공역서로 『해체비평: 이론과 실제』, 대표 저서로 『제인 오스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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