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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강의시간] “저는 잡초거든요”
[나의 강의시간] “저는 잡초거든요”
  • 박은주 동아대·패션디자인학과
  • 승인 2010.05.03 16: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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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과의 졸업식에는 ‘5분 스피치’라는 특별한 순서가 있다. 졸업생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교수님과 부모님. 동료, 후배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5분 동안 솔직하게 4년을 정리하는 ‘한 말씀’의 시간이다. 4년을 정리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지만 학생들은 이 시간을 설렘 반 기대 반으로, 또 때로는 감격하면서 기다린다.
우리 과는 매년 졸업작품전을 통해 4년 동안 배운 전공 분야들을 총정리해 본다. 우리 과의 졸업작품전은 전국에서 유일하게 모델, 연출, 음악, 작품제작까지 ‘순도 100%’ 학생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사진제공: 동아대 패션디자인학과, 맨 오른쪽이 박은주 교수

작품의 컨셉 설정부터 시행착오, 제작, 모델 피팅, 무대 연출 심지어 자기 작품에 대한 음악 결정까지 자기 것은 자기가 해야 한다. 만약 1주일마다 행해지는 전체 교수님들의 불꽃같은 심사의 눈길에서 본인 실력 이외의 실력이 보일 때는 그 즉시 ‘아웃’돼 작품전에 나갈 수 없다. 왜냐하면 교수님들은 학생들의 성장을 4년 동안 지켜 봐 와서 학생들의 실력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들한테는 좀 안됐지만 이 교수님을 속였다고 안심하는 순간 저 교수님의 귀신같은 지적이 뒤따른다.

졸업작품전의 오리엔테이션 시간에는 27년 동안의 수많은 선배들의 무용담과 이 무용담을 뛰어 넘는 교수님들의 귀신같은 ‘지적담’이 화려하게 소개된다. 많은 역사적(?) 사례가 주어진 후 결론은 “반드시, 어떤 일이 있어도 네 힘으로 해라. 엉망이어도 좋으니 네 힘으로 해라. 만약 이를 어기면 만인 앞에서 즉석 가위질은 물론이고 몇몇 선배들처럼 ‘역사적 인물’로 기억될 것이다”이다.

이러한 엄포와 위협들로 시작되는 작품전 준비는 학생들에게 그야말로 스트레스와 긴장의 연속이다. 실습실에서 모든 가요를 노래방 가사 없이도 부를 수 있을 만큼 귀가 따갑게 들으면서 친구들과 밤을 지새우며 보내는 시간들은 졸업식 5분 스피치의 단골메뉴다. “그 때는 정말 힘들어서 도망가고 싶었고 울기도 많이 울었는데 지금 돌아보면 그 때가 가장 재미있었고 많이 배웠던 시간이었어요.” 이 말은 27년 동안 듣고 있는 말인데 아직도 들을 때마다 가슴이 찡하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러나 얘들아, 이해해라. 너희 마음은 알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너희를 강하게 키워 내보내야하는 교수님들의 마음을…” 이 말은 졸업 후 찾아오는 졸업생들에게만 한다.

어느 해인가 대기업에 취직한 제자가 ‘5분 스피치’ 시간에 자신의 면접 경험담을 털어놨다. 서울의 우수한(?) 대학 졸업 예정자들이 경쟁하는 자리에서 면접관이 구체적인 예를 들면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느냐, 그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했단다. “예,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잡초거든요.” 그 이상의 질문이 없었기에 떨어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며칠 후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았다는 얘기다. 모두 박장대소를 하면서 웃는데 또 눈물이 나온다. 미안하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고, 자랑스럽기도 하고.

사랑하는 내 새끼들(?)에게 졸업식 축사에서 항상 하는 말이 있다. “여러분은 우리 교수들의 자존심이에요. 여러분이 성공하면 교수들이 성공한 것이고 여러분이 실수하면 교수들이 함께 실수한 거예요. 그러나 여러분은 잡초처럼 밟히면 일어서고 넘어지면 또 일어서서 당당한 전문인이 되세요. 언제 어느 곳에 있든 여러분의 뒤에는 우리 교수들이 있음을 잊지 말아요. 언제든지 힘들 때면 친정(동아대)으로 오세요.”

 

박은주 동아대·패션디자인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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