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1:10 (일)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1. 노화 (1)] 더 늙으면 내림물질인 ‘장수유전자’에 명줄 달렸으니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1. 노화 (1)] 더 늙으면 내림물질인 ‘장수유전자’에 명줄 달렸으니
  •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 승인 2010.05.10 16: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오는 백발 지는 주름/ 한 손에 가시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드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禹倬 선생이 읊은 늙음을 탄식하는 그럴듯한 歎老歌다. 생로병사의 四苦를 뉘라서 피할쏜가. 이른바 늙은이들의 四苦는 病苦, 貧苦, 孤獨苦, 無爲苦(아무것도 할일이 없어 괴로움)라 하는데 막상 부딪혀보니 그럴듯한 말이다. 암튼 늙으면 더없이 서럽다. 그런데 나 남 할 것 없이 불로장생할 것처럼 떼 욕심을 부린다. 목숨은 호흡지간에 있다하고, 어쩜 문지방만 넘으면 저승인 것도 모르고 저렇게 설친다. 정말이지 100년을 산다 해도 고작 3만6천500일을 살고 죽는다. 헌데 壽則辱이라고, 오랜 삶은 욕됨이요 죄 값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러니 건강하게 살다가 느닷없이 덜컥 자는 잠에 죽는 것이 백번 옳다. 비움과 놓음, 썩힘과 下心이여! 영구히 늙지 않는 몸에 영원히 지칠 줄 모르는 정신으로 살다 갈순 없는가. 늙다리의 넋두리가 길었다.

노화를 꼭 꼬집어서 이래서 그렇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우나 일반적으로 유전자시계가설(genetic-clock hypothesis)과 핵산마멸가설(DNA wear-and-tear hypothesis), 활성산소의 세포산화 등으로 설명한다.

첫째로, 유전자시계 가설은 말 그대로 노화와 죽음은 유전적으로 정해진 시한이 있다는 것으로 세포 안에 나름대로 모래시계를 가지고 세포의 분열 횟수가 정해져 있다는 주장이다. 胎兒의 세포를 조직배양 했을 때 70여 번 세포분열을 하는데 반해서 70세 노인의 세포를 같은 조건에서 키웠더니 20~30번 분열을 하고 말더라고 한다. 그러니 세포 속에 뭔가 정해진 프로그래밍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한마디로 유전자(DNA)가 노화를 결정하고 사람마다 그 유전자가 달라서 수명은 선천적이라는 것으로, 제아무리 건강을 잘 관리해도 한계가 있다는 말이다. 오래 살고 싶으면 장수집안에 태어나라. 어쨌거나 인명재천이라, 사람의 죽고 삶이 하늘에 매였음을!

둘째로, 핵산마멸 가설이다. 세포가 분열하려면 염색체(chromosome)가 양적으로 늘어나면서 그 염색체를 구성하는 DNA도 따라서 복제해야 한다. DNA복제가 여러 번 연이어 일어나다보면 DNA 가닥 끝자락(telomere)이 구두끈이 조금씩 달아빠지듯이 줄어들어 나중에는 복제를 멈추고, 따라서 걷잡을 수 없이 세포가 생명력을 잃는다. 이것이 노화요 죽음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렇게 생명을 담보하고 있는 DNA가 자외선, 방사선, 화학물질들에 노출돼 손상을 입기도 하니 그것들이 세포를 죽이고 노화를 빠르게 하는 까닭이 된다.

늙음의 원인에 의견이 분분하지만, 끝으로 세포호흡과정에 생기면서 잠시 존재하는 酸素遊離基(oxygen free-radical)가 세포를 상하게 해 죽인다는 주장이다. 과유불급이라, 산소라는 것도 과해도 탈 모자라도 탈이니 양날의 칼이요 야누스의 두 얼굴이다. 이 불안정한 상태에 있는 산소유리기, 즉 활성산소(Reactive oxygen species, ROS)는 세포 속(미토콘드리아)의 대사과정에서 생성된 것으로 매우 산화력이 강한 산소이며, 때문에 어처구니없게도 제 세포를 다그쳐서(산화시켜) 크게 다치게 한다.

조금 더 보태면 활성산소는 여러 아미노산을 산화하므로 단백질을 변성시키고 핵산(DNA)의 염기를 변형시킨다. 그러므로 세포가 기능을 잃거나 변질하면서 암(돌연변이)이 생기고 생리적기능이 저하돼 각종 질병과 노화를 촉진시킨다. 이렇게 무서운 활성산소를 없애주는 항산화물질(antioxidant)로 녹차에 든 폴리페놀, 식물의 잎이나 과일에 많이 든 안토시아닌, 비타민 C, 비타민 E, β-카로틴 등이 있으며 그것들이 과일채소에 많다하여 되도록이면 노화예방효과가 있는 이들 과실과 푸성귀를 많이 먹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과해서 좋은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니 과다 섭취한 항산화물질은 되레 인체에 유해무익한 것이 될 수도 있다. 참말로 ‘적당히’가 그리 어렵다.

굳이 말한다면 오래 사는 사람들은 어김없이 長壽집안에 태어난다. 젊어서는 환경, 영양섭식, 생활습관 등이 건강에 영향을 미치겠지만 더 늙으면 무엇보다 내림물질인 ‘장수유전자’의 손에 목숨의 길이와 질이 매였다고 한다. 두 주먹 꽉 거머쥐고 태어나 양손바닥 쫙 펴고 가는 빈손인생인데…. 사람들아, 인간 한살이가 턱없이 부질없고 덧없더라! 이렇듯 탈 없이 살다가 짚불 꺼지듯 슬며시 考終命하면 바랄나위 없으렷다.

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