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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1교육개혁 이후 우후죽순 난립 … ‘기형구조’ 낳았다
5·31교육개혁 이후 우후죽순 난립 … ‘기형구조’ 낳았다
  • 최성욱 기자
  • 승인 2010.06.14 11: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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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변천사] 64년의 기록

“대학교육의 목적을 일층 심오하고 정치하게 추구하는 동시에 학술연구의 지도능력과 독창력을 함양한다.”
1947년 6월, 한국에서 처음으로 문을 연 ‘국립서울대’ 대학원의 교육목표다. 서울대는 9개 단과대학과 1개 대학원으로 한국 최초의 종합대학의 모습을 꾸렸다. 32개 대학원과정(문과계통 12개 학과, 이과계통 20개 학과)을 운영하던 첫해 대학원 재학생은 139명(남학생 138명, 여학생 1명)이었다. 이후 고려대(1949년)와 연세대·이화여대(1950년)가 잇따라 대학원을 개설했다.


1949년 제정·공포된 교육법에 따라 일반대학(교)은 1년 이상의 대학원과정을 설치(의과대학 제외)할 수 있었다. 대학원이 태동과 동시에 석·박사학위를 모두 운영할 수 있게 법령을 열어뒀지만 대부분 석사과정만 운영했다. 한국 최초의 박사학위자는 문학박사로 1953년 고려대에서 나왔다. 현상윤 고려대 초대총장이 주인공이다. 1949년 출간한 「조선유학사」가 1953년 고려대 대학원위원회의 심사를 통과했지만 현 총장은 이보다 3년 전, 납북되는 바람에 학위를 수여하지는 못했다.

1959년에는 서울대 법과대학과 의과대학에 행정대학원과 보건대학원이 신설됐다. 최초의 ‘특수대학원’이다. 행정, 보건 분야에서 직업훈련을 목적으로 내세운 이들 특수대학원이 설립되면서 기존의 대학원을 ‘일반대학원’으로 구분하기도 했다. 일반대학원 명칭도 이때 생겼다. 이어 고려대 경영대학원과 서울대 교육대학원이 1963년에 설립됐다.

대학원 설립 20여년이 지난 1965년에는 대학원을 운영하는 대학이 37곳, 학생 수는 3천482명까지 팽창했다. 이때까지 대학원은 주로 인문·사회·자연과학 등 기초학문분야에서 개설됐는데 석사과정 중심으로 이뤄졌다. 초기 대학원이 오랫동안 교수인력양성에 무게를 실으면서 ‘학부교육의 부속물’로 여겨져 왔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운영의 목적을 살리지 못하고 1970년대 중반까지 일반대학원 위주로 이어져온 한국의 대학원은 1980년대 정치·사회적 변화에 따라 1차 전환점을 맞는다. 1980년 ‘7·30교육개혁조치’에 따라 이듬해부터 7년간 실시된 졸업정원제로 입학정원과 교수인력이 대폭 늘었다.

80년대 정치사회적 변화가 전환점 제공

 기업에서도 연구소 설립을 늘리면서 이공계 대학원이나 국내 박사학위과정이 특수를 누렸다. 1980년 121곳에 불과하던 대학원은 1990년 303곳으로 3배가량 늘었고, 학생 수도 3만4천여명에서 8만7천여명 눈에 띄게 성장했다. 경영학·공학·법학 등 응용학문이 인기를 끌면서 학위를 수여하지 않는 특수대학원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전문가들은 대학원의 최대 전환점으로 1995년 ‘5·31교육개혁’(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을 꼽는다. 대학운영 자율화, 연구여건 세계화, 대학모형 다양화로 집약되는 ‘5·31교육개혁’ 중 대학설립준칙주의는 단설대학원 설립 규제를 대폭 완화시키면서 대학원의 양적팽창이 최고조에 이르게 했다. 실제로 1995년부터 5년 간 대학원은 427곳에서 829곳, 재적학생 수는 11만 4천여명에서 23만여명으로 각각 2배가량 늘었다. 이후 10여년이 지난 지난해 집계된 통계치(대학원 수 1천115곳, 학생 수 31만여명)와 비교해 봐도 5년 간 얼마나 압축적인 성장을 했는지 짐작할 만하다.

2000년대 들어 ‘BK21’ 등 대학원 육성사업 등으로 대학원은 여전히 성장세를 이어가고는 있지만 다소 둔화된 분위기다. 2001년부터 논의가 시작된 전문대학원이 대학원 성장세를 떠받치고 있다. 2000년 2천700여명에 불과하던 전문대학원 입학정원은 2009년에 1만1천여명에 이르러 4배 이상 늘었다. 정부에서 정원조정 시스템(2004년 대학구조개혁) 등 대학원 설치기준을 강화(2005년 대학설립·운영규정 개정)하고 나서 대학원 규모는 예년처럼 큰 폭으로 늘진 않을 전망이다.

양적 팽창 끝나고 질적 확산 과제로

2004년 단설대학원 설립심사에 참여한 신현석 고려대 교수(교육학과)는 “‘5·31교육개혁’ 시절에는 ‘양·질·기본요건’ 심사 가운데 기본요건만 충족되면 어느 정도 설립허가를 내주는 분위기였다. 경쟁을 통해 교육의 질이 올라갈 것이라는 정부의 섣부른 판단이 대학원 난립 등의 결과를 가져왔다. 2000년 이후부터 질적 심사를 엄격히 강화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한국의 대학원은 초기 교수요원 양성을 위한 석사과정 위주의 일반대학원에서 특수대학원이나 전문대학원 등으로 분화되는 과정을 거쳐 왔다. 그러나 여전히 전임교수 한명이 학부를 비롯해 일반·특수·교육대학원 수업까지 도맡아 하는 기형적인 구조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서울의 대규모 연구중심대학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대학원은 이제 ‘대학의 주요 수입원’이라는 꼬리표를 벗고 교육개선에 힘을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유현숙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도 공감한다. “학자나 연구자 양성을 대학원의 절대적 목표로 삼던 시대가 가고, 실무능력을 갖춘 현장 전문가 양성의 책임도 떠안게 됐다. 평가·인증제 도입 등 대학원 교육의 질 제고 측면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낼 수 있는 정책연구가 시급하다.”

최성욱 기자 cheetah@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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