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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스트롱에서 마살리스까지 … 즉흥성의 DNA가 빚어낸 매혹
암스트롱에서 마살리스까지 … 즉흥성의 DNA가 빚어낸 매혹
  • 정우식 CBS PD
  • 승인 2010.07.12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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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식 피디의 재즈 이야기]_<1> 재즈의 위대한 순간

열대야가 펼쳐진다. 뜨거운 밤, 숨막히는 여름 시간을 식힐 묘안은 없을까. 더 뜨거운 재즈는 어떨까. 7월은 재즈의 황제 루이 암스트롱이 타계한 달이다. 1971년 7월 6일 그가 세상을 떠난 뒤에도 재즈의 물결은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중년을 사로잡는 재즈 속으로 짧은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CBS FM ‘올 댓 재즈’를 진행하는 정우식 PD가 3회에 걸쳐 재즈 속으로 떠나는 즐거운 여행을 안내한다. 이번 첫 회는 재즈의 역사, 그러니까 재즈의 위대한 순간을 간략하게 더듬어 본다. 뉴올리언즈부터 포스트 모던 시대의 재즈까지의 흐름을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다.

글싣는 차례
<2>반드시 들어봐야 할 재즈 명반들      
<3>재즈를 쉽게 듣는법; 재즈 입문 길라잡이

 
20세기의 즉흥 연주음악 재즈(Jazz)! 미국 남부에 자리한 美港 뉴 올리언즈에서 발원한 재즈는 지난 1세기 동안 수많은 연주인들의 다양한 시도를 통해 創新을 거듭, 명실상부 세계적인 예술 음악 장르로 우뚝 섰다. 오프비트(Off-beat)의 독특한 리듬감, 일률적이 아닌 연주자 개인의 자유로운 상상에서 빚어지는 즉흥성(Improvisation)은 재즈의 핵심이라 하겠다. 

흑인의 노동요(Blues)가 서구 인상파 클래식과 만남을 통해 탄생한 재즈. 재즈는 19세기 후반, 뉴  올리언즈에 주둔했던 프랑스 병사들이 놔두고 간 관악기를 흑인들이 연주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이후 뉴 올리언즈의 홍등가와 길거리, 유람선, 그리고 장례식장에서 나팔을 불던 흑인 청년들 중엔 기차를 타고 대도시인 시카고로 나가 연주로 먹고 살겠다 결심한 이들도 있었으니, 그들 중엔 훗날 재즈의 발명가로 불린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도 있었다.

뉴 올리언즈 재즈- 루이 암스트롱의 등장 

루이 암스트롱의 등장은 재즈가 아프로 아메리칸(Afro-American)만의 음악을 벗어나 대중성을 얻게 된 계기였다. 4분의 4박자의 율동감이 전해지는 재즈 특유의 스윙(Swing) 리듬 , 우렁찬 트럼펫의 초절기교 즉흥연주와 입으로 웅얼거리는 재즈 보컬에 이르기까지, 재즈의 모든 DNA를 그가 창조해냈다. 이후 재즈는 ‘스윙의 폭발’이라 불릴 만큼 인기를 얻는다.

스윙의 4星으로 추앙된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의 ‘Take the A train’ , 베니 굿맨(Benny Goodman)의 ‘Sing Sing Sing’ , 카운트 베이시(Count Basie)의 ‘Jumpin at the woodside’, 그리고 글렌 밀러(Glen Miller)의 ‘In the mood’가 인기 차트를 점령하며, 코카콜라만큼이나 인기 있는 스윙 히트곡들이 1930~40년대 미국 대도시 전역의 무도장을 뜨겁게 달궜다.

모던 재즈- 재즈 춘추 전국시대

이렇듯 재즈가 춤추기 좋은 연주음악으로 대중들에게 인식될 때, 몇몇 젊은 재즈 뮤지션들은 유흥을 위한 연주음악이 아닌 연주인 개개인의 개성과 테크닉에 중점을 둔 예술 음악으로의 환골탈태를 준비하고 있었다. 비밥(Bebop)이라 불린 이 재즈의 새로운 경향의 진앙지는 찰리 파커(Charlie Parker), 디지 길레스피(Dizzy Gillespie), 델로니어스 몽크(Thelonious Monk), 그리고 마일스 데이비스(Miles Davis)와 존 콜트레인(John Coltrane)처럼 20대의 젊은 재즈 뮤지션들이 운집한 뉴욕 52번가의 한 재즈 클럽에서였다. 이들의 자의식이란 더 이상 무도객들을 위해 춤추기 좋은 재즈는 연주하지 않겠다는 것이었고, 연주자 개개인의 테크닉과 창조력을 통해 클래식에 버금가는 예술 음악으로 재즈를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바야흐로 재즈 아티스트들의 춘추 전국시대라 할 모던 재즈 시대가 개막한 것이다.

