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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의 인물] 안중근과 베토벤, 비극에 맞서는 영웅의 모습
[역사 속의 인물] 안중근과 베토벤, 비극에 맞서는 영웅의 모습
  • 우주영 기자
  • 승인 2010.03.22 15: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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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자는 태풍 앞에서 벌벌 떨지만, 살아있는 자는 그 태풍과 더불어 걷는다.’ 칼릴 지브란의 말을 빌리자면 안중근과 베토벤의 삶은 태풍의 자장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오히려 시련과 역경에 맞서는 불굴의 의지는 죽음을 맞닥뜨린 상황에서 더 활활 타올랐다.

1910년 2월 14일 마지막 공판. 사형이 언도되는 순간 安重根(1879.9.2~1910.3.26)의사의 얼굴엔 미소가 떠올랐다. 고등법원장 히라이시가 형무소까지 찾아와 상고를 권고했지만 안중근의 의지는 확고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사형이 언도됐다는 소식을 접하자 급히 두 동생을 보내 뜻을 전한다. “옳은 일을 하고 받은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이다.” 이 소식을 들은 일본 아사히신문은 ‘是母是子: 그 어머니에 그 아들’란 기사를 내보냈다. 1910년 3월 26일 오전 10시. 사형 집행 마지막 순간까지 동양평화에 대한 당부를 잊지 않았던 안중근은 형장에서 조용히 숨을 거둔다. 그때 그의 나이 31세.

안중근은 1879년 황해도 해주부에서 출생했다. 30세가 되던 1908년 안중근은 대한국 의군 참모중장으로 선임돼 치열한 항일투쟁을 결행한다. 이토 히로부미는 한국 침략의 원흉이었다. 그의 한국 방문은 곧 전 세계에 일본 침략의 실상을 알릴 절호의 기회였다. 마침내 1908년 10월 26일. 도열한 러시아 군인들 사이를 뚫고 안중근이 쏜 총알이 이토의 숨통을 관통한다.

올해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년이 되는 해다. 학계뿐 아니라 사회 곳곳에서 안중근 의사의 생애를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무엇보다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에 한국뿐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관심이 모아진다.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는 2009년 10월에 있었던 안중근 의거 100주년 기념 학회 ‘안중근의 동양평화론과 동북아 평화공동체 미래’에서 “윤리적 세계관과 윤리관이 천주교 평화주의와 어울려 안중근 사상의 기저를 이뤘다”고 분석했다.

음악가에게 소리가 들리지 않는 것보다 더 큰 불행이 있을까. 베토벤의 삶을 모델로 한 소설 『장 크리스토프(Jean Christophe)』를 썼던 로맹 롤랑(Romain Rolland)은 “만약 하느님이 인류에게 범한 죄가 있다면 그것은 베토벤에게서 귀를 빼앗아 간 것이다”라고 말했다.

루트비히 판 베토벤(1770.12.17~1827.3.26)은 1770년 독일 빈의 한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났다. 알코올 중독에 빠진 그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의 천재성을 돈벌이 수단으로만 생각했다. 베토벤이 귓병에 걸렸단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서른두 살 무렵이었다. 평생 음악에만 몰두해왔던 베토벤에게는 감당하기 힘든 시련이었다. 1802년, 베토벤은 요양 차 들른 하일리겐슈타트에서 죽기를 결심하고 두 동생에게 유서를 썼다. 그러나 그는 자살을 포기한다. 그는 이미 유서에서 “운명의 모진 여신이 마침내 심장의 박동을 멈추게 하는 그 순간까지, 내 상태가 호전되든지 악화되든지 나는 삶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적고 있다. 어찌 보면 이것은 유서가 아니라 그 어떤 비극적 운명에도 결코 굴하지 않겠다는 베토벤 스스로의 다짐인 것이다. 실제 그의 걸작은 완전히 귀가 멀게 된 49세 이후 쏟아진다.

홍영주 성신여대 교수(기악과)는 “베토벤의 악보를 보면 고치고 또 고친 흔적이 역력하다. 그의 노력은 천재성을 넘어 선다”고 말한다. 한평생 자신을 억압하는 운명에 맞서 싸우던 베토벤은 그의 나이 57세 되던 해 결핵으로 숨을 거뒀다. 29일간 거행됐던 그의 장례식에는 무려 2만여 명의 조문객이 참석해 樂聖의 죽음을 애도했다. 안중근이 시대의 비극에 맞닥뜨렸다면 베토벤은 음악가로서 최악의 불행과 마주해야 했다. 그러나 운명의 비극에 맞선 그들의 의지와 열정은 시지푸스가 바위를 들어 올리듯 묵묵하지만 견고했다.

우주영 기자 realcosmos@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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