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8 06:45 (일)
“초판 1천부 금세 동나” … 대학출판부, 기획력·필자 확보로 홀로 선다
“초판 1천부 금세 동나” … 대학출판부, 기획력·필자 확보로 홀로 선다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5.03 17: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성균관대출판부의 ‘秀subook’, 패밀리 브랜드 실험

성균관대출판부(부장 한상만·경영학)는 최근 『감각의 역사』(마크 스미스 지음, 김상훈 옮김, subook, 2010) 출간 일주일 만에 재판에 들어갔다. 언론의 보도가 계속되자 주문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1천부를 찍었던 초판이 금세 동이 났다. 보통 대학출판부는 초판으로 5백부 정도를 찍는다. 재판까지 빨라도 6개월은 지나야 한다. 『감각의 역사』는 대학출판부 출판에 이례적인 사례로 기록될 듯하다.

이런 결과가 나오기까지 성균관대출판부의 혁신이 있었다. ‘수북(subook)’이 그 결과다. ‘빼어날 秀’와 ‘book’의 합성어인 수북은 성균관대가 2007년부터 일반대중을 위해 새롭게 시도한 패밀리 브랜드다. 대학출판부의 패밀리 브랜드는 2003년 이화여대출판부의 ‘글빛’이 출발이다. 당시 대학출판부의 브랜드 실험은 대중과의 소통을 시도한다는 점에서 출판계뿐 아니라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2009년 대학출판부협회 연감에 따르면 학교 이름 외에 패밀리 브랜드를 사용하고 있는 대학출판부는 13개교다. 그러나 그 결과의 성공여부는 희비가 엇갈린다. 상업 출판사와 경쟁에서 패밀리 브랜드를 안정적으로 정착시키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책을 출간해도 꾸준히 수익을 내는 일은 상업 출판사 역시 어려운 게 현실이다. 현재 수북의 매출액은 2년 만에 성균관대출판부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때문에 수북의 성과는 패밀리 브랜드를 운영하거나 만들고자 하는 다른 대학출판부들에 하나의 성공 사례다.

2007년 론칭한 수북은 현재 성균관대출판부 전체 매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성장했다. 이 대학 출판부의 수북 도서앞에 선 손호종 실장.   우주영 기자


성균관대출판부 손호종 실장은 “대학출판부의 이미지는 고정돼 있다. 학술서 위주의 딱딱하고 재미없다는 편견이 독자들뿐 아니라 대학 내에도 존재한다”며 “편견을 깨기 위해 수북은 오히려 성균관대출판부를 숨기는 전략을 펼쳤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마케팅이 중요하다. “수북을 론칭하기 전 조사를 해보니 일반 상업 출판사는 마케터와 대형 서점 MD들과 관계가 돈독했다. 이들과 정보를 교류하고 그 과정에서 얻은 결과를 책에 반영했다.” 때문에 손 실장은 수북을 만들기 전 우선 두 명의 마케팅 전문 인력을 충원했다. “마케터들은 책이 나오기 전에 내용과 디자인을 먼저 대형 서점 MD들에게 보여준다. 그들의 의견은 책의 최종본을 결정하는 데 결정적이다.”

마케팅을 강화해도 대학출판사가 상업 출판사의 거대한 자본력과 경쟁하기는 쉽지 않다. 손 실장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틈새시장을 공략했다. 상업 출판사가 놓치고 있는 틈새를 찾아내는 일은 수북이 어떤 색깔로 자리매김할지도 결정했다. 수북이 찾은 틈새는 무엇일까. 손 실장은 건강과 미시사라고 말한다. “삼성의료원은 성균관대가 지닌 훌륭한 인프라다. 현재 수북의 상당수는 건강 관련 책이 차지한다. 그 결과 보건복지가족부가 선정한 ‘2009년 우수건강도서’ 19권 중 수북에서 3권이 선정됐다. 미시사와 관련해 『중국 거지의 문화사』(2009)처럼 아무도 다루지 않은 주제를 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상업성과 전문성 사이 아슬아슬한 줄타기

 
상업 출판사와 경쟁하면서도 대학출판부만의 전문성을 잃지 않는 것은 대학출판부의 고민이다. 상업성과 전문성의 줄타기에서 낙오하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손 실장은 “대학이 가진 장점을 활용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대중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만이 목적이되면 대학출판부로서의 특성을 잃게 된다. 독자의 높아진 교양수준도 고려해야 한다. 『감각의 역사』의 경우 학술적인 면이 강해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초판을 500부 정도만 찍을까 했지만 예상치 못한 호응을 얻었다.” 상업성과 전문성의 접합 지점은 대학출판부의 또 다른 경쟁력이 될 수 있다. 성균관대출판부는 이미 유학을 특성화해 이기동 성균관대 교수(유학동양학)와 ‘사서삼경 시리즈’를 완간한 바 있다. 이 시리즈는 성균관대출판부 전체 매출의 25%를 차지한다.

좋은 필자를 확보하는 일은 대학출판부의 패밀리 브랜드가 정착하는 데 가장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일이다. 대학출판부는 대학 내 교수들을 통해 쉽게 필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는 약이자 독이다. 자칫 그 틀에 매이게 되면 빠르게 변화하는 독자들의 요구를 놓치게 된다. 손 실장 역시 패밀리 브랜드가 대학출판부의 틀을 벗어나 일반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서는 학교 밖에서 다양한 필자를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손 실장은 “올해부터 필자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 실행하고 있다. 각 분야에 해당하는 필자들의 목록을 축적한 후 다시 A, B, C로 등급화해 관리하는 작업이 매일 이뤄지고 있다”고 말한다. 필자의 범위는 일반 학생들까지 확대됐다. 성균관대출판부는 작년 일반 대학생을 대상으로 공모전을 실시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얻었다. 손 실장은 “수북이 지금은 번역서 위주이지만 앞으로 3년은 국내 필자를 확보하기 위한 기반을 만드는 기간이라고 생각한다. 인지도뿐 아니라 예산 확보를 위해 연간 매출의 일정액을 출판발전기금으로 모으고 있다. 현재 약 8억 7천만 원을 적립한 상태다”라고 밝혔다.

장기적 계획 갖고 기획도서 진행할 수 있어야

대학출판부의 패밀리 브랜드가 정착하기 위해서는 상업 출판사와의 경쟁도 필수다. 이를 위해서 자기 브랜드만의 특성을 만들어야 한다. 어떤 기획도서를 가지고 있는지는 그 브랜드의 핵심이다. 손 실장 역시 “번역서나 단행본으로는 경쟁에 한계가 있다. 각 대학의 특성을 찾아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기획도서를 진행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장기적인 기획능력이 필요한 셈이다.

현재 한국대학출판부협회에 가입된 대학출판부는 총 66개교다. 작년 69개교 중 3개교가 탈퇴했다. 구조조정 탓에 수익을 내지 못하는 대학출판부는 폐지 대상 1순위다. 마케팅 인력이 절실하면서도 예산 배정은 꿈도 못꾼다. 그럼에도 최근 몇몇 대학출판부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동국대출판부는 2007년 신문사와 교육방송국과 통합해 동국미디어센터로 새롭게 출범했다. 영남대출판부는 올해부터 기획소위원회를 구성해 ‘열린시선’의 다양한 필자 확보에 주력하고 있다. 지금 대학출판부는 더 많은 독자를 만나기 위해 상아탑에서 내려오려 한다. 상업성과 대중성, 그 가운데서 균형점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에서 대학출판부의 도약은 시작된다. 성균관대출판부의 ‘수북’이 리트머스시험지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