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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이중섭과 피카소, 예술가에게 가난은 필연인가
[역사 속의 인물] 이중섭과 피카소, 예술가에게 가난은 필연인가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4.05 16: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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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는 내 그림이 내 생활비의 물감 값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아줄 때가 올 것”이란 고흐의 말은 틀린 게 아니었지만 살아 있는 동안 가난은 불우한 그의 삶의 굴레였다. 비단 고흐뿐 아니라 많은 예술가에게 예술은 가난의 또 다른 이름이었다. 이중섭과 피카소는 타고난 천재성을 지닌 화가였지만 살아생전 가난의 문제로 인해 각기 다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제부터는 가난쯤은 두려워하지 말고 용감하게 인생의 한복판을 매진해갑시다… 어떤 일이 우리들 네 가족 앞에 부딪치더라도 조금도 염려할 것은 없소.” 이중섭(1916.4.10~1956.9.6)이 ‘발가락군’이란 어여쁜 애칭으로 부르던 아내에게 보낸 편지 중 일부다. 그러나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이중섭의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못한다. 여기에 남과 북으로 갈라진 조국의 현실은 천재의 예술혼을 여지없이 짓밟았다. 닭을 묘사할 때면 닭의 이가 옮겨오는 줄도 모르고 이중섭은 최대한 닭싸움에 근접해 관찰하곤 했다. 소를 그릴 땐 몇날 며칠 소의 곁을 떠나지 않는 열정을 보였다. 그런데 北은 이 그림을 빌미로 이중섭을 ‘인민의 적’으로 몬다. 닭과 소의 싸움이 인민에게 공포심을 준다는 것이 이유였다. 南은 은박지 위에 그린 아이들의 그림을 빌미 삼았다. 결국 벌거벗은 채 가족과 장난치는 아이들의 그림에 ‘풍기문란’이란 오명을 씌워 강제 철거하기에 이른다. 여기에 아내가 실수로 진 빚은 이중섭의 삶의 무게를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그는 행려병자로 이름 없이 숨을 거두는 그 순간에도 가난과 외로움을 벗어나지 못했다. 사후 그의 위작이 고가로 거래되고 있다. 가난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이중섭의 생애에 비춰본다면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미술평론가 최병식 경희대 교수는 “비단 이중섭뿐 아니라 미술계 전반에 제대로 된 작가 연구가 필요하다. 위작 시비를 가리는 일도 여기서 출발할 것”이라며 학계에 과제를 던졌다.

 “나는 9살 때 이미 라파엘로처럼 데생했다”는 자부심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피카소(1881.10.25~1973.4.8)의 천재성은 대단했다. 그는 습작 시기를 거친 적이 없었으며, 열네 살 바르셀로나 미술학교에 입학할 때는 한 달 동안 그려야 하는 입학 시험 과제를 하루 만에 해치울 정도였다. 스무 살 이후 프랑스에 건너 가서는 화려한 명성과 부가 한시도 그의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세기에 가까운 긴 생애 동안 피카소가 남긴 5만여 점의 그림만으로 그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억만장자였다. 그러나 천재화가의 대명사, 피카소의 명성을 엄청난 부의 축적만으로 표현하기엔 그가 지닌 천재성이 너무도 강렬하다. 스무 살의 피카소를 본 화가 브라크는 “그가 마치 불을 뿜기 위해 석유를 들이마시는 광대처럼 그림을 그렸다”고 회상한다.

피카소의 작품을 입체주의로만 보는 것은 그의 방대한 작품을 협소하게 가둔다. 그 스스로 단일한 스타일의 화가로 규정되길 거부했다. 그는 끊임없이 실험했으며, 자신이 한 가지 양식에 머물고 있다고 판단될 때면 금방 자신의 양식을 변화시켰다. 피카소는 여든아홉 살이 될 때까지 새로운 작품으로 전시회를 열었으며, 해가 거듭될 수록 그의 작품에 대한 찬사도 늘어만 갔다. 아흔 살에도 그는 그림과 판화, 조각, 詩에 이르기까지 장르를 막론하고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친다.

 숨을 거둔 그의 곁에는 채 완성되지 못한 흰색의 누드 작품이 놓여있었다. 숨을 거두기 12시간 전까지도 그는 손에서 붓을 놓지 않고 있었다. 피카소는 살아생전 작가였던 친구 엘렌 파르믈랭에게 “화가의 작업은 휴일 없이 지내야 하는 끝나지 않는 고통이다”라고 말했다. 작품과의 치열한 사투는 생트 빅투아르 古城을 사들일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축적한 피카소에게도 피할 수 없는 숙명이었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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