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7 14:50 (토)
본격적인 분석철학 연구의 신호탄을 쏘다
본격적인 분석철학 연구의 신호탄을 쏘다
  • 박일호 경희대·박사후연구원
  • 승인 2010.08.23 14:4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희 글로벌 연구네트워크팀·한국분석철학회 공동학술대회 ‘과학의 형이상학’

경희 글로벌 연구네트워크팀(대표 최성호 철학)과 한국분석철학회(회장 손병홍 한림대)가 공동 주최한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8월 3일부터 5일까지 경희대에서 열렸다. ‘과학의 형이상학(Metaphysics of Science)’이란 주제와 걸맞게 시간, 인과, 성향, 자연 법칙, 자연종 등 과학과 관련된 형이상학적 주제들이 발표됐다.
학술대회는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기획됐다. 첫 번째는 학문 내적인 것이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학철학과 언어철학을 비롯해 심리철학과 물리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석철학적인 내용들이 발표됐다.

프라이스, 에딩턴의 시간관에 응수

두 번째는 학문 외적인 목표다. 한국을 비롯해 다양한 동아시아 분석철학자들이 발표에 나섰으며, 활발한 상호 협력에 대한 필요성을 공유하는 자리가 마련되기도 했다.

다양했던 만큼 흥미로운 발표들이 많았다. 특히 하나의 공통된 주제에 대해서 다양한 철학적 접근법을 비교해 볼 수 있었던 것이 흥미로웠다. 첫 번째 날 기조 발표를 했던 휴 프라이스 시드니대 교수의 발표 ‘Time's arrow and Eddington's challenge’가 물리학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두 번째 날 다카히로 야마다 교토대 교수의 발표, ‘The “truth-value links” problem for anti-realism about the past’는 시간에 대한 언어 철학적 탐구였다.

프라이스 교수는 물리학자 에딩턴 경이 지지했던 시간에 대한 견해를 소개하고 비판했다. 시간은 흐르는가. 이에 대한 대다수의 물리학자들의 답변은 ‘아니요’다. 하지만 최고의 천문학자 에딩턴 경의 답변은 ‘예’였다. 그가 보기에 시간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는 객관적인 흐름이다. 그는 열역학 제2법칙 등과 같이 물리 세계의 비대칭적인 사례들을 언급하면서 ‘예’라는 답변을 지지했다. 이에 대해 프라이스 교수는 정적 견해도 그런 물리적 비대칭성들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에딩턴의 도전에 응수한다.

이런 프라이스의 발표와 다른 발표를 비교해 본다면 시간에 대한 철학적 논의의 다양성을 가늠할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동적 견해의 중요한 특징 중에 하나는 과거, 현재, 미래 중 현재만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반면 정적 견해는 이런 현재의 존재론적 특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들이 보기에 과거와 미래는 현재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실재한다. 프라이스 교수가 동적 견해를 비판하고 정적 견해를 지지했다는 것은 현재론을 거부하고 비현재론을 지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시간여행에 대한  물리학 철학의 답은

한편 이와 대조적으로 마지막 날 다케시 사콘 오사카대 교수는 현재론적 관점에서 발표를 진행했다. 물론 그가 적극적으로 현재론을 옹호한 것은 아니었다. 그의 발표는 단지 현재론과 시간 여행의 가능성에 대한 것일 뿐이었다. 비록 프라이스 교수와 사콘 교수가 직접 충돌한 것은 아니었지만 의견 대립이 생길만한 지점이다.

그럼 사콘 교수는 무엇을 발표했나. 다음 질문을 생각해보자. 시간 여행은 가능한가. 물리학자들에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경험적이고 따라서 철학자들은 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철학자들에게도 이 질문은 충분히 흥미롭다. 많은 논란이 있지만, 시간 여행의 가능성은 현재론보다는 비현재론과 일관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흥미롭게도 사콘 교수는 현재론을 어떻게 규명하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시간 여행과 일관적일 수도,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시간이라는 하나의 주제가 다양하게 변주되는 모습은 그 자체로 눈여겨 볼만하다.

한편 하나의 세부적인 주제에 집중된 발표들도 있었다. 가령 ‘성향’에 대한 세 가지 발표가 그러했다. 이들 모두 성향의 조건문적 분석이라는 세부적인 주제에 집중했다. 그 중 한 발표가 성향에 대한 조건문적 분석 자체를 다뤘다면, 다른 발표는 그것의 반례를 다뤘다. 그리고 또 다른 발표는 그 반례가 다른 철학 논제에 끼칠 영향을 검토했다. 시간이라는 주제가 다양한 내용들을 포괄하고 있었던 것에 비해 성향은 하나의 주제에 집중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리적으로 가깝지만 학문적으로는 먼 동아시아 분석철학자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는 것 자체에 큰 의의를 둘 수도 있다. 다행스러운 점은 이번 대회가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다. 다음 개최지는 대만이다. 학술대회가 정기적으로 열리게 됐다는 것만으로 분석철학계의 밝은 전망은 가능하다.

박일호 경희대·박사후연구원

필자는 고려대에서 박사를 했다. 주요 논문으로는 「원초적 확률주의와 베이즈 인수」, 역서로는 『블랙홀과 시간굴절』 등이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