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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은 가만있어도 만점 … “논문 위주 업적평가 개선돼야”
‘교육’은 가만있어도 만점 … “논문 위주 업적평가 개선돼야”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0.10.25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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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교수들이 대학원 강의만 맡으려는 이유는?

서울대의 전임교원 확보율(편제정원 기준)은 130%가 넘는다. 인문사회계열은 140%가 넘고,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도 17.6명이다. 그런데 강의 시간수를 보면 학부 강의에서 전임교원이 담당하는 비율은 55.9%에 불과하다. 나머지 44.1%는 시간강사와 겸임교수, 초빙교수 등 비전임 교원이 맡았다. 반면 대학원은 전임교원의 강의 비중이 90.3%에 달했다. 전북대, 제주대 등도 서울대와 사정이 비슷하다.

교수들이 대학원 강의에만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1일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의 서울대 국정감사에서 그 원인의 한 단면이 드러났다.

임해규 한나라당 의원은 “승진 및 재임용 심사 등 교수업적평가에서 교육영역 평가는 대체로 모두 만점을 받는 ‘기본점수 따기’식인 반면 연구실적에 대한 양적평가는 더욱 극심해 지고 있어 교육은 뒷전이 되고 있다”라며 “우수 학생을 유치하고 대학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연구는 물론 교육의 질도 높여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료:임해규 한나라당 의원실


서울대 A단과대학의 승진 및 재임용, 정년보장을 위한 영역별 교수업적 평가표를 한 번 보자. A단과대학의 교수업적평가는 교육 40점, 연구 40점, 봉사 10점, 기관장 평가 10점 등 총 105점이 만점이다. 이 가운데 교육활동 평가는 책임시간 15점, 학위배출 15점, 강의평가 5점, 기타 5점으로 구성된다.
그런데 책임시간은 연간 책임 강의시수만 채우면 무조건 최고점인 15점을 받을 수 있다. 학위배출 항목도 5년 안에 박사 2명이나 석사 3명만 배출하면 만점을 받는다. 논문 심사위원으로 3번 참여하면 석·박사 1명을 배출한 것으로 인정해 준다.

※자료:임해규 한나라당 의원실

기타 항목은 신규교과개발, 교양과목강의, 교직과목강의, 계절학기강의, 50명 이상 대형 강의를 재직 기간 중에 2과목 이상만 받으면 최고점을 받는다. 사실상 누구나 만점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이다.
강의평가는 연평균 2과목 이상만 받으면 만점이다. 강의평가 결과는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강의를 하고 강의 평가를 받았다는 사실만으로 최고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구조다. 이런 사정은 다른 단과대학도 크게 다르지 않아 대학원에서는 아예 강의평가를 실시하지 않는 단과대학도 있다.

반면 연구실적 평가는 단독으로 1편을 쓸 경우 100점, 2명 공동은 70점, 3명 공동은 50점, 4명 이상은 30점으로 차이가 크다. 재직기간이 5년 이상인 교수는 5년 동안 600점을 받아야 최고점수를 받을 수 있다. 교내·외 공모 연구과제 수행이나 산학협동실적 등을 말하는 기타 연구활동은 4건 이상을 제출해야 5점 만점을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수들이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하다고 생각하는 대학원 강의에 매달리게 되는 것이다.

같은 당 김세연 의원 역시 이날 국감에서 “서울대 인문대학의 경우 전체 총점이나 영역별 총점이 제한돼 있지 않아 연구업적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논문 등의 업적이 많은 교수는 교육이나 봉사 업적이 없어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구조”라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교육업적 평가는 석·박사 배출 인원이나 대학원생 지도, 논문 심사만 배점 기준이며 이는 다른 단과대학도 모두 적용하고 있다”라며 “아무리 강의를 잘하고 많이 해도 업적평가에서 점수를 얻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서울대 교수들 역시 이러한 문제점을 잘 알고 있다.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가 2007년 실시한 인식 조사에서 교수들은 “연구업적 위주의 평가 시스템에서는 교육의 질을 제고하기 어렵다”라며 △강의준비에 시간을 더 배려할 수 있도록 평가 개선 △교수업적평가도 연구업적과 대등하게 평가되도록 선택 △강의평가 강화 등의 정책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임해규 의원은 “교수들이 가르치는 일에 신경 쓸 시간이 없다기보다는 우선순위에서 밀리는 것”이라며 “교육활동이 실질적으로 평가에 반영될 수 있도록 평가도구를 개발하는 등 정책적인 환경 조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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