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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부터 영업까지’ 부담 … “불필요한 절차 너무 많아”
‘기획부터 영업까지’ 부담 … “불필요한 절차 너무 많아”
  • 박수선 기자
  • 승인 2010.09.13 14: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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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들의 ‘과중한 행정업무’ 왜?

교수들이 ‘잡무’에 허덕이고 있다.
국내 이공계 박사들이 해외로 나가고 싶은 이유 가운데 하나가 ‘과중한 행정업무’였다. 국내 사회학자들은 한국 사회학의 발목을 잡고 있는 요인으로 ‘불필요한 행정업무’를지목하기도 했다(<교수신문>, 570호 참조). 행정업무가 얼마나 많으면 이런 반응이 나올까.

실제로 강의와 연구 이외에 전반적인 행정업무가 늘었다. 보직교수들의 이야기가 아니다. ‘요구하는 업무가 너무 많다’고 교수들은 입을 모은다. 먼저 대학에 각종 위원회나 행정조직이 늘어난 것이 한 요인이다. 서울 소재 대학에 재직하고 있는 ㅇ 교수는 대표적인 행정업무로 위원회 활동을 들었다. “대학에 위원회가 너무 많아졌어요. 행정기구와 회의가 늘면서 회의에 불려나가 앉아있는 경우가 많아요. 기존의 보직 이외에 2~3개의 위원회 명단에 올라가 있습니다.”


대학들이 정부정책과 재정지원사업에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다. 대학평가도 한몫했다. 논문을 쓰는 것만큼 ‘어떻게 하면 경쟁대학보다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전략을 짜는 것도 중요해졌다. 황대준 성균관대 기획처장은 “어떤 대학도 글로벌 경쟁체제를 벗어날 수 없다”며 “대학의 발전을 위해 교수들의 전문성을 결집해야 할 일이 많아진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각종 사업 계획서를 잘 만드는 데서 일이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ㅇ 아무개 교수는 “신규 사업에 선정되면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새로운 행정 조직이 생기는데 결국 그 일도 교수들이 맡을 수 밖에 없다”며 “또 거기서 만든 새로운 학사, 교육 시스템은 교수들의 행정업무 부담으로 이어진다”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예가 교육역량강화사업과 인증제도다. 모두 교육의 질을 높이고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대학들이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공학교육인증제에 대한 교수들의 불만은 지속적으로 제기됐다. 교육의 성과를 측정하고 계획을 세우는 일도 어렵지만 무엇보다 해야 할 서류작업이 많다. ㅈ 아무개 교수는 “어떤 문제가 얼마나 중요하고, 몇 명의 학생이 틀렸는지, 또 어떻게 잘 가르치겠다는 계획까지 서류로 제출해야 한다”며 “가장 큰 문제는 공학인증제도는 끊임없이 요구하지만 정작 무엇을 요구하는지 불분명하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ㄱ 아무개 교수는 요즘 교육역량강화사업 때문에 골치가 아프다. “기초학력이 떨어진다고 정규과정이외의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 가르치고 있어요. 취업지도나 교재를 새로 만드는 것도 결국 교수들이 해야 할 몫이죠. 해야 하니까 하는데, 얼마나 학생들에게 도움이 될지 확신이 없습니다.” 업무의 번거로움은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하는 회의감을 더 키우고 있다.

교수들이 불필요하다고 느끼는 행정업무는 이뿐만이 아니다. 연구비 정산을 비롯한 연구비 관리도 서류작업이 만만치 않다. 정부에서 ‘연구비 관리와 관련한 행정업무를 간소화했다’고 하지만 아직까지 현장에서 나타나는 변화는 더디다.

한 국립대 교수는 “보고서를 복사하고 비용을 받기 위해서는 복사실에서 납품서를 받아 다시 산학협력단에 제출하고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한다”며 “연구비의 이자까지 맞춰서 정산을 하고 있으면 왜 이런 일까지 해야 하는 지 스스로가 한심할 정도”라고 말했다.

문제의식은 해외 유학 경험이 있거나 젊은 교수일수록 더 크다. 올해 재직 2년차를 맞은 한 사립대 교수는 출장 문제를 꼽는다. “독일의 한 연구소에 있었을 때는 출장을 갔다 와서 비행기표를 직원한테 넘겨주면 끝이었어요. 그런데 여기서는 출장가기 전에 신청서를 제출하고 허가를 받고 나중에 보고까지 해야 합니다. 아무리 투명한 연구비관리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불필요한 절차가 너무 많아요.”

요즘 교수들은 기업에 빗대면 ‘기획’부터 ‘회계’, ‘생산’, ‘영업’까지 떠맡고 있는 상황이다. 그렇다고 본업인 교육과 연구에 소홀할 수도 없다. 이전보다 교육과 연구 실적에 대한 압박은 더 심해졌다. ‘이런 잡무 때문에 강의와 연구하는 시간을 뺏긴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다.

행정업무의 부담을 덜어줄 방법은 없을까. 행정전담교수제 도입을 제안했던 서정화 홍익대 교수(교육학)는 “교수의 역할이 다변화하면서 교수들도 이제는 교육과 연구만 하면 된다는 인식을 바꿀 필요가 있다”며 “대신 이런 노력에 대해 합당한 보상을 하는 구조를 만들고 전문인력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수들은 미국, 일본의 대학처럼 강의와 연구 행정을 전담하는 전문인력 확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서울 사립대에 재직하고 있는 ㅇ 아무개 교수는 “대학들이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율성을 요구할수록 연구와 강의의 질은 떨어지게 된다”며 “양질의 교육과 연구를 원한다면 여건을 갖추기 위한 투자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수선 기자 susu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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