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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적인 학문세계에서 가족문제 꺼내면 갈등될 수도”
“경쟁적인 학문세계에서 가족문제 꺼내면 갈등될 수도”
  • 김유정 기자
  • 승인 2010.03.29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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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자와 가족 사이에서 균형 잡기

데이비드 펄뮤터 아이오와대 언론정보학전공 주임교수
교수들은 학자이기 전에 한 집안의 어머니이자 아버지, 혹은 부모를 모시는 집안의 구성원이다. 교수 역시 대학 안에서 각종 업무와 가족문제가 부딪힐 때, 둘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기 위해 고민한다. 연구년을 맞아 해외로 떠날 때 가족을 대동하고, 대학을 옮기는 이유 중 ‘가족 문제’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데이비드 펄뮤터 아이오와대 언론정보학전공 주임교수(사진)는 최근 미국 고등교육 전문지 <크로니클 오브 하이어에듀케이션>에 관련 글을 실었다. 그는 다양한 사례를 들어 교수와 가족 사이에서 역할균형을 맞추는 방법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전했다.

1. 당신은 인문학을 전공한 조교수이다. 결혼해서 어린 자녀를 뒀고 작은 대학에 재직 중이다. 학기말인 지금, 여름방학 계절학기 수업을 맡는 대신 가족과 휴가 계획을 세웠다. 그러던 어느 날 학장이 당신을 사무실로 불러 “선임 교수가 갑자기 은퇴하겠다고 말했다”며 여름방학에 그가 맡기로 한 강의를 대신 맡아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2. 당신은 정년보장심사 인터뷰를 마치고 인사위원과 저녁식사 자리에 참석했다. 식사 화제는 어느 순간 자녀의 초등학교 생활로 옮겨갔다. 이사회 구성원 중 하나가 당신에게 자녀가 있는지 물었다. 당신에겐 초등학생 자녀가 있지만 고민할 것이다.‘아이에 대한 시시콜콜한 얘기를 꺼내면 학자와 연구자, 교수로서의 모습에 혹시라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하면서 말이다.

가족문제는 교수직의 성공 여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치열하고 경쟁적인 학문세계에서 가족문제를 꺼내는 것은 자칫 갈등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반대로 가족에 대한 언급을 아예 하지 않는 것도 경직된 행동이다. 이와 관련해 필자 스스로 만들어 본 ‘행동지침’이 있다. 가족 이야기를 꺼내도 자연스러운 상황은 언제인지, 그리고 가족 구성원으로서 역할보다 학자로서 역할을 좀 더 부각시켜야할 때는 언제인지 등에 대해 주위 사례와 경험을 통틀어 적어보고 싶다.

첫째, 가족을 지나치게 중시하지 말아야 한다. 대학 안에서 원하지 않은 업무를 맡게 됐을 때, 많은 교수들은 이를 피하기 위한 변명거리로 가족문제를 자주 언급한다. 그러나 우리 주변엔 자녀가 없는 교수도, 치매에 걸린 부모를 모시고 사는 미혼 교수도 있을 수 있다. 이들 모두에게 “아이를 데리러 가야해서 업무를 맡을 수 없다”는 변명이 통하는 것은 아니다. 

둘째, 자식에 대한 이야기는 조금 줄여도 좋다. 내가 아는 한 남성 언어학자는 유명한 교수이자 잘 나가는 책을 쓴 저자다. 그는 항상 주변 교수에게 자신의 딸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학교생활을 어떻게 하고 있는 지 말한다. 이쯤 되자 동료들은 그를 피하기 시작했다. 공동연구를 수행할 때도 그를 제외했다. 그는 유능한 학자이지만 매일 딸 자랑을 듣는 것은 너무 가혹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셋째, 가족문제를 언급하는 것 자체를 혐오할 필요는 없다. 한 교수는 수업시간에 반드시 휴대폰을 꺼야 한다는 철칙을 지키고 있다. 필자는 그에게 “가족에게서 급한 전화가 오면 어떻게 하나”라고 물었다. 필자는 수업시간엔 휴대폰을 진동으로 해두고 부인에게 전화가 올 때만 받는다. 부인은 중대한 사안이 아니면 강의시간 중에 절대 전화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교수는 그러나 “쉬는 시간까지 기다리면 된다”며 콧방귀를 뀌었다.
다시 첫 번째 사례로 돌아와 보자. 당신이 지금 조교수라면 불만 없이 계절학기 강의업무를 수락하는 게 현명하다. 적극적으로 학과 일을 돕는 모습을 비출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선배교수들이 나중에 당신에 대한 정년보장 심사를 할 때 지금의 일을 떠올릴 것이다.
각종 인터뷰나 격식을 차려야 하는 식사 자리에서 가족문제가 주요 화두로 떠오른다면 되도록 짧게, 간단히 말하고 화제를 다시 당신의 연구나 강의주제로 옮겨올 필요가 있다. 일과 가족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일은 언제나 어렵다. 그러나 경제위기로 어려운 상황에서 교수들은 가족관계를 좀 더 자주 언급할 수 있는 위치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하며 글을 마친다.

정리=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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