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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23. 대나무] “나모도 아닌 것이 플도 아닌 거시… ”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23. 대나무] “나모도 아닌 것이 플도 아닌 거시… ”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0.06.07 1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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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중기의 시인 孤山 윤선도(1587~1671)선생의 ‘五友歌’, 고등학교 때 달달 외웠던 그 빼어난 글이 아직도 소록소록 새롭다. “내 버디 몃치나 하니 水石과 松竹이라/東山에 달 오르니 긔 더옥 반갑고야/두어라 이 다삿 밧긔 또 더하야 머엇하리…,” 이어서 그 다섯을 차례대로 풀어나가는데, 그 중에서 대나무 글을 보면, “나모도 아닌 거시 플도 아닌 거시/곳기난 뉘 시기며 속은 어이 뷔연난다/뎌러코 四時예 프르니 그를 됴하 하노라”라고 풀이하셨다. 시인치고 정녕 생물학자 아닌 사람 없다더니만….

그렇다. 여기 대(竹) 글에서, “나모도 아닌 것이 플도 아닌 거시…”라는 구절이 눈길을 끈다. 참 아리송한 식물이다. 대를 ‘나무’라고 말하는 까닭은 줄기가 매우 굵고 딱딱한데다 키가 큰 것은 30m를 훌쩍 넘기니 흔히 ‘대나무’라 부른다. 그런가하면 대는 외떡잎식물이고 때문에 부름켜가 없어 부피 자람을 못하니 나이테가 생기지 않으며, 봄 한철 후딱 한번 크고는 자람을 끝내기에 ‘풀’이라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풀 같고 저리 보면 나무 같아서 선생께서도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이라 읊으셨던 것이다. 대를 나무라고 여기는 독자는 좀 떨떠름하겠지만, 생물학적으로 풀이하면 ‘외떡잎에다 부름켜가 없는 탓에’ 분명 대는 나무가 아닌 풀이다. ‘나무’와 ‘잡풀’은 큰 바람이 불어야 분간이 된다던가.

게다가 대는 벼와 비슷한 식물이란다. 대는 벼과 식물로 세계적으로 400여종이나 되며 주로 동남아 등의 더운 곳에 繁盛하고 茂盛하며 여러해살이 식물로 무엇보다 꽃 모양이 벼꽃을 닮았다. 동식물이 유전적으로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생식기관이 서로 빼닮는다. 그리고 대나무가 꽃이 핀 다음에 꺼림칙스럽게도 猝地에 깡그리 죽어버리니 그것을 ‘開花病’ 또는 ‘自然故’라 하는데, 종류에 따라서 30년, 60년, 100년 주기로 일어난다고 한다. 믿거나 말거나, 중국 대나무는 꽃에 빨간 열매가 맺히니 그것을 竹米라하여 鳳凰이 먹었다고 한다. 허나, 대나무의 생명력은 끈질겨서 일부가 살아남아 몇 년 후면 끝내 대밭을 다시 일궈놓고 만다.

대나무는 아래로 푹 숙인 바소(발채) 모양의 잎사귀와 텅 빈 속은 謙遜과 無慾에 비유되며 德을 겸비한 선비의 상징이요 志操와 節槪를 표상한다. 대나무줄기는 곧게 쭉 뻗고 마디마디가 또렷하며, 마디사이는 속이 비어 통을 이루고, 사이사이는 막혀 강직함을 유지한다. 대나무의 어린순을 竹筍이라 한다. 雨後竹筍, 비온 뒤에 여기저기서 무럭무럭 솟는 죽순 중에 빠른 놈은 하루에 무려 50cm 넘게 자란다고 하니 놈들 두런거리는 소리에 개가 화들짝 놀랄 판이다! 마당 한 구석에 쇠뿔 꼴로 삐죽삐죽 솟은 그놈을 뚝뚝 잘라와 여러 겹의 반질반질한 껍질을 벗긴 다음 끓는 물에 살짝 데쳐서 총총 썰어 초고추장을 끼얹어 먹었다.

대나무는 여러 재료로 쓰인다. 어디 한 번 대보자. 곰방대, 대빗자루, 죽통, 대젓가락, 퉁수, 피리, 대금, 활, 대자, 주판, 대소쿠리, 대고리, 대바구니, 대광주리, 목침, 대삿갓, 담배통, 귀이개, 이쑤시개 등등 다 쓰기가 버겁다. 대통에서 몇 번을 걸렀다는 燒酒, 황토로 아가리를 막고 아홉 번을 구워 낸 竹鹽…,竹槍, 竹馬, 竹夫人, 竹杖…,음력 보름날 ‘달집’을 짓거나 건축물 옆에 세우는 지지대 또한 대나무다.

대나무 밭이 防風은 물론이고 山沙汰를 막는다. 그리하여, 내 고향(경남, 산청, 단성)동네는 마을마다 뒤편에 빙 둘러 대나무병풍을 둘렀으니, 대숲 속에 조가비 같은 고만고만한 집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모습은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마을 풍경이다. 왕대의 북방분포한계선인 秋風嶺을 지나 남으로 내려가면서 이런 風光이 자주 눈에 띄지 않던가.

그런데 옛날에는 대나무가 제법 비쌌는데 요새는 그것도 아예 외국산에 밀려 똥값이라 한다. 때문에 모름지기 사람이나 물건이나 다 때를 잘 만나야 한다.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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