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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명하게 드러난 지성사의 쟁점
선명하게 드러난 지성사의 쟁점
  • 민병희 성균관대·역사학
  • 승인 2010.06.28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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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주자학의 변주’ 국제학술대회(6.17) 참관기

지난 6월 17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인문한국사업단 '동아시아 주자학의 변주(11세기~19세기): 비교역사사회학적 관점에서 바라본 사상과 사회' 리서치 클러스터(Research Cluster)는 ‘또 다른 변주의 가능성: 주자학 형성기의 지적 다양성과 동아시아 지성사의 새로운 모색’을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연구팀은 ‘동아시아’라는 단위를 상정할 때, 중요한 기반을 이룸과 동시에 문제의 지점이기도 한 주자학을 사회와의 연관성 상에서 총제적으로 비교, 분석하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문·사·철을 망라한 연구진에 의해 2009년 출범했다. 장기적 학제간 연구를 기획하고 있었던 차에 그 첫 주제로 주자학 형성기의 다양한 지적 흐름과, 이러한 형성기의 지적 다양성이 이후의 동아시아의 지성사의 전개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그리고 또 어떠한 시사점을 줄 수 있는지 추적했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11세기부터 주희의 시대에 이르는 주자학 형성기의 지성사에 대한 새로운 조망과, 이 시기에 나타난 지적 양상이 동아시아에서 수용, 전파, 변용되는 과정을 다룬 논문들이 중점적으로 발표됐다.
대만 국립청화대학의 스코니키(Douglas Skonicki)교수는 송대의 구양수와 에도 시대의 오규 소라이를 비교, 이들이 경전을 유일한 권위의 기반으로 내세우는 동일한 전략을 채용했다는 점에 주목하면서, 유교적 전통에서 과연 ‘경전’이란 무엇인가 하는 문제가 북송대 이래 다른 맥락에서 재현되는 양상을 고찰했다. 이찬 교수는 주자학의 정통적 학설이 확립되기 이전 유교 전통 내에서도 얼마나 다양한 견해가 공존하며 경쟁하고 있었는지를 사마광의 『맹자』 비판과 이에 대한 주희의 반응을 통해 보여줬다. 백민정 교수는 「잡학변」에 나타난 주희와 장구성간의 철학적 쟁점을 고찰하여, 보편적인 세계와 고독한 주체 사이에 ‘공동체’를 어떻게 위치지울 것인가 하는 문제에 대한 주희 철학 형성기의 고민을 조명했다.

필자는 북송시기의 지적 흐름의 특성인 보편 원리에의 추구가 새로운 사회정치적 엘리트층의 정체성과 권력 기반의 문제와 어떻게 관련됐는가를 각각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편원리를 추구한 소옹, 왕안석, 정이를 비교하며 조망했다. 정이와 주희의 『역경』 주석의 차이점이 사대부 정체성과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 그리고 이후 이들을 조합하는 방식의 변화가 사대부의 자기정체성의 변화를 어떻게 반영하는지를 고찰한 미국 뉴욕주립대의 쩌키 혼(Tze-ki Hon)교수의 논문도 사상을 사대부의 정체성 문제와의 관련해 이해하려한 시도였다.

정선모, 신상필 교수는 중국에서 발흥한 주자학이 고려와 조선에서 수용되는 양상에 주목했다. 정선모 교수는 정이의 제자인 양시를 고려에서 수용하는 과정을 재고하는 자세한 사료적 고찰과 함께, 정이 계열보다 왕안석의 新學이 고려시대의 유학의 수용에 주된 흐름이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신상필 교수는 조선 주자학이 정착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독특한 양상으로 인간의 마음을 ‘天君’으로 의인화한 소위 ‘천군류 소설’에 주목해 그 형성 과정과 서사로서의 수용 양상에 대해 고찰했다.  

미야지마 히로시, 이영호 교수와 고려대의 이정환, 전병욱 교수가 참여한 종합토론과 발표자 상호 간의 의견교환에서 나타난 주요 쟁점은 결국 사상과 사회를 연관 지어 설명하고자 할 때 부딪치는 방법론에서의 근본적인 고민과 관련된 문제들이었다. 사상의 내적 구조나 경전 주석의 변화가 사회의 변화를 반영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사실상 어떻게 자의적이거나 기계적인 연결이 아니라 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이 두 영역의 연관성을 설명해 낼 것인가 하는 점은 위의 발표 논문 모두와 관련된 근원적인 질문이었다. 이는 사상과 사회를 연관 지어 총체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본 연구팀이 지속적으로 모색해야할 과제이기도 하다.

이번 학술회의의 가장 큰 성과는 一國이나 같은 전공의 연구자들만의 자리였다면 결코 볼 수 없었을 문제들이 포착되고 보다 넓은 관점에서 자신의 주제와 문제의식을 재고할 기회를 제공했다는 점에 있다. 필자의 발표나 정선모 교수의 고려 시기의 유학 수용에서의 왕안석의 신학의 위상에 대한 재고찰은 결국 왕안석의 신학 수용과 소멸의 문제가 동아시아 지성사의 차원에서 고구돼야 할 주요 문제임을 확인했다.

17세기 전후의 조선에서도 쩌키 혼 교수의 논문이 보여준 ‘명청시기 정주의 『역경』 주석의 조합 문제와 동일한 문제’가 매우 주요하게 대두됐다는 점이 지적되면서, 각각의 경우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도 조선과 중국의 지성사를 비교하고, 그 상호연관성을 고찰할 필요성이 강하게 제시됐다. 또한 신상필 교수의 『천군연의』에 대한 연구는 중국, 한국의 비교와 서사문학 연구자, 사상사, 문화사 연구자의 공동 연구가 필요한 과제라는 점이 부각되면서, 다양한 학문분야, 지역, 시기의 연구자들이 모인 본 연구팀의 장기적 공동연구의 지향점은 더욱 선명해졌다.

민병희 성균관대·역사학

필자는 하버드대에서 박사를 했다. 논문으로는 「성리학과 동아시아 사회등이 있으며, 성균관대 연구교수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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