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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대회] 21세기 국문학 연구의 이념과 방법
[학술대회] 21세기 국문학 연구의 이념과 방법
  • 이옥진 기자
  • 승인 2000.12.1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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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적 민족주의’의 과제 … 현재·미래에서 과거 읽어내기
“미래는 앞에 있지 않고 뒤에 있다.” 김학성 성균관대 교수의 말이다. 김 교수의 전공이 고전문학임을 알고 나면 그 뜻은 분명해진다. ‘고전’문학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현대’문학이었던 시절이 있었고, 현대 역시 언젠가는 고대로 변할 것이다. 이렇듯 현재에서 과거의 자취를 읽거나 과거의 무덤에서 미래를 예견해내는 통시적 사고는 우리 시대의 들뜸을 가라앉힐 것이다. 21세기의 벽두에 고전문학을 논한다는 것은 이런 사고의 전환 이후에 비로소 가능한 일이다.

현대 구비문학의 데이터베이스화
‘21세기 국문학 연구의 이념과 방법’이라는 주제로 지난 8일 서울대에서 개최된 한국고전문학회 학술대회에서는 고전문학이 살아숨쉬는 것이 아닌 완상해야할 골동품으로 내몰릴 운명에 대해 논의되었다. 참가자들의 발표문 속에서도 사멸의 위기의식은 은연중에 퍼져가고 있었다.
이번 학술대회는 한국고전문학회 창립 3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김열규 인제대 교수, 황패강 단국대 교수, 이상택 서울대 교수는 30년 전 2, 30대의 홍안으로 모임을 만들 당시 비장하기까지 했던 초발심을 회고했고, 현재 고전문학 연구와 위상의 위축과 더불어 기념모임 특유의 자축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었다.
‘21세기 구비문학 연구의 이념과 방법’을 발표한 서대석 서울대 교수와 ‘21세기 고전시가 연구의 이념과 방법’을 논의한 김학성 성균관대 교수의 위기감은 사뭇 달랐다. 서 교수가 느긋한 중모리로 일관했다면 김 교수의 발표문은 내내 휘모리 장단으로 참석자들의 위기감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서 교수는 구비문학사를 개괄하고 그 현대적 형태로 ‘전파문학’을 내세웠다. 이는 다름 아닌 라디오문학, TV문학, 컴퓨터문학 등 매체와 함께 발명된 형식의 문학을 총칭하는 것으로, 구술성, 즉흥성, 대중성 등이 서 교수가 내세운 공통점이었다. 서 교수는 ‘고전문학’ 연구가 현대에도 사멸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바로 수백 년 후를 예견해서 현재의 구비문학을 채록·정리를 해내는 연구자들의 사명감 때문이라 여겼다. 후대 고전이 될 이 모든 자료들을 영상화·디지털화하는 것이야말로 현재 고전문학 종사자들이 새로이 모색해야할 연구방법이라는 것이다.

실증연구와 ‘담론으로서의 텍스트읽기’
반면, 김학성 교수의 발표문에서 위기감은 여과없이 드러났다. 어디 하나 발본적인 물음을 던지지 않은 구석이 없었다. 김 교수는 우선 머리말에서 ‘21세기에 살아남기’를 시급한 프로젝트로 삼았다. 어제와 오늘 사이 단절의 격심함은 오늘과 내일 사이의 결절을 예상케 해준다. 그렇다면 어제의 것들로 이루어진 고전이 과연 내일을 비출 거울이 될 수 있는가 하는 물음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바로 고전문학의 정체성을 기저에서부터 흔드는 질문이었다.
김 교수가 보기에 그 구심에는 문화획일화, 즉 ‘팍스 아메리카나’라는 이름의 ‘보편’문명이 있다. 그는 “누에가 한 입에 뽕잎을 갉아먹을 수 있는 양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한눈을 파는 사이 뽕잎은 시나브로 사라지는 법”이라며, 문화적 잠식에 저항하고자 했다. 어차피 종속과 환원이 사멸의 길일 뿐이라면 문제는 다시 ‘문화적 정체성의 확립’을 위한 ‘문화적 민족주의’라는 말썽 많은 가치의 지향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었다. 또한 그는 고전시가연구의 이념과 방법이라는 구체적인 끌개가 국문학, 국학, 아시아학이라는 인문학 전체의 문제를 끌어 올려낼 것이라 희망했다.
김 교수의 방법론은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었다. ‘기본이 무엇인가’에 대한 까탈을 잠시 접어둔다면, 김 교수의 방법론이 후학들에게 전하는 꼼꼼한 지침임을 알 수 있다. 개별 작품·장르적 정체성의 실증과 ‘담론으로서의 텍스트 읽기’ 그리고 텍스트를 컨텍스트 안에서 읽어내는 작업을 동시에 해나가야 한다는 김 교수의 지적은 30년간의 성실한 연구 끝에야 힘을 지닐 수 있는 말이었다.
고소설 분야에서 정하영 이화여대 교수가 ‘고 소설 연구의 의의와 방향’을 발표했다. 정 교수는 “고전문학연구는 초창기 연구자들이 불가피하게 지고 있던 국학연구로서의 과중한 부담을 스스로 벗고 문학을 문예학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가져야 할 것”이고, “개화기 이전까지 고소설은 천시와 비난의 대상이었으나 초창기 연구자들은 그것을 실제 이상으로 과대평가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두 태도를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서 심경호 고려대 교수(한문학과)가 ‘한문학 연구의 회고와 전망’을 발표했다.

다시 이어질 30년의 과제
질문은 청중석에서 학술대회를 지켜보던 석박사 과정 학생들에게 돌아갔다. 종합토론 시간에 좌장을 맡았던 조동일 서울대 교수의 제안으로, 30년 선배들의 암중모색을 지켜본 감상과 스스로의 학문적 포부를 밝혀달라는 것이었다. 박사과정에 있는 대여섯 명의 학생들은 스스럼없이 논평했다. 그러나 학생들의 평과 제안은 선학들의 강의에 관한 소박한 내용들이었다. 조 교수는 이후의 30년간 고전문학 연구를 이어갈 후학들에게서 학문적 열정을 엿보려는 애초의 의도가 충족되지 못한 데 난색을 표했다. 이는 고전소설 분야의 발표자였던 정하영 이화여대 교수와 토론을 맡았던 김흥규 고려대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청출어람할 학생들이 스승의 초발심을 이어나가 고전에서 미래를 읽어내는 학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라는 선학들의 소망을 남긴 채 학술대회는 끝을 맺었다.
이옥진 기자 zo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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