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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에 ‘소니’가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월드컵에 ‘소니’가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 신재휴 서울시립대·생활체육정보학과
  • 승인 2010.06.14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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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남아공 월드컵] ‘정치·경제학’ 관전 포인트

1960년 3월 21일, 남아공 사람들은 이 날을 잊지 못한다. 백인 경찰은 흑인 시위대를 향해 발포했다. 거리에는 여자와 아이들의 시체가 나뒹굴었다. 69명이 목숨을 잃고 180명이 피를 흘렸다. 흑인 시위대는 통행법 반대를 넘어 인종 간 평등을 얘기하고 있었다.

‘샤프빌 학살’은 흑백분리로 점철돼 온 남아공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상흔이다. 남아공은 백인, 흑인, 혼혈계, 인도계, 비아프리카 백인, 반국민당 백인 등 출신성분에 따라 인종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루 평균 50명이 살인으로 목숨을 빼앗기고, 495명이 강도를 당하는 무법천지의 공포는 쉽게 씻어내지 못하고 있다.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가급적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말라’는 무서운(?) 안내문구가 눈에 띈다.

샤프빌 학살 60주기를 맞았다. 남아공에서 아프리카대륙 최초의 월드컵이 열리고 있다. 묘한 상관관계가 느껴진다. 늘 그랬듯 월드컵은 이미 기업들 차지다. 광고문구 한줄을 더 노출시키려고 앞다투는 사이, 남아공의 상흔은 한층 더 짙어진다.

남아공 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는 축복을 뜻한다. 그래, 공은 둥글다고 했던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축복’, 일단 한번 잡으러 가보자.


 

월드컵이 열리는 남아공은 럭비 강국이기도 하다. 영국에서 시작된 럭비는 에티켓과 룰의 존중, 공동체를 위한 책임 있는 역할을 배우는데 적합한 운동으로, 명문 이튼 스쿨은 필수 스포츠 종목으로 할 정도로 사회 리더들이 배워야 할 스포츠로 자리 잡고 있다. 남아공은 당시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1995년 럭비 월드컵을 개최한 경험과 우승한 경험을 동시에 갖고 있지만 대부분 선수와 팬은 백인의 몫이다.

반면 축구는 영국에서 탄생했지만 노동자 계급인 프롤레탈리아의 스포츠로 시작했다. 14세기부터 17세기 말까지는 난폭하게 행해지던 놀이와 같은 축구를 왕실에서는 사회적 통제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무익한 스포츠로 규정해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체력과 투지, 개인기와 조직력이 요구되는 축구 경기는 시종 일관 몰두하게 만든다. 서민 관중들은 90분 내내 서서 환호하며 그들의 애환을 달랬던 스포츠이다. 
 
거래비용 ‘훔치는’ 유럽의 에이전트들

유럽은 단연 세계 최고의 축구 선수들이 뛰는 꿈의 무대다. 예전에 유럽 통합작업에서 분과 업무를 맡은 스포츠위원회 회장을 만났을 때 유럽이 통합돼도 축구가 단일 유럽 팀으로 대회에 나가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라고 말하던 기억이 난다.

유럽의 축구제도는 기본적으로 유럽의 뿌리 깊은 사회민주주의적 요소를 반영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팀의 성적에 따라 1부에서 2부 리그로 강등되거나 승격되기도 하는 승강제도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은 개방시스템은 승리지상주의를 반영한 것이지만 축구경기에서는 생산요소와도 같은 노동자인, 선수와 팀의 입장에서 만든 제도이다.

반면 미국의 프로야구는 실적이 저조한 선수가 마이너 리그로는 가도 팀 자체가 내려가지는 않는 폐쇄적 시스템을 갖고 있다. 선수연봉총상한제도나 성적이 가장 낮은 구단에게 다음 시즌에서 뛸 신인 선수 선택권을 먼저 주는 드래프트 제도를 통해 팀 간 전력 평균화를 도모하고 있다. 평준화를 통해 팀 간 경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경쟁적 관계에서 더 많은 흥미를 가져 올 수 있게 만든 이 제도는 궁극적으로 경기의 생산자인 구단(기업)과 리그의 이윤극대화를 목적으로 만든 제도이다. 

유럽축구의 개방시스템이 한편으로는 구단과 선수의 빈익빈부익부 결과를 낳은 것은 자본주의의 모습과 닮았으나 구단이나 리그보다는 선수와 팀의 입장에서 만든 제도로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는 場을 제공하고 있다. 그래서 유럽주의식 축구문화라고 한다.

전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모인 이런 유럽 무대에서 박지성(맨체스터), 이청용(볼턴), 박주영(모나코), 기성용(셀틱)이 태극기를 달고 뛴다. 나이지리아의 존 오비 미켈(첼시) 가나의 설리 문타리(인테르 밀란) 코트디브와르의 야야 투레(바르셀로나), 남아공의 베니 매카시(블랙번) 등 유럽에서 활약하는 많은 아프리카 선수가 조국의 이름으로 나가니 자국 국민들의 자랑스러움과 기대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나 아프리카 선수들의 유럽 진출에는 많은 애환이 숨어 있다. 현재 남아공은 유럽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축구 무역항이 되고 있다. 유럽에서 뛰는 아프리카 선수는 2007년 말 현재 730명 이상이라고 한다. 문제는 거래비용이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누려 시장경제의 효율성을 실천하는 유럽 에이전트들이다. 얼마나 심했으면 1999년 유엔 특별보고서에서조차 “젊은 아프리카 축구선수의 이주는 현대의 노예무역” 이라고 비판하는가.

