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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깍발이] 총체적 위기 /변진흥 편집위원, 인천가톨릭대
[딸깍발이] 총체적 위기 /변진흥 편집위원, 인천가톨릭대
  • 교수신문
  • 승인 2000.1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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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12-18 14:21:18

총체적 위기

변진흥/편집위원, 인천가톨릭대

새 천년의 문을 열었던 서기 2000년이 저문다. 과연 2000년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희망을 비추어 주었는가. 전혀 그렇지 못하다. 남은 것은 분노와 체념 그리고 절망밖에 없다. 저무는 해를 애석해 할 여유마저 갖지 못한 분노의 함성만이 메아리친다. 온 사회가 무의식적인 좌절과 '개혁 피곤증'에 찌들어 더 이상 갈 곳 없는 체념 속에 분노의 불꽃만을 지피고 있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이 어둠 속으로 내몰고 있는가.

때 이른 의약분업의 실시로 피곤해진 서민들의 짜증을 가벼이 보아서는 안된다.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을 찾은 환자에게 다시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헤매게 만들면서 약값은 2배로 더 내게 했다면 불평하지 않을 사람이 없다. IMF가 왔을 때 당연히 퇴출되었어야 할 기업을 억지로 살려놓고, 제대로 관리하지도 못한 채 이제는 다시 강제 퇴출시키면서 국민들의 혈세를 통째로 들어붓는 어리석은 행위가 환영받을 수도 없다. 수술은 성공해도 환자가 죽으면 소용없다는데 수술도 성공시키지 못할 의사에게 개혁이란 환자를 맡긴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냐고 묻는 물음에 어떻게 답할 것인가. 그냥 한번 맡겨볼 수밖에 없었다는 옹색한 변명이 지금도 통할 수 있겠는가.

진정한 개혁은 합리성과 효율성을 지녀야 한다. 인위적 질서와 규칙을 강요하는 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자율적 질서와 윤리적 가치판단을 이끌어 내지 못하는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권대통령', '경제대통령'을 내세워 준비된 대통령의 이미지를 부각시켰던 국민의 정부가 개혁에 발목잡힌 이유는 무엇인가. 합리성과 절제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천민자본주의의 속성을 바꾸어 놓으려던 개혁의지가 이전투구식 권력의지에 묻혀 버리면서 개혁성적표 수치만 높이려는 겉치레에 머물고 만 결과이다.
2000년을 찬란히 수놓았던 남북정상회담의 감격과 이산가족 상봉의 눈물 그리고 노벨평화상의 영광마저 개혁피곤증에 묻히면서 한순간에 빛을 잃고 마는 이 한심한 현실, 그 막막함에 딸깍발이조차 말문이 막히고 가슴이 저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밝아오는 새 날 새 아침을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어둠이 깊을수록 새벽이 가까이 다가와 있음을 잊지 말자고 다짐하던 그 옛날의 일을 과연 어떤 마음으로 되새겨보아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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