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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위자 중심적 관점 통해 ‘지구화’ 설명 … 그의 미덕은 무엇일까
행위자 중심적 관점 통해 ‘지구화’ 설명 … 그의 미덕은 무엇일까
  • 남영호 서울시립대·사회인류학
  • 승인 2010.11.22 15: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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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말하다] 마이클 피터 스미스 지음, 『초국적 도시이론』(남영호·홍준기·이현재 외 6인 옮김, 한울, 2010.10)

한국에서 지구화는 신자유주의의 일부거나, 그의 변종쯤으로 이해되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이를테면 한미 FTA나 한국-EU FTA 같은 전면적 시장개방 움직임은 초국적 자본의 논리와 이를 뒷받침하는 미국 정부(또는 유럽연합)의 압력에 따른 지구화의 대표적 사례이며, 신자유주의적 정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한미 FTA의 경우도 그렇지만, 이러한 시장개방 움직임은 미국 내에서도 민주당 계열, 시민운동 단체, 노동조합의 강한 반발을 사고 있다는 점이다. 부시 행정부 시절 정부 차원에서 타결된 한미 FTA는 결국 민주당이 지배하는 의회의 벽을 넘지 못했고, 이제 재협상 (또는 그에 준하는 힘겨루기)을 거쳐야만 하는 형국이다.

한국과 미국뿐만이 아니다. 지구화는 세계 많은 곳에서 자신들의 정부를 넘어서는 차원에 존재하는 어떤 곳의 음모와 지령, 그리고 신자유주의적 논리에 따라 자신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제적 과정으로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개별 국민국가 차원을 넘어서 활약하는 ‘그 곳’은 어디인가. 초국적 기업인가. 자본 일반의 논리인가.

현재도 진행 중인 국가와 자본의 역할에 대한 오래된 논쟁은 일단 젖혀두자. 여기서 문제는 지구화가 하나의 국민국가 또는 일정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의지와 바람과는 무관하게 또는 정반대로 그를 넘어서는 어떤 힘에 따라 추동되는 주로 경제적인 과정으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2004년 이래 전체 결혼 건수 가운데 매년 10%를 넘게 차지하는 한국의 국제결혼이나, 올해 사상 최초로 3천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되는 한국인 출국자 숫자, 인터넷으로 연결돼 빠르게 유통되는 세계 각국의 소식과 정보는 어떻게 되는가. 그래서 지구화를 단순하게 경제적 과정에만 국한시키는 것보다는, 자본·정보·노동력의 더욱 활발한 이동으로 정의하는 것이 더 포괄적이면서도 적당한 규정이기는 하다. 그래도 이러한 정의는 우리 시대의 근본적 특징 가운데 하나인 지구화의 속성과 결과를 이해하기 위한 출발점에 불과하다.


이번에 우리가 번역한 마이클 피터 스미스(Michael Peter Smith)의 주저 『초국적 도시이론: 지구화의 새로운 이해』는 이렇듯 딱히 한마디로 잘라 말하기 힘들면서도 우리의 일상생활 곳곳에 이미 스며들어 있는 지구화를 새로운 각도에서 조망하는 책이다. 스미스가 다소 생소한 초국적 도시이론(transnational urbanism)이라는 용어를 고안해 낸 것도 사실은 지구화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그간의 논의들에 반대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데이비드 하비(David Harbey)는 지구화를, 자본 축적의 공간적 제한을 극복하는 방식으로서 ‘시간에 의한 공간의 소멸’로 정의한다. 이 정의에서 지구화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단계를 의미하고 포스트모던의 조건을 형성하지만, 자본주의의 근본적 모순이 변화한 것은 아니다. 카오스적이며 분산·해체되고 탈중심적인 사회문화적 현상의 뿌리는 궁극적으로는 생산관계의 지속 속에 자본축적 방식의 변화에 있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이러한 하비의 입장이 젠더·인종·종교 등 각 부분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저항을 단지 지역적이며 부수적인 현상으로 치부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왜냐하면 하비는 자본주의가 지속되는 한 계급투쟁만을 본질적인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지구화를 자본의 일방적인 논리의 귀결로 보는 견해에 반대한다는 것이 스미스의 ‘초국적 도시이론’의 출발점이다.

