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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산책] 역사학자가 펴낸 『중국고대 형법』(김택민 지음, 아카넷 刊)
[책 산책] 역사학자가 펴낸 『중국고대 형법』(김택민 지음, 아카넷 刊)
  • 정긍식 서울대
  • 승인 2002.05.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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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5-07 14:00:07

정긍식 / 서울대·법학

입시 등 학사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때인 1월말 두툼한 책 한 권을 받았다. 바로 김택민 고려대 교수(역사학)의 역저 ‘중국고대 형법’이었다. 그 순간 눈이 번쩍 뜨였다. 이제 우리 학계도 본격적으로 중국법제사, 그것도 가장 기초적인 분야에 대한 연구서가 나왔다는 기쁨이었다. 기쁨도 잠시, 일상사에 젖어들었다. 서평을 부탁 받고 다시 펼쳐보니, 그 순간의 기쁨이 되살아났다. 하지만 서글픔과 自愧心이 일었다. 법학자가 아닌 역사학자가 당률 주석서를 먼저 발간했기에. 법제사를 연구하는 동반자로 미개척분야에 대한 소개와 단상을 적어본다.

唐律疏議는 652년 형법(율)과 이에 대한 국가의 유권해석을 모은 가장 오래되고 완전한 법률서로, 名例律 등 12편 502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당률소의는 당제국과 중국만이 아닌 동아시아의 법 전통의 근간이다. 중국에서는 大淸律까지 이어졌고, 우리나라에서는 大明律을 통해 영향을 줬으며, 베트남에서는 黎朝刑律에 그대로 반영돼 있다. 이처럼 당률소의는 유럽의 로마법에 견줄 수 있는 중요한 법문화이다.

본서는 당률소의 가운데서 오늘날 형법총칙에 해당하는 명례률 부분을 현행형법의 체계에 따라 분석한 것이다. 본서는 크게 ‘총설’, ‘신분과 죄형’, ‘범죄’, ‘형벌’ 등 4편으로 구성돼 있다. 제1편 총설에서는 중국법의 발전과정과 당률의 구조와 해석 등을 설명하고, 죄형법정주의, 신분차등주의 등 당률의 주요원칙을 논증했다. 제2편에서는 신분이 범죄와 형벌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치밀하게 분석했다. 제3편에서는 범죄의 구성요건을 현행법에 준해 고찰했는데, 제1편과 함께 본서에서 처음 시도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형벌을 면제와 贓罪, 경합 등을 중심으로 살폈다.
역사학계이든 법학계이든 연구인력도 적고 또 연륜도 짧기 때문에 중국법제사 분야, 특히 법전 등 기초자료에 대한 충분한 연구는 없다. 또 한 측면에서만 접근했지, 법학과 역사학을 아우르는 연구는 거의 없었다. 역사학자인 저자는 전공의 장벽을 허물고 대담하게 법학적 분석을 시도했다. 즉 개인이나 소수를 위한 개별 주제가 아닌 당률의 기본 성격과 법구조를 중심으로 분석하고, 역사적 정보는 최소한만 제공했다.

이러한 시도는 본서가 처음인 듯한데, 어느 정도 성공했다. 우선 역사학자는 본서를 통해 서양에 못지 않은 중국의 법전통을 발견할 수 있고, 법사학자는 당률의 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당률이 표방한 정신과 원칙은 우리의 역사와 문화 속에 용해돼, 그것이 법문화 내지 전통으로 오늘날까지 우리의 뇌리 속에 면면히 흐르고 있다. 따라서 당률에 대한 이해는 현재의 법문제를 해결하는 실마리도 제공해줄 수 있다.

하지만 역사학자가 법학적으로 접근한 것에서 배태된 문제도 보인다. 죄형법정주의는 서구시민혁명의 산물이다. 따라서 역사적 배경이 다른 중국에 이 개념을 적용하기에는 태생적 한계가 있을 것이다. 또 범죄론에서의 분류와 편입의 착오, 낯선 용어의 사용 등은 옥의 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총론에서 근래 국내법학자의 업적을 언급하지 않은 것도 눈에 띤다. 하지만 이런 지적은 저자가 아닌 법학계에 돌려야 할 것이다. 감히 범접하지 못할 높은 울타리 속에서 안주한 이는 과연 누구인가.

본서에서 평자는 번역과 연구의 자연스러운 연결과 결실을 확인했다. 저자는 임대희 교수와 함께 본서의 母本인 당률소의를 역주했고, 그 여세를 몰아 연구서를 저술했다(자매편인 각칙에 대한 연구서는 임 교수가 집필할 예정이다). 연전 역주 당률소의를 평하면서 역주자들에게 “우리의 문제의식으로 중국법제사를 연구해줄 것”을 희망했다. 이제 본서를 그 첫 화답으로 받아들고, 미처 하지 못한 힘든 작업을 해준 것에 감사드린다. 평자 역시 다시 화답하기로 다짐하며 휘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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