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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마르크스에 맞서는 대항마, 막스 베버
[역사 속의 인물] 마르크스에 맞서는 대항마, 막스 베버
  • 최호근 고려대 연구교수· 서양사상사
  • 승인 2010.06.14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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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스 베버
막스 베버가 세상을 떠난 지 90년이 흘렀다. 베버의 사후, 그의 학문에 대한 후학들의 관심도 浮沈을 겪었다. 한때 ‘하이델베르크 신화’의 중심에 있었던 베버도 1920년 그의 죽음과 더불어 독일 학계에서 빠르게 잊혀졌다. 훗날 미국을 대표하는 구조기능주의 사회학자 파슨즈(Talgott Parsons)가 1920년대 하이델베르크 대학에 유학할 때 그의 저작들을 알아보고 미국 학계에 적극적으로 소개하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2차 대전이 끝나기 전까지 베버에 대한 서구 학계의 관심은 산발적 수준에 머물러있었다.

냉전은 베버에 대한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됐다. 미군정 치하에서 위축돼 있었던 독일 학자들에게 베버는 미국 학계가 인정해준 인물이라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냉전체제가 강화되면서 현실 사회주의 블록을 이론적으로 대표하는 카를 마르크스에 대한 대항마가 필요했는데, 그 자격요건을 두루 갖춘 고전적 인물들 중 하나가 베버였다. 이런 이유에서 한동안 ‘나토 베버(NATO Weber)’라는 별칭이 유행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해서 냉전의 종식이 베버에 대한 관심의 소멸을 가져오지는 않았다. 1990년대 이후에도 이미 등장했던 ‘베버 르네상스’, ‘베버 산업’이라는 말이 무색치 않을 정도로 인문사회과학 전반에 베버 연구 열기가 강화됐다. 개인과 구조 사이의 관계를 분석할 때 행위에 관한 그의 언급들은 행위주체에 주목할 수 있는 이론적 안목을 제공해줬고, 구조에 대한 설명과 행위의도에 대한 이해가 상충할 때 ‘설명적 이해’ 또는 ‘이해적 설명’에 관한 그의 집중적 논의는 방법론적 돌파 가능성을 열어줬다.      

‘베버 르네상스’의 열기는 자연스럽게 막스 베버 전집(Max Weber Gesamtausgabe)의 간행으로 이어졌다. 현재 거의 막바지 단계에 와있는 전집 간행 사업은 ‘역사적 마르크스 연구’에 비견되는 ‘역사적 베버 연구’를 가능하게 해줄 토대로 인정받고 있다.

이제까지 베버에게서 시작됐거나 베버를 경유해 진행돼온 연구주제를 일일이 열거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탈주술화, 관료화, 합리화 테제처럼 서구 사회의 발전방향 전체를 가늠하기 위한 탐색, 자본주의 발달과 종교를 양대 축으로 삼아 진행하는 보편사적 비교 연구, 인문사회과학에서 객관성의 의미 탐색과 이념형적 개념구성 등을 통한 방법의 모색 등이 베버와 결부지어 말할 수 있는 학문적 발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 해석과 결부지어 본다면, 베버의 저작들 가운데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도시』가 아닐까 싶다. 이 두 저작을 관통하고 있는 문제의식은 시민의 참여로 요약될 수 있다. 베버는 자기 시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 가운데 하나를 시민계급의 정치 참여 부재에서 찾았다. 자기가 사는 시대를 금리 자본주의로 규정했던 베버는 시민계급이 자기금욕과 생산에 대한 헌신,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 참여라는 특징을 보여줬던 근대 초기의 생산적 자본주의 시대와 대비시키면서, 시민계급이 과거의 덕성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시대의 문제를 해결할 길이 없다고 믿었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 근대 시민계급의 역동성을 보여줬다면, 『도시』는 이러한 시민계급의 활력이 이미 중세 말부터 분명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점을 세밀한 필치로 밝히고 있다.

베버의 견해에 따르면, 중세 도시의 발전은 이탈리아의 경우에서 잘 볼 수 있는 것처럼 순탄하게 자연사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정치논리를 앞세워 경제와 사회 영역까지 지배하려고 했던 문벌귀족들의 전횡에 맞서 시민들이 끝없이 투쟁하며 얻어낸 결과였다. 공정한 경쟁의 규칙을 확보하고 생산과 교환의 효용을 증가시키기 위해서 중세 말의 시민들은 형제처럼 서로 연대했고, 필요한 경우에는 무력 충돌까지 불사하면서 자기 권익을 지키고 확대시켰다. 이러한 점에서 서구의 근대는 중세의 연속이라고 할 수 있다.

근대라는 거대한 철장 속에서 파편화되고 투기적 자본주의의 단맛에 사로잡혀 거대 이슈에 대해 무감각해진 동시대인들에게 근대초의 역동적 모습을 회복할 것을 호소했던 베버의 문제의식이 이 양대 저작에 녹아들어 있다면, 이론과 방법론만이 아니라 이러한 문제의식까지 함께 전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베버가 시대의 문제로 인식했던 바로 그 점들로부터 우리 사회가 여전히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호근 고려대 연구교수· 서양사상사

필자는 독일 빌레펠트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논문으로는 「1945년 이후 한국에서 독일 역사이론의 수용」, 저서로는 『제노사이드- 학살과 은폐의 역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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