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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3> 배설물의 색깔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33> 배설물의 색깔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0.12.0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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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혈구의 장렬한 최후

‘너 스스로를 알라’고 했던가. 내가 무엇이며 누군가를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일 텐데, 그럼 간은 어디에 붙어있고, 눈알은 얼마나 크며, 핏줄을 다 모아 이으면 얼마나 길며, 똥과 오줌은 왜 누르스름한가. 이 따위들도 나 자신을 알아보는 한 수단방법일 것이다. 덩치/몸피에 따라 다르지만 적게는 60조개에서 많게는 100조개쯤의 세포가 모여 여러 조직을 이루고, 조직은  많은 기관(눈, 위, 간 등)을 만들어 하나의 정밀한 몸이 된다. 복잡하기 짝이 없는 몸체가 삶을 누리면서 살아있는 것이 정녕 기적이다. 어느 기관 하나 잘 못 되면 병신이 되거나 골로 가니 하는 말이다.

그런데 왜 소변과 대변의 색이 누르스름하며 황달에 걸리면 얼굴/눈자위가 누렇게 되는가. 이미 본란에 ‘적혈구’에 관해 논한바 있다. 피 한 방울에 적혈구가 대략 3억 개가 들었다고 하니 얼마나 작은 세포인가를 알 것이고, 적혈구는 지름이 7∼8㎛로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도넛모양으로 산소와 결합하는 표면적을 넓힌다. 또한 우리 몸속의 큰 뼈다귀(두개골, 척추, 골반, 늑골, 팔다리뼈 등)에서 만들어질 때는 核(nucleus)이 있었으나 자라면서 사라져버린다. 때문에 적혈구는 핵이 없어 분열하지 못하며, 그것이 없어진 자리에 산소와 결합하는 헤모글로빈이 메운다.

헤모글로빈은 4개의 헴(heme)과 글로빈(globin)단백질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최대한 4분자의 산소와 결합한다. 그리고 피가 붉은 까닭은 헤모글로빈을 구성하는 헴에 든 철(iron)이 산화돼 산화철이 된 탓이다. 적혈구는 특이하게도 다른 세포들이 다 지니고 있는 미토콘드리아(mitochondria)가 없다. 그것은 세포 안에서 우리가 숨 쉰 산소와 음식을 먹어 소화시킨 양분을 받아 산화시켜 우리가 쓰는 모든 힘, 체온을 유지하는 열, 숨 쉴 때 코로 나가는 이산화탄소를 만드는 세포소기관인데, 적혈구에는 이것이 없어 물질대사기능이 거의 없다. 만약 적혈구에 미토콘드리아가 있다면 몸의 세포들에 산소를 운반하기 전에 제가 다 써버릴 번 했다. 아, 오묘한 자연의 섭리여! 그러기에 적혈구는 다른 세포에 비해 수명이 아주 길고, 혈액은행에 한 달 넘게 보관했다가 수혈에 쓸 수 있는 있는 것이다.

간단히 줄여, 쉽게 이야기하면 적혈구는 120여일 살고나면 죽어서 간(liver)과 지라(비장, spleen)에서 파괴되고(1초에 무려 200여 만 개가 죽고 금세 그 만큼 생김) 따라서 적혈구(붉은피톨)속의 헤모글로빈도 분해되며, 헤모글로빈의 헴(heme) 역시 분해되면서 누르스름한 색을 띠는 물질인 빌리루빈(bilirubin)이 생성된다. ‘적혈구의 시체 썩은’ 이것이 대소변의 색을 결정하며 식물에서도 그 물질이 발견된다. 헌데 이 때 생겨난 헴의 철(Fe)은 그냥 대소변으로 술술 다 내보내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 재활용하니, 재활용률이 남자보다 여자가 훨씬 높다. 여기에서도 여성들의 알뜰살뜰함을 발견하는데, 그렇지 않으면 매달 줄기차게 소비하는 적혈구(철)가 부족해 빈혈이 되기 십상이다.

빌리루빈도 그냥 두면 독성을 띠기에 서둘러 생기는 족족 배설해야 한다. 일단 쓸개(담낭)에 모았다가 샘창자(십이지장)로 빠져나가 대변으로 내보내는 길이 외에, 콩팥에서 걸러진 것이 방광에 고였다가 곧장 소변에 묻어 나간다. 빌리루빈을 설명하는 데는 黃疸이 제격이다. 간이나 쓸개/담관이 고장 나서 빌리루빈이 제대로 흘러나가지 못하고 몸 안을 뱅글뱅글 돌게 되는 것이 황달이고, 그래서 얼굴이나 눈의 흰자위, 피부가 누르스름한 ‘똥색’이 된다. 다쳐 피멍이 들었을 때도, 처음엔 퉁퉁 부으면서 검푸르렀던 상처가 며칠 지나면 갈아 앉으면서 누르스름해지지 않던가.

사실 우리 몸에서 근육(힘살)과 신경을 제외하고는 모든 조직의 세포는 일정한 기간이 지나면 어김없이 죽고, 새로 생겨난다. 살갗세포는 보통 이레 남짓, 미토콘드리아는 십 여일, 적혈구는 장수하는 편으로 넉 달을 살고 죽는다. 그래서 80일이 지나고 나면 우리 몸의 약 반(1/2)은 새로운 세포로 바뀐다고 하지 않는가. 우리 몸의 세포는 끊임없이 生滅을 반복한다! 간단하게나마 배설물색깔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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