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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에게 미술은 무엇이었을까
그에게 미술은 무엇이었을까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04.05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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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왕시중 엮음, 『그림쟁이, 루쉰』(김태성 옮김, 일빛, 2010)

탁월한 문학비평가이자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인『정치적 무의식』의 저자 프레드릭 제임슨 듀크대 교수는 언젠가 루쉰의 글쓰기를 ‘민족적 알레고리(national allegory)'라고 명명했던 적이 있다. 제3세계의 핍박받는 운명을 고스란히 글쓰기에 담아냈다는 평인데, 바로 그 작가 루쉰(魯迅, 본명 周樹人, 1881~1936)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주는 책이 번역됐다. 중국 상해 노신기념관 부관장으로 있는 왕시중이 엮은 『그림쟁이, 루쉰』이 바로 그것이다.

1918년「狂人日記」를 발표해 중국 신문학운동의 기초를 다졌고, 이후 중국현대문학사상 걸출한 작품으로 평가받는 『阿Q正傳』을 발표했던 루쉰은 일본에서 의학을 공부하다가 문학의 중요성을 깨달은 뒤 의학 공부를 접고 문학에 몰두했던 인물이다. 이 특별난 생의 체험에서 그의 비범한 재능 한 가지가 더 도드라졌다. 바로 ‘그림 그리기’. 훗날 그가 판화운동을 지도해 중국의 새로운 판화 운동의 기틀을 다질 수 있었던 것도 그의 이런 재능이 작용한다.

루쉰이 남긴 ‘확인된’ 유일 작품 「소나무처럼 무성하기를」(1912). 단아한 수묵의 세계를 보여준다(왼쪽). 1923년 북경대학 개교 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가요기념증간」표지(오른쪽).
루쉰이 어려서부터 그림을 매우 좋아했다는 것은 새삼스러운 사실이 아니다. 루쉰의 동생 周作人을 통해 그런 사실이 일찌감치 알려졌기 때문이다. 루쉰이 남긴 서예작품은 그의 『手稿全集』이나 『詩稿』같은 간행물에 수록돼 전해지고 있지만, 미술 작품들은 그런 기회를 갖지 못했다. 책을 엮은 왕시중은 루쉰이 남긴 미술 작품이 100여점에 이르며, 결코 적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미술적 가치도 높다고 보았다. 왕시중은 루쉰의 미술 작품을 國畵, 篆刻, 평면 디자인, 線描, 책과 잡지의 디자인 등 다섯 가지 범주로 나눴다. 철저한 사실 확인을 거쳐 ‘루쉰의 것’으로 판정한 것만 실었다. 그러다보니 ‘확신’을 하면서도 수록하지 못한 것들도 있다.

책의 구성은 이들 작품들을 수록하고 그 밑에 루쉰의 自述, 관련기록, 해설을 덧붙이는 방식으로 했다. 아쉽게도 ‘국화’편에 수록된 루쉰의 그림은 단 한 점뿐이다. ‘보기드문 수묵화 작품’은 여러 작품이 더 있을 것으로 추정은 하지만 확인된 것은 이 작품뿐이다. 책과 잡지의 디자인 편에는 루쉰의 작가적 자의식을 보여주는 작품도 있다. ‘무덤’이라는 제목의 작품 두 점이다. 표지의 그림은 陶元慶이 그렸고, 디자인 구상은 루쉰이 했지만, 도원경은 루쉰의 구상을 무시하고 ‘무덤과 관이 들어간 표지 그림을 그렸다. 루쉰은 이것을 마음에 들어하면서 나중에 직접 작은 그림을 한 점 더 그려 속표지에 끼워넣었다. 왕시중은 이렇게 설명한다. “루쉰이 그린 작은 그림은 죽음과 두려움의 이미지를 배제하면서 시신의 ‘매장’과 ‘그리움’이라는 두 가지 개념을 표현하기에 아주 적합한 매우 훌륭한 창작이었다.”

제목에서는 ‘루쉰’으로, 본문에서는 ‘노신’으로 인명 표기가 일치하지 않은 점, 각각 ‘자술’과 관련기록의 출처를 각주나 후주 형태로 제시했더라면 더 충실했을 텐데 이 작업을 빠뜨린 점 등은 아쉬운 대목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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