다음으로 최근의 도시이론가들 가운데 가장 聲價를 높이고 있는 존 프리드만(John Friedmann)과 사스키아 사센(Saskia Sassen)의 글로벌 시티 이론도 하비의 이론과 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비판의 대상이다. 프리드만과 사센은 국제 경제의 지구화를 바탕으로 자본이 국민 국가 차원이 아닌 소수의 글로벌 시티로 집중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지구적 도시체제가 위계적으로 조직되고 있다는 주장을 편다. 이 주장에서도 최근 세계 도시의 변화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는 것은 자본으로 전제돼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적인 분석이 결여됐다는 것이 스미스의 비판이다. 그는 이 책에서 글로벌 시티 이론에서 제시한 사례 가운데 하나인 미국 로스앤젤레스를 분석하면서, 프리드만과 사센의 주장과는 달리 로스앤젤레스의 경제는 부침을 거듭했으며 이 밑바닥에서는 종족경제(ethnic economy)의 활발한 재구성이 놓여 있음을 보여준다.

이렇게 지구화를 자본의 일방적 주도와 거기에 국민국가가 순응하는 과정만 아니라, 행위자 중심적인(agent-oriented) 관점에서 풀뿌리 네트워크가 초국적으로 활발하게 형성되고 재편되는 과정으로 함께 보아야 한다는 것이 스미스의 핵심적인 주장이다. 사파티스타가 제안한 멕시코 국민투표에 해외에 거주하는 멕시코인이 적극적으로 참여한 것, 독재정권이 붕괴한 뒤 인도네시아 선거에 제3세계 국가들의 NGO들이 대거 참여해 선거 감시를 한 일, 인도 정부가 해외 거주 인도인에게 국채를 팔아 인프라를 건설하는 과정, 재미 한국인이 한국 경제와의 연계를 유지·발전하는 것, 미국 거주 남미인의 본국 송금이 본국의 국민 경제에 커다란 역할을 하는 것 등에서 알 수 있듯 지구화는 풀뿌리 차원의 네트워크를 보지 않고서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러한 초국적 움직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차지하는 것이 몇몇 세계적 대도시뿐 아니라, 도시 일반이기에 스미스는 도시를 강조한다. 여기서 지역으로서의 도시는 자연적으로 이미 주어진 것이 아니라 행위자인 초국적 네트워크의 형성과 재형성에 따라 항상적으로 새롭게 구성된다. 지역성(locality)은 담론적 실천들에 의해 생산되고 유지되는 매우 유동적인 공간이며 초국적 상호작용이 지속적으로 진행중인 장소에 관련된 이름이 된다. 그래서 지역을 지구화라는 외부의 작용으로 피해를 입거나 저항하는 근거지로 보는 것은 전통적인 공동체(community)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본질주의적 사고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스미스의 주장에 대해 초국적 네트워크를 모두 진보적인 것으로 간주해 특권화하는 것이라든지, 도시의 배후에 존재하는 수많은 사람들, 이주와는 무관하게 살아가며 초국적 네트워크를 떠받치고 있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과의 관련성은 무시했다든지, 또 지구화 시대 사람들의 다양한 저항의 의의를 인정해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 저항들 사이의 상호관계에 대한 분석은 결여하고 있다는 등의 비판이 있어 왔다.

하지만 스미스의 주장에 동의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이 책은 그간 한국에서 진행된 지구화 논의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 올리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이곳’의 현장성과 함께 이에 대한 저자의 치열한 이론화 작업에서 배울만한 내용을 풍부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남영호 서울시립대·사회인류학

필자는 영국 캠브리지대에서 박사를 했다. 서울시립대 도시인문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있다. 저작으로는『혼혈에서 다문화로』(공저) 등과 다수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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