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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파식적] : 보이지 않는 시선에 대한 공포
[만파식적] : 보이지 않는 시선에 대한 공포
  • 교수신문
  • 승인 2002.05.2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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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22 09:50:52
나희덕 / 조선대·국문학

얼마전 한 선배가 사진과 음악 파일을 보내 주었는데, 내가 사용하는 메일 용량이 너무 적어서 열어볼 수가 없었다. 그 말을 들은 선배는 어디에 메일을 새로 만들면 좀더 큰 용량의 메일을 사용할 수 있는지, 메일을 종합적으로 관리해주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다운 받는지 자상하게 가르쳐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새로운 메일을 만들지 않았다. 결혼하고 열 번 가까운 이사에 신물이 나서 이젠 메일 주소가 하나 더 생기는 것도 스트레스가 된다고 웃으면서 핑계를 둘러대었지만, 정작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새 메일이 생기면 아침저녁으로 메일을 확인하는 시간이 두 배로 늘어날 것이고, 여기저기서 날아드는 광고 메일들도 점점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하루에 수십 통의 메일을 일일이 클릭해서 지우다보면 그 무단의 침입자들에 대해 짜증이 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손의 수고와 시간의 낭비로만 끝나지 않는다. 나에 관한 정보가 여기저기 흘러다니고 있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관리나 감시의 대상이 되어가는 듯한 불안이 가슴 밑바닥에 쌓여가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꼭 필요한 한두 통의 메일을 받기 위해 이토록 많은 익명의 적들을 해치워야 하는 싸움은 쉽게 끝날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정보통신기술은 우리에게 다양한 편리를 제공해 주었지만, 그것의 대가로 우리는 사생활 곳곳에 침투하여 감시의 망을 작동하는 거대한 권력구조의 지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된 것이다.
렉 휘태커는 이 새로운 권력구조를 보상과 참여로 유지되는 ‘원형감옥’에 비유하면서 정보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개인의 죽음’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미셸 푸코가 말한 ‘원형감옥’이란 환상의 건물이 아니라 이상적인 형태의 권력장치를 나타내는 도형임이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이 감시당하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그 시선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알 수 없는 현대인의 생활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원형감옥이라는 생각이 든다.
컴퓨터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시선은 디지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 곳곳에 숨겨져 있다. 백화점이나 은행, 심지어 아파트 지하주차장 등 사람들이 드나드는 곳에는 으레 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다. 끊임없이 돌아가는 필름 덕분에 범죄를 예방하거나 범인을 잡는 일도 많지만, 다른 목적으로 악용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아도 어디에 가나 보이지 않는 시선의 감시를 받아야 한다. 도청장치나 몰래카메라가 특수한 직업이나 용도에 국한되지 않고 평범한 사람들도 많이 구입한다는 뉴스를 들은 적이 있다. 역으로 그런 장치를 탐지하는 기계도 그에 못지 않게 팔린다고 하니, 현대인이 얼마나 감시의 욕망과 공포를 동시에 지닌 존재인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바닥에는 서로에 대한 불신과 건강하지 못한 호기심이 깔려 있다.
이렇게 보이지 않는 시선에 대한 공포가 범죄에 대한 공포 못지 않다고 말한다면 과장된 표현일까. 그러나 익명의 메일을 자못 열었다가 몇 년간 구축한 데이터베이스가 날아가버렸을 때, 막연한 공포는 현실적인 분노로 바뀌게 된다. 자신의 정보를 등록시켜야만 들어갈 수 있는 사이트들, 그 정보의 바다는 자유의 공간인 동시에 보이지 않는 시선의 지뢰밭이기도 하다. 그 시선의 폭격에 조금이라도 덜 노출되기 위해 메일주소를 늘리지 않는 것 말고는 무슨 뾰족한 수가 정말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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