젊은 재즈 뮤지션을 주축으로 한 비밥의 혁명은 이후 수많은 추종자를 낳았고, 1950년대에 들어 비밥은 쿨(Cool)과 하드 밥(Hard bop) 스타일로 분화되며 재즈 역사상 가장 많은 명연을 남기게 된다. 재즈를 좀 들은 사람이라면 한번쯤 접해봤을 버브(Verve), 블루노트(Blue Note), 프레스티지(Prestige)와 같은 명 레이블이 등장한 것도 이 시기였는데, 이들 레이블은 재즈 연주인들의 창작활동에 힘을 보태며 수많은 재즈 대가들을 배출한다. ‘아티스트에 아티스트를 위한 연주’가 대세였던 상황에서 재즈는 차츰 예술의 영역으로 성격을 굳혀갔고 과거 ‘스윙의 달콤함’을 원했던 대중들은 재즈의 이런 엄숙함을 차츰 외면하기 시작하는데, 이런 조짐은 1960년대 들어 연주자의 무한자유로 대변되는 프리 재즈와 아방가르드의 등장으로 더욱 심화돼갔다.

보사노바와 퓨전 재즈

어느덧 ‘그들만의 성역’에 갇힐 위기에 봉착한 재즈는, 1960년대 초, 과거 스윙(Swing)의 영화에 비견될 대중성을 회복하게 되는데, 바로 모던 재즈와 브라질의 삼바가 만나며 등장한 새로운 대중음악 ‘보사노바’(Bossanova)의 유행이었다. 보사노바의 창시자 안토니오 카를로스 조빔(Antonio Carlos Jobim)이 그려낸 南國의 서정미를 색소폰 연주로 소개한 스탄 게츠의 앨범 「Getz/Gilberto」(1964)는 당시 최고의 록 그룹 비틀즈의 인기를 위협 할 만큼 대중들의 사랑을 받은 상쾌한 연주음악이었다.

여기에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인기전선을 구축해간 록 음악의 인기를 예의 주시했던 트럼펫터 마일스 데이비스는 재즈에 일렉트릭 사운드를 대거 도입, 재즈와 록을 이종 교배시킨 재즈 록 퓨전, 이름 하여 퓨전 재즈를 1960년대 말에 내놓으면서 젊은 음악팬들과의 교감을 시도한다. 퓨전 재즈는 현재까지 주류 재즈 스타일로 자리매김하며, 국내 재즈 팬들에게 지속적인 호응을 얻고 있는 척 맨지오니(Chuck Mangione), 조지 벤슨(George Benson), 팻 메시니(Pat Metheny)처럼 팝 스타에 버금가는 재즈 스타들을 배출했다.

다양한 표정의 현대 재즈

포스트 모던 시대에 접어든 1980년대에서 현재까지 재즈는 더 이상 한가지의 표정으로 청중을 맞이하지 않는다. 윈튼 마살리스(Wynton Marsalis)와 같은 불세출의 트럼펫터는 ‘과거로 돌아가자’라는 기치아래 신 전통주의란 도도한 흐름을 지금껏 이어가고, 퓨전 재즈를 창시한 스타일리스트 마일스 데이비스는 세상을 떠나기 직전까지 펑키(Funky), 힙합(Hiphop)과 같은 당대 최신 팝 음악과 재즈의 접목을 실험하며 1990년대 애시드(Acid) 재즈 열풍을 예고했다. 젊은 재즈 뮤지션들은 과거 모던 재즈의 상징인 비밥을 현대적인 느낌으로 재해석한 포스트 밥(Post -Bop)이란 유행을 낳았고, 오레곤(Oregon)과 같은 재즈 그룹은 클래식과 월드 뮤직의 영향이 감지되는 독특한 즉흥연주를 선보이기도 한다.

정우식 CBS PD

필자는 성균관대 공연예술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이다. 『언제나 재즈처럼』을 집필했으며, CBS FM ‘올 댓 재즈’ 프로그램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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