무소불위의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FIFA는 보스만 사건 이후 이적료 금지와 18세 이하 미성년자의 클럽 이적 계약을 금지했다. 하지만 실제 당사자인 아프리카 십대들에게는 실질적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온갖 편법이 동원되고 있다.

얼마 전 중국에 진출한 다국적 기업들의 싼 노동임금이 문제 된 적이 있다. 중국 정부의 침묵적 주시에 주눅들은 기업들은 기민하게 대처했지만 아프리카는 대변해 줄 누군가가 없다.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약삭빠른 에이전트들은 싼값에 십대들을 구입해 훈련시켜서 높은 가격으로 팔거나 성과가 없으면 도중에 무책임하게 돌려보내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절대 빈곤과 높은 흑인 실업률을 보이는 남아공 십대들에게 축구만이 유일한 삶의 희망이라는 점이다.

한편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격변하는 디지털미디어 환경과 맞물려 새로운 IT산업의 장외 대결이 경기만큼이나 흥미롭다. 월드컵이나 올림픽과 같은 메가 이벤트는 기업 프로모션의 장이다. 월드컵을 통한 비즈니스 찬스는 사이즈가 클 뿐 아니라 파생되는 상품도 많다.

기업들은 회사의 이미지나 브랜드 가치를 높이기 위해 광고나 후원 등에 돈을 쏟아 붇지만 이번 남아공 월드컵에서는 다른 대회에서 봐왔던 기업 광고와 선전의 각축장 보다 스마트폰과 3D TV 시장에서 ‘죽느냐 사느냐’식의 운명의 1라운드가 펼쳐질 것 같다.

피파, 한국 길거리 응원 ‘장외 시청권중계료’요구

이미 미디어 환경은 TV와 컴퓨터, 인터넷을 결합한 스마트폰 시대를 활짝 열고 있다. 2010년 5월 뉴욕증시에서는 영원한 절대강자일 것 같은 마이크로소프트(MS)를 누르고 애플이 IT분야 시가총액 1위에 등극했다. 이 전쟁에 구글이 가세했다. 여기에 삼성전자의 피말리는 혈투가 진행되고 있다.

현대차, 코카콜라, 아디다스 등 월드컵 공식 스폰서 기업들은 그들의 이미지 제고를 통한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엄청난 금액을 지불하며 공식스폰서에 참여하지만 현재 세계의 전자통신 업계는 브랜드 가치 향상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하나가 사활이 걸린 승부들이다.

매출에서 삼성전자에게 밀린 소니는 남아공 월드컵 공식후원사로서의 이점을 이용해 ESPN(디즈니 그룹 80% 소유)을 통해 월드컵 전경기 3D 중계에 디스커버리와 아이맥스 채널과 공동으로 기술적 파트너로 참여하고 있다. 영화와 음악 게임에서 단단한 콘텐츠 인프라를 갖고 있는 소니는 3D TV 시장에서 진검 승부를 벼르고 있다.

IT산업에서는 양질의 콘텐츠를 어떤 상상력과 기술로 제공하느냐가 중요해 질 것이다. 음식점이 성공하려면 그릇보다 맛이 좋아야 한다. 때로는 경쟁, 협력 등을 통해 기업끼리 살길을 모색을 하지만 왠지 어느 기업으로 결판 날 것 같은 조바심도 든다. 남아공 월드컵은 모바일컨버전스 시대에 기업에게는 최대로 활용해야 하는 킬러콘텐츠이다.

남아공 월드컵의 TV중계료와 후원금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하고 있다. 이제는 높은 중계권료에 대한 가치에 대해 본질적으로 고민하는 시기가 올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월드컵 중계권 시장은 FIFA라는 하나의 판매자(seller)와 다수의 구매자(buyers)가 있는 독점시장 구조이다. FIFA는 중계권료와 스폰서료를 끊임없이 올리고 있고 심지어 한국에서 태동한 길거리 응원을 ‘장외 시청권중계료’란 것으로 개발해 돈을 요구 하고 있다.

중계권 협상에서 지불능력이 있는 누군가가 더 높은 입찰가를 매기면 그가 누구이든 상관없이 계약하는 윤리적 문제와 독점적 문제인 공정거래 문제도 안고 있다. 국내 지상파 방송사 간의 월드컵 중계권 문제도 따지고 보면 하나의 공급자와 다수 구매자 구도에서 나타난 집안싸움이다.

월드컵은 4년 마다 개최돼 이 스케줄만으로도 어떤 전략적 특징을 갖고 있다. 국가는 국가대로, 기업과 FIFA, 미디어는 그들 나름대로 사업 로드맵을 잡을 수 있다. 그때마다 개최국을 돌아보며 그들을 더 많이 이해하고 더 가까운 이웃으로 우정을 보내는 일은 내가 할일 이고 월드컵이 있는 즐거움이기도 하다.

남아공의 열기가 뜨겁다. 아프리카는 거의 모든 나라가 유럽의 식민지였다. 자기들의 편의와 이익을 위해 지도에 자를 대고 그리듯 국경선을 마음대로 그어 한 국가 안에서도 언어가 수십 개도 넘는다. 종족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뼈 아픈 식민 유산을 받았지만 이번 월드컵을 통해 남아공과 아프리카의 모든 나라들이 스스로의 자신감을 맘껏 누렸으면 좋겠다. 남아공과 아프리카 친구들이 더욱 친근하게 다가온다.

신재휴 서울시립대·생활체육정보학과

 

프랑스 그르노블1대학에서 스포츠경영학 전공으로 박사를 했다. 일본 교토대 경영대학원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일본 글로벌 광고회사의 스포츠마케팅 전략」등 다수의 논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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