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6 17:50 (금)
황조근정훈장 앞에서
황조근정훈장 앞에서
  • 권형진 기자
  • 승인 2010.09.06 14:53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훈장’ 상신 받지 못한 어느 정년퇴임 교수의 사연

이천희 전 청주대 교수(65세, 전자공학)는 지난달 28일, 지역 국립대에 근무하는 한 교수로부터 기쁜 소식을 들었다. 이 국립대 교수는 ‘학교로 온 공문에 황조근정훈장을 받는 걸로 나와 있더라’며 이 전 교수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2등급인 황조근정훈장은 재직기간에 따라 퇴직 교원에게 수여하는 훈·포상 가운데 사실상 훈격이 가장 높다. 1등급인 청조근정훈장은 4년제 대학 총장을 지낸 교원에게만 수여한다.

그러나 지난달 31일 정년 퇴임식에서 이 전 교수는 황조근정훈장을 받지 못했다. 다른 두 교수가 홍조근정훈장(3등급)과 대통령표창을 받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봐야 했다. 학교가 이 두 교수에게 내린 송공패와 전별금 역시 이 전 교수에게 돌아올 몫은 없었다. 이 전 교수는 “가족들과 동료교수, 직원들 앞에서 망신만 당했다”라고 말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달 6일 발송한 ‘2010년도 8월말 퇴직교원 정부포상 관련 협조요청’ 공문에 첨부된 ‘정부포상 추천 현황’에는 8월 5일 18시 현재 이 전 교수가 황조근정훈장에 추천된 것으로 나와 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불과 며칠 사이에 훈장이 날아가 버린 것일까.

이 전 교수가 훈장을 받지 못한 이유는 정년퇴임 4일 전 징계위원회에 회부됐기 때문이다. ‘2010년도 정부포상업무지침’에 따르면 ‘징계의결 요구 중인 자’는 정부 포상에서 추천이 제한된다. 그런데 징계과정을 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많다.

청주대가 이 전 교수를 정부포상 추천자에서 제외해 달라는 공문을 교과부에 보낸 것은 지난달 26일이다. 이 전 교수에게는 다음날 징계위원회원회 출석 통지서를 전달했다. 이 전 교수는 ‘반론서’를 준비해 지난달 30일 오후 2시 징계위원회에 출석했다. 하지만 ‘의사정족수가 안 돼 (징계위원회 개최가) 안 된다’는 직원의 이야기를 듣고 오후 2시 45분쯤 돌아갔다고 한다. 다시 ‘오후 3시 30분까지 징계위원회에 출석하라’는 전화가 왔으나 이 때 이 교수는 ‘서울에서 온 손님을 만나고 있어’ 출석하지 않았다.

이 전 교수는 “절차상 이 징계는 처음부터 이뤄질 수 없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청주대 교원징계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징계를 의결하기 전에 본인 진술을 들어야 한다. 출석 요구는 회의 소집 3일 전까지 해야 한다. 청주대 관계자는 지난 3일 “다시 출석요구를 해도 3~4일쯤 징계위원회를 열 수 있는데 이미 정년퇴임하고 난 뒤”라며 “퇴직한 교원을 징계할 수 있는 규정이 없어 논의 끝에 징계를 종료했다”라고 밝혔다.

교과부 관계자는 “퇴직교원 훈·포상 추천을 받은 대학 교원 가운데 이 전 교수만 보류됐다”라며 “징계의결 결과에 따라 추천 제한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면 1년 이내에 다시 추천하면 된다”라고 말했다. 결국 훈장 받는 시기만 한 학기 늦춰진 셈이다.

청주대가 ‘이뤄질 수 없는 징계’를 추진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 전 교수는 정년퇴임 직전까지 이 대학 교수회장을 지냈다. 지난 4월 학내 그룹웨어(전자문서관리시스템) 게시판과 전자우편으로 ‘교수회 회원 가입 권유’ 글을 올리면서 교수회가 아닌 교수연합회 소속 교수들의 실명과 소속을 밝힌 일로 학교 측과 불편한 관계가 계속되고 있다. ‘무단 삭제 논란’이 불거졌고, 이 일로 지난 5월에는 서면경고를 받았다. 교수연합회는 재단이나 학교 측에 우호적인 반면 교수회는 대립각을 세워왔다(<교수신문> 559호, 2010.5.24).

그러나 이 전 교수는 “그룹웨어 관리에 관한 내규 어디에도 개인의 전자사서함을 임의대로 삭제할 수 있는 규정은 없다”라며 지난달 중순 총장과 교무처장, 전산정보원장을 고소했다. 이 전 교수는 “내용 증명을 받은 교무처장이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훈장을 받지 못하게 하겠다는 말을 직원을 통해 들었다”라고 주장했다. 이 전 교수가 고소를 강행한 후 징계의결 요구가 있었던 것으로 봐 ‘괘씸죄’가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이에 대해 청주대 관계자는 “오해를 받을 소지는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지만 징계 사유가 발생했는데 안 할 수 있느냐, 원칙대로 하자고 해서 징계위원회를 소집한 것”이라며 “이 교수가 30일 출석했더라면 징계가 이뤄졌을 것”이라 말했다. 학교 측이 징계를 요구한 이유는 ‘교원으로서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할 경우, 복무질서를 문란하게 한 경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두어 차례 전화를 걸었으나 교무처장은 통화를 거부했다.

청주대가 지난해 12월 ‘명예교수 시행세칙’을 개정하면서 ‘재직 중 서면경고 이상의 처분을 받은 사람은 명예교수 추천 대상에서 제외한다’는 조항을 신설한 것을 두고서도 말이 많다. 이 전 교수는 “나를 포함해 교수회에서 활동한 교수 중에 경고를 받은 사람이 많다”라고 말했다.

권형진 기자 jinny@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조병훈 2010-09-08 11:17:33
진리를 가르치는 대학교에서 어떻게 이런 황당한 사건이 발생한 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