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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감성의 창조적 인재를 키워내는 비결이 궁금하다면
열린 감성의 창조적 인재를 키워내는 비결이 궁금하다면
  • 김성희 서울대·동양화과
  • 승인 2010.06.07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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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교육 어떻게 할 것인가

인류 역사상 최고의 천재로 평가받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요즘 각종 매체에서 자주 언급되는 ‘신르네상스인’과 온갖 분야에서 화두로 삼고 있는 ‘융합’, ‘통섭’의 공통점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한 사람을 서술하는데 화가이자 조각가, 건축가, 발명가, 군사 기술자, 해부학자, 식물학자, 지리학자, 음악가, 천문학자 등의 단어를 다 써도 모자랄 수 있다니! 더구나 각 분야에서 이룬 단계가 고만 고만한 수준이 아니라 깊은 이해와 성취들, 심지어 시대의 틀을 도약해 앞선 단계에서는 ‘인간’의 역량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한다.
다 빈치의 어떤 점이 이러한 천재를 가능하게 했을까. 이에 대한 답의 하나로 그의 작업노트를 들 수 있다.

 

(그림) 흔히 예술가들은 작업을 실행하기 앞서 자신의 느낌이나 생각들을 스케치 한다. 다빈치 역시 찰나를 스치는 아이디어나 관찰을 기록하기 위해 늘 노트를 갖고 다녔으며 그 속에는 관찰과 아이디어 스케치, 기록, 설계도와 계획도들로 가득했다. 그의 노트는 7천여 페이지(그의 사후에는 1만 3천여 페이지였다고 한다)가 분산돼 현존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갖가지 이미지 표현과 글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 만약, 그가 글로만 자신의 생각을 표현했다면 과연 그러한 창의적 발상이 가능했을까.

다 빈치는 그림과 글이라는 두 가지 표현법을 동시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이들은 서로에게 시너지 효과를 주고 있었다. 뇌과학의 측면에서 본다면 언어능력, 논리적, 순차적, 분석적 사고를 하게 하는 좌뇌영역과 함께 감각적 기능, 형태 표현, 예술적 감각, 문맥 파악, 종합적 사유를 하게 하는 우뇌영역을 동시에 활용했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의 초·중·고 공교육의 방향은 입시와 결부돼 있고 대학교육에 승계된다. 서울대를 예로 들면, 2010학년도 정시모집 일반전형의 교과영역 반영비율에서 예술은 4단위로 대학공통필요이수단위(122단위) 중 3%를 차지한다. 고려대와 연세대, 이화여대의 반영과목으로 예술과목은 포함되지 않는다. 그 외에도 예술적 특기, 소양 등도 반영되지 않는다. 입시전형의 방향성은 그대로 우리나라 공교육의 방향성을 나타낸다.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해 실행하기 시작한 ‘2009 초·중등 교육과정 개정’ 중 고등학교 교육에서는 총 이수단위 204단위 중 예술수업은 10단위이며 전체의 약 5%에 해당되고, 또한 학교의 사정에 따라서는 예술수업 기본단위 5%의 절반인 2.5%를 해도 된다. 이 교과과정에서 특기할 만한 변화는 ‘집중이수제’의 시행에 있다. 집중이수제는 물론 한 번에 하는 수업시간이 늘어나게 되는 장점도 있겠으나, 두 학기에 나눠 하던 수업을 한 학기에 한꺼번에 해버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지속적인 교육효과는 반감된다고 할 수 있다.

창의력·감성 열어주는 예술수업 부재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들이 대학에 입학해 받게 되는 교육에서도 여전히 예술교육은 접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대개의 비전공학생들은 졸업하기까지 한 강좌 정도의 예술과목을 듣기도 어려워하며 개설된 과목의 수나 종류에서 선택의 폭도 협소하다. 최근 20여 년간 미술교육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돼온 DBAE이론도 점차 예술창작표현 활동을 강조하고 있듯이, 학생들의 창의력과 감성을 열어줄 수 있는 수업으로는 예술창작과 결부된 예술수업이 중요하다.

서울대 기초교양교과목에서 예술창작관련강좌는 선택교양인 ‘일반교양’ 총 512강좌 중 21강좌로 ‘일반교양’강좌의 4.1%에 해당되는데 이러한 수치는 필수교양강좌 중 13.2%를 차지하는 프린스턴대의 예술창작관련강좌 비율과 비교했을 때 근본적인 개념의 차이를 보인다. 우리의 학생들은 생각의 틀을 바꾸고, 감성을 열어가는 예술창작교육을 제도적인 교육에서 거의 접하지 못하며 예술창작교육은 자신이 알아서 하는 분야로 접어두는 실정이다. 현재 세계의 초·중·고 교육에서는 예술을 매우 중시하고 있고 국가·지역사회 전체가 예술교육을 지원하며, 대학에서도 이런 맥락을 잃지 않는다. 이제 현대는 ‘문화예술의 시대’로 접어들었으며 감성이 열린 창조적 인재를 필요로 한다. 이러한 인재를 키우는 데 가장 유용한 교육의 하나로 예술교육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 시대 예술교육은 선택이 아닌 필수영역임을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

 1988년부터 시행된 미국의 ‘아트 에듀케이션 파트너십', 영국의 ‘크리에이티비티 컬쳐 앤 에듀케이션', 2008년 대통령령에 의한 프랑스 교육부의 문화예술교육 발전안, 2007년 독일연방의회의 핵심적 정책수단으로 채택된 ‘문화예술교육 강화’ 특별대책 등은 범국가적 차원에서 예술교육이 시행되는 예들이다. 이들은 국가와 지자체, 학교, 문화예술기관, 단체, 예술가, 교사양성기관 등이 긴밀하게 연계돼 예술교육의 주체가 되게 하는데 특징이 있다.

그렇다면 어떤 대안을 생각해 볼 수 있을까. 대학에서는 고등학교까지 충실하게 들었던 예술수업들과 시도들을 대학입시에 적극 반영하고, 반영비율도 높여야 한다. 보편적 교양교육으로서 예술교육의 교수방향은 학생들의 감성과 창의력을 확장시켜 줄 수 있는 수업방향에 더욱 비중을 둬야 하며, 창의적 글쓰기나 음악, 회화, 조각, 디자인, 영상, 무용 등의 예술영역들 간의 융합과목과 예술과 인문, 자연과학 등과 연계된 다양한 융·복합 교과목들을 개발해야 한다.

학교밖 지역사회 공간 활용해야


25년간 예술교육이론과 모델을 개발해온 하버드대의 ‘프로젝트 제로’의 예처럼 대학에서는 우리의 실정에 맞는 창의적 예술교육 연구를 지속적으로 실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예술교육은 학교교육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박물관, 미술관, 갤러리, 연주회장, 지역사회의 다양한 문화 공간이나 삶의 공간 전체에서 예술을 접하고 시도해 볼 수 있게 해야 하고 여기에는 지역사회의 예술가들이 교육청이나 비영리단체 등과 연계돼 교육현장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 예술교육은 결국 ‘문화’를 이해하고 문화적 정체성과 맥락을 파악하고 실천해나갈 수 있게 할 것이며, 생애에 걸친 풍요로운 삶을 안내할 것이다.  

김성희 서울대·동양화과

필자는 동국대에서 박사학위를 했다. ‘오래 된 정원’등의 개인전과 다수의 국내외 단체전에 참가했다. 「동아시아미술의 오래된 미래」 등의 논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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