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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6> 해삼] 서늘한 깊은 바다로 들어가 여름잠 자는 ‘바다인삼’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6> 해삼] 서늘한 깊은 바다로 들어가 여름잠 자는 ‘바다인삼’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0.07.19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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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름엔 바다이야기가 안성맞춤이라 몸에 좋다는 海蔘을 만난다. 해삼은 말 그대로 ‘바다인삼’이란 뜻이다. 그런데 최근 해삼에도 人蔘의 사포닌과 유사한 성분이 있음이 밝혀졌다고 하니 옛날 어른들의 슬기로움에 머리가 뱅 돌 지경이다. 낡고 늙었다고 퇴물 취급하지 말아야, 溫故而知新인 것을! 그리고 해삼을 영어로는 ‘sea-cucumber(바다오이)’라고 하는데, 살았을 때 보면 몸이 원통형으로 길쭉하고, 우둘투둘한 돌기가 가득 난 것이 진짜 물오이를 빼닮았고, 일본사람들은 물 밑에 쥐처럼 생긴 것이 찬찬히 기어 다닌다고 ‘海鼠(바다 쥐)’라 부른다.

산에 나면 山蔘이요 바다에 살면 해삼이라, 다들 이 ‘蔘’자가 붙는 것엔 사족을 못 쓴다. 그래서 우리는 보신된다고 바다삼이라 부르는데 저쪽 사람들은 사물을 객관적으로 보니, 그것이 오이 꼴이다, 쥐 닮았다 한다. 여기에 林語堂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언뜻 떠오른다. “우리 중국 사람들은 물고기를 보면 잡아먹을 생각을 먼저 한다, 서양인들은 그들의 발생, 생태들을 알고 싶어 하는데 말이지….” 우리에게도 딱 들어맞는 말씀 아닌가.

해삼은 불가사리, 성게들과 함께 棘皮動物이며, 겨울에서 봄까지 우리나라 얕은 바다에서 볼 수 있지만 바다수온이 올라가는 한여름 철이면 싹 자취를 감춰버리니, 서늘한 깊은 바다로 들어가 여름잠을 잔다. 크기도 천차만별이며(100cm인 것도 있다함), 觸手를 둥글게 쭉 펴서 위에서 떨어지는 것들을 모아먹는 무리,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바닥의 모래나 진흙에서 유기물을 걸러 먹는 종, 海藻類를 뜯어 먹는 녀석들 등 섭식방법도 가지가지다.

또 해삼을 청삼·흑삼·홍삼으로 구별하니 체색이 다른 것은 먹이 차이 탓이다. 바닥 흙의 유기물을 먹는 놈들이 黑海蔘, 靑海蔘이며, 해조류 중 紅藻類를 주로 먹는 것이 紅海蔘이다. 이렇게 땅에 없는 특수한 영양분들을 먹기에 해삼이 약된다고 하는 것이리라. 헌데, 해삼을 먹는 나라가 그리 많지 않아서 지중해 연안의 몇 나라와 동남아, 중국, 일본, 우리나라 정도라 한다. 그 비싸고 맛있는 해삼을 먹지 않다니 바보들 아닌가. 그리고 예부터 해삼은 血分을 돕는 한약재로 썼다고 하며, 해삼백숙, 해삼알찌개 등등 중국해삼요리만도 스무 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해삼은 잡아먹힐 지경이 되면 내장을 肛門으로 확 쏟아버리는 自害를 서슴지 않는다. 인간나부랭이가 펼치는 자해공갈과는 자해의 의미가 다르다. 어쨌거나 횟집수조 속의 해삼을 손으로 움켜쥐려면 값을 물어줘야 할 각오를 해야 한다. 그런데 속 다 빼주고 살아남은 동물내장이 새롭게 再生한다니 모질고 질긴 생명력을 지녔다. 해삼을 자극하여 창자를 빼낸 다음 몸을 가로로 잘라 양식장에 던져뒀더니 기어이 두 마리가 기어 다니더라한다! 해삼창자는 우리도 좋아하니 횟집에서 단골에게만 준다는 해삼내장젓갈이 일본말로 ‘고노와다(このわた,海鼠腸)’다.
해삼은 항문 안에 있는 ‘숨쉬기나무’라는 특이한 호흡기관으로 호흡한다. 식용하지 않는 깊은 바다에 사는 아주 큰 해삼 항문에는, 몸은 옆으로 납작하고 길쭉한(몸길이가 20cm) ‘숨이고기’라는 별난 바닷물고기 놈이 해삼 항문을 들락거린다. 그런데 숨이고기가 아닌 놈이 항문에 들어오면 사정없이 盲囊을 터뜨려 홀로수린스(holothurins)라는 독을 뿜어버리기에 한번 당한 물고기는 다시는 해삼에 근접조차 못한다. 눈도 코도 없는 해삼도 적과 동지를 귀신같이 알아낸다.

실은 해삼과 숨이고기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共生(相生)을 한다. 큰 고기가 잡아먹으려는 낌새가 보이면 숨이고기는 얼른 해삼 똥구멍으로 쏙 들어가 피해버린다. 이렇게 숨이고기는 해삼한테 톡톡히 신세를 지는데 그 빚을 어떻게 갚는담? 그렇다. 숨이고기가 연신 항문을 들락날락거리므로 말미암아 깨끗한 물(산소)을 흘려주어 호흡수의 가스교환을 돕는다. 그렇고 말고, 세상에 힘/돈 들이지 않고 거저 얻는 공짜 없는 법!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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