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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한국학 알리미…“중남미 대륙, 의지 있다면 도전할 것”
칠레의 한국학 알리미…“중남미 대륙, 의지 있다면 도전할 것”
  • 김유정 기자
  • 승인 2010.03.22 15: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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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_ 민원정 칠레가톨릭대 교수(중남미문학)

지구 반대편에 위치한 칠레에서 한국학 강의를 통해 한국 알리기에 힘쓰고 있는 민원정 칠레가톨릭대 교수(43세, 중남미문학·사진). 칠레 대학에 정착하는 과정은 “무엇이 ‘가장’ 어려웠는지 답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할 만큼 쉽지 않았다. 대학 국제화 시대, 해외 진출을 모색하는 국내 박사가 점점 늘고 있는 가운데 민 교수는 이메일 인터뷰를 통해 칠레에서 한국학 강의를 하면서 느끼는 점과 현지 대학의 모습 등을 생생하게 들려줬다.

제1~3회 한국학논문대회 1등 수상자들과 함께한 민원정 칠레가톨릭대 교수. 맨 위 가운데가 민 교수다.


민 교수는 한국외대에서 중남미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칠레와의 인연은 시간강사 생활을 하던 그가 2003년 스페인어권 한국학 상황조사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해 칠레를 방문했을 때부터다. “처음부터 정착하기 위해 온 것은 아니었다. 해외에서 경험을 쌓으며 나 자신을 시험해보고 싶었다.” 스페인어과가 설치된 대학 수는 한정된 반면 스페인, 멕시코 등에서 학위를 받고 돌아온 박사는 수십 명을 웃도는 것을 보고 민 교수는 ‘한국에서 교수가 되기 힘들다’고 생각했단다. 말 그대로 ‘스펙’이 떨어진다는 것을 절감했다고 전했다.

 
칠레에 정착하기로 결심한 이후 “이력서와 수업계획서를 들고 이 학교, 저 학교를 찾아다니는” 일을 반복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갈 비행기 삯까지 털어서 써야 하나,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산티아고 근교의 두 군데 대학에서 강의 제의가 들어왔다”며 “1년 정도 해보고 돌아가자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새 6년이 됐다”고 말했다. 민 교수가 칠레가톨릭대에서 아시아학 전반에 관한 팀티칭 코스에 참여한 것도 이 즈음이다.

한국학 강의·학술대회 이끄는 주역
그의 설명에 따르면 칠레가톨릭대는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갖고 있다. 수도인 산티아고에 4개, 남부 비야리카에 1개의 캠퍼스가 있다. 18개 단과대학에 31개 학과가 있고 전체 교수 2천879명 중 1천799명이 Half Time/ Full Time 교수다. 민 교수는 이 곳에서 ‘한국문화와 한국어’(2006년 개설)와 ‘역사 속 한국여성’(2007년 개설) 수업을 맡고 있다. 2006년부터 한국국제교류재단에서 지원을 받아 한국학 관련 연구소와 소규모 한국영화제를 진행하고 있다. 학부생을 대상으로 한국학 논문대회를 주최하거나 국제 한국학세미나를 이끌어가는 이도 민 교수다.

그가 속해 있는 칠레가톨릭대 아시아프로그램은 지난 2002년 역사지리정치학부 안에 설치된 다학문적 연구소다. 민 교수를 비롯해 역사지리정치학부 학장, 아시아프로그램 소장, 지리학과, 역사학과, 경제학과, 정치학과, 미학과 교수 각 한명이 위원회(Executive Committee)를 구성하고 기타 협력교수들이 참여해 연구하고 있다. 민 교수는 위원회 중 한 명으로 외부 연구비를 받아 아시아프로그램 안에 한국학 관련 활동을 운영한다. “초기에는 한국 관련 수업, 국제 한국학세미나 등 칠레에 없던 것들을 만들어 가는 재미에 힘이 드는 줄도 몰랐다.” 연구비의 경우 대학 내에서 교수 연구지원비를 신청하면 심사 후 선정해 약간의 연구비를 지급한다. 하지만 연구비, 활동비 등 연구 활동에 필요한 돈은 교수들이 외부에서 지원을 받아내는 것이 원칙이라고. 그는 “국제교류재단에서 지원을 받고 있지만, 이를 지속시키는 한편 현지에서 자급자족하는 방안을 동시에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 그래야 한국학이 지속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근엔 영화진흥위원회, 칠레주재 대사관, 한국기업의 도움이 이어지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칠레와 한국간 교류가 활발해지고 있다.

