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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요한 것은 열정” … 깊은 지적 네트워크 연결할 수 있어야
“중요한 것은 열정” … 깊은 지적 네트워크 연결할 수 있어야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10.04 14: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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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전환 필요한 해외석학강좌

지난달 고려대에서 마련한 테리 이글턴 교수의 라운드테이블에 최성만 이화여대 교수(독어독문학과)는 대학원생 제자와 동행했다. 세계적인 마르크스주의 문학연구자를 직접 만나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였기 때문이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예상과 달리 해외석학과 국내학자들의 만남은 간단한 문답을 주고받다 끝나버렸다.

통역과정도 신통찮았다. 되물을 기회조차 얻지 못할 만큼 싱거운 진행이었다고 말한다. 이글턴 교수는 여정의 피로를 이유로 저녁식사 자리도 고사했다. 최 교수와 대학원생 제자는 근처 맥주집에 들러 아쉬움을 삭혔다. ‘아, 지금 이 자리에 이글턴 교수가 있어야 하는데…’

수천만원을 들여 해외석학강좌를 열면 언론보도로만 알려질 뿐 학계는 냉담하다. 지난달 29일, ‘2010 문명과 평화 국제포럼’ 제1주제 발표가 시작됐지만 현장은 한산하다.

2008년 랑시에르의 반면교사

해외석학강좌, 대학원 세미나 수준에서 만족할 것인가. 해외석학강좌가 새삼 도마에 오르고 있다. WCU사업 등의 영향으로 해외석학의 국내대학 방문강의가 잦아졌는데, 이에 보태어 해외석학 초청강좌는 또 어떤 지적자극제의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선 교수들은 대체로 회의적이다.

행사비용에 비해 효과가 미미하다는 비판이다. 학계 간 지적교류의 산물로써 해외석학 초청이 연결되지 않고, 인맥이나 거액의 배팅(!)에 의존해 해외석학을 ‘모셔오는’ 현실을 감안하면, 강연장에서 치열한 토론을 기대하는 게 애초에 무리라는 의견도 나온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정작 초청강연을 다녀간 해외석학들도 한국학계에 실망감을 나타내기도 한다.

교수들은 유명세에 의존해 1회성 행사로 그치고 마는 해외석학강좌의 고질적 문제가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우선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신진학자를 발굴하는 작업을 뒤따라야할 과제로 꼽는다.

지난 2008년 방한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 프랑스8대학 명예교수는 프랑스문화원과 출판사의 협업(?)으로 성사시킨 사례다. 프랑스문화원은 섭외를 맡고, 출판사가 기획과 진행을 맡았다. 많지 않은 강연료(400만원)였지만 출판사는 강연주제를 수차례에 걸쳐 조율할 수 있었고, 한국을 찾은 랑시에르 교수는 강연시간 30~40분을 넘기면서도 국내학자, 학생들과 열띤 토론을 벌였다. 홍익대 강연에서는 300석이 발디딜 틈없이 가득찼다.

언론사 인터뷰 외에도 강연에 참석했던 젊은 학자들이 개인 블로그로 랑시에르 강연 내용을 알려 촉매효과를 톡톡히 봤다. 출판사 관계자가 랑시에르 교수에게 초청제의를 받아들인 이유를 묻자, “본래 인문학이 그런 것 아니냐. 열정이 모이는 게 중요하다”고 답했다고 한다.

“논쟁 나눌 수 있게 컨셉 바꾸자”

해외석학의 이름값이나 몸값에 걸맞은 지적 네트워크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데에는 초청방식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구의 해외석학들은 몸값이 너무 높게 책정된 경향이 있다”고 평가하는 정정호 중앙대 교수(영어영문학과)는 “동아시아로 눈을 돌려 해외석학의 지역적 다변화를 도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섭외는 문화원, 대사관, 전담 출판사 등 공신력 있는 접근경로를 통해 주제중심으로 타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택광 경희대 교수(영미어문학부)도 “차라리 최근에 부상하고 있는 학자들을 초청해 학자들 간에 논쟁적 측면을 나눌 수 있게끔 초청 컨셉부터 바꾸자”고 제안했다.

해외석학 초청강연이 학자들 사이에서도 이목을 끌지 못하거나, 주최한 단체의 홍보행사 수준으로 치러지는 현실에서 내실을 기대하기는 막막한 상황이다. 강연원고와 토론 내용을 바탕으로 출판물을 간행하는 것도 학계의 호응 없이는 힘을 받기 힘들다.

해외석학강좌를 학계 간 ‘지적 네트워크’로 이끌어내려면 결국 ‘우리식으로 학문하기’라는 과제가 남는다. 해외석학이나 노벨상 수상자에 대한 지나친 동경이 해외석학강좌를 홍보수단으로 ‘매립’시킨 건 아닌지, 해묵은 논의는 물밑에서만 이뤄진다. 시간당 수천만원의 비용을 쏟아 붓고도 우리는 어쩌면 그들이 전하는 ‘진짜 메시지’를 깨닫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글·사진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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