칠레 교수도 ‘SCI 논문’ 고민
연구비 얘기를 통해 듣는 칠레 대학 사정은 우리와 비슷한 점이 많아 보인다. 민 교수는 “필요한 돈은 외부에서 지원을 따내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에 모든 교수들이 프로젝트 노이로제에 걸려있다”는 말로 분위기를 전했다. “칠레가톨릭대는 매 학기 초 단과대별로 (칠레)학술진흥재단 프로젝트에 대해 논의한다. 2000년 이후 몇 개 프로젝트를 내서 몇 개가 선정됐는지 비교하고,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 책임 교수는 누구인지, 학교 내 교수 연구지원 프로젝트는 어떤 것이 있는지 등을 알려준다. 프로젝트 별로 마감일이 다가오면 이메일로 알려준다.” SCI 논문도 업적평가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인문학분야에서 저서와 SCI 문제는 현지 교수들도 지적하는 부분이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교수들의 신분은 Ordinary Plant와 Adjunt Plant로 나뉘고 계약시간도 quarter/ half/ three-fourth/ full tim 등 교수 개인에 따라 다르다. 정년을 보장받은 교수들은 20%가 되지 않는다. 영어수업 개설 프로젝트도 있다. 민 교수는 2009년 1학기에 동료교수와 ‘Intercultural Communication between Asia and Latin America’를 영어로 강의했다.  

“광활한 중남미, 개척의지 각자에게”
국내 대학은 국제화를 내세우며 외국인 교수 임용에 공을 들인다. 인바운드 국제화에 치중하는 상황이다. 민 교수가 생각하는 대학 국제화는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세계와 함께할 수 있는 힘을 기르고 국제매너를 갖추는 것’이다. “대학들이 외국인 교수를 임용하거나 국내 학자들이 해외 대학으로 진출하는 것은 국제화에 도움을 주기 위한 노력의 일부는 될 수 있지만, 이것만이 국제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중남미지역 연구자나 해외 진출을 꾀하는 학문후속세대를 위한 조언을 들려달라고 요청했을 때도 그는 현실적인 얘기를 꺼냈다. “본인이 진정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며 “남들이 하지 않은 일은 가능성이 많은 만큼 더 힘이 들고, 그래서 어지간한 각오로는 버티기 쉽지 않다”고 전했다.
같은 경쟁자가 되면 외국인이라고 봐주는 일은  더 이상 없다. “가끔 ‘중남미에서 강의를 좀 해보고 싶다’거나 ‘중남미 한국학 진흥을 위해 노력하겠다’, ‘그 학교에 자리 좀 있느냐’는 메일을 받지만 답하기 어려운 문제다. 광활한 중남미 대륙을 개척할 의지와 준비는 본인에게 달려있다.”

한국학 연구와 관련해서도 그는 당장 큰 계획을 세우기보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을 해 나가면서 새로운 일을 덧붙여 나간다는 생각이다. “요즘 중남미에서 한국학의 목적이 ‘한국을 잘 알리기 위한 것’인지, ‘한국학 학자를 길러내기 위한 것인지’를 고민한다”는 민 교수는 현재 ‘한국과 칠레의 인사법을 통해 본 문화차이’를 연구 중이다.

김유정 기자 jeo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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