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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화는 사회과학자의 숙명 … ‘당파성의 과학’을 思惟하자
일반화는 사회과학자의 숙명 … ‘당파성의 과학’을 思惟하자
  • 박은홍 성공회대·정치학
  • 승인 2010.03.15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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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조석곤 교수의 『동원된 근대화』 서평을 읽고

‘박정희체제’는 국내적 쟁점만은 아니다. 일부 개발도상국가들에게 박정희체제는 모방의 표준이기도 하고 경계의 대상이기도 하다. 특히 ‘종속’ 패러다임에 서있던 진보에게 박정희체제는 진영으로서의 사회주의의 붕괴와 함께 지식지형을 뒤덮는 ‘대홍수’가 됐다.

이러한 배경하에서 진보의 재설정은 시대적 과제다. 조희연 교수의 『동원된 근대화』 못지 않게 조석곤 교수의 서평 역시 진보의 재설정이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렇지만 『동원된 근대화』의 독자 입장에서, 그리고 진보의 재설정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회과학도의 입장에서 몇 가지 문제제기를 한다.


우선 『동원된 근대화』의 방법론과 관련해 조 교수는 중상주의 개념의 과잉 일반화를 지적했다. 그러나 동아시아에 관심을 가져온 많은 국내외 정치경제학자들이 동아시아의 압축성장을 중상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설명했듯이 사회과학도에게는 보편과 특수의 반복되는 긴장 속에서 입증을 위해서든 반증을 위해서든 일반화와의 씨름이 숙명적인 것 아닌가 한다.

두 번째로 지속가능성을 설명해내지 못하는 헤게모니론에 대한 지적과 관련해서다. 이 책이 경제적 측면을 소략하고 있다는 조 교수의 의견에 동의하지만 그동안 발전국가론에서 언급된 박정희체제 시기의 국가-기업관계의 제도를 박정희체제의 상대적 안정성을 가능하게 했던 헤게모니적 지배의 수단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 아닌가 한다. 물론 이때 업적 정당성을 가능하게 한 ‘제도’는 축적체제와 같은 최종심급이 아닌 중위수준의 작동기제일 것이다. 오히려 ‘경로의존성’은 ‘포스트-박정희체제’의 제도적 유제와 관련된 것이라고 본다.

박정희체제의 성격을 둘러싼 논의는 보다 생산적인 상상력을 요구한다.

세 번째로 ‘개발 혹은 독재=악, 민주화=선’이라는 도덕적 이원론의 극복을 이 책의 장점으로 보는 해석에 관해서다. 이는 이 책의 저자가 답할 대목이지만, 굳이 관여한다면 조 교수의 이러한 해석으로부터 불확실성, 비결정성, 우연성 등과 같은 과학철학의 주제를 연상하게 되며 이러한 문제의식이 ‘식민=악, 탈식민=선’이라는 이원론에 대한 회의로까지 소급될 경우 이는 단지 과거에 대한 해석의 문제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진보를 현재의 ‘도전’에 대해 어떠한 가치판단도 못하게 하는 ‘안개지대’로 몰아가거나 어떠한 관점도 가능하다는 무정부주의적 인식론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의 강점은 ‘당파성의 과학’을 유지하면서 박정희체제가 수동혁명의 차원에서 어떻게 헤게모니 프로젝트를 구사했는가를 드러내려고 한 것에 있다고 본다. 이때 ‘과학’은 반증가능성(falsifiability)=유연성과 불가공약성(incommensurability)=당파성을 동시에 견지한다. ‘과학’이 전자를 간과할 경우 그 경직성으로 말미암아 비정상과학으로 전락할 것이고 후자를 무시할 경우 경쟁적 패러다임에 흡수돼 버리고 말 것이다. 이때 설명력과 예측력의 무기력화는 패러다임 자체의 위기를 의미한다. 그러기에 패러다임의 재설정은 무기력으로부터의 탈출전략이다.

나아가 자연과학과 달리 사회과학의 탐구대상이 주관과 주관, 주관과 객관의 끊임없는 교호작용을 통해 구성된다고 본다면 이 책을 관통하는 헤게모니이론을 통해 이론적 위기가 실천적 무의미와 별개임을 발견하게 된다. 즉 능동혁명에 대한 방어로서의 수동혁명이 이끌어낸 혁명의 좌절로서의 개량 역시 의도하지 않은 진보의 성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진보의 자기성취적 예언이 아닌 자기부정적 예언의 실천적 유의미성을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 대한 기대를 부연하자면 우선 ‘동원된 근대화’와 관련해서 이 개념이 근대화 담론의 계보상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를 보다 구체적으로 해명주었으면 한다. 이를테면 ‘동원된 근대화’는 B. 무어가 일컫는 반동적 자본주의적 근대화인 ‘보수적 근대화’와 유사하다. 반면 W. 브루스와 K. 라스키는 사회주의적 근대화 역시 추격전략을 구사했다고 주장한다.  

절차적 정당성의 문제와 산업정책을 둘러싼 국가와 조직된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계급-역사적 블록으로서의 대항 헤게모니-의 치열한 상호작용에 대한 초점도 앞으로 강화됐으면 한다.
다른 아시아의 동원된 근대화와의 비교도 앞으로 연구과제다. 필리핀의 마르코스 역시 박정희체제와 유사한 시기에 동원된 근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필리핀의 동원된 근대화는 실패했고 주된 원인을 많은 이들은 토지개혁의 실패에서 찾는다. 반면 S. 해거드가 지적하듯 남한에서는 ‘해방공간’ 시기에 상대적으로 진보적 토지개혁이 진행됐다. 물론 북한에서 먼저 시행했던 급진적 토지개혁의 압박이 주효했다. 그렇다면 북한, 베트남과 같이 급진적 토지개혁에 성공한 아시아 국가들은 왜 지속 가능한 근대화에 실패하거나 저조한 성과를 보였는가. 결국 시장, 노동력, 교육, 가치, 계급정치, 리더십, 세계체제 등의 여러 변수들을 고려하는 성찰적 접근이 불가피하다.

조 교수와 마찬가지로 『동원된 근대화』가 진보의 재설정을 위한 담론경쟁에 기폭제가 될 것을 기대하며, 조 교수의 서평 역시 이 책 못지않게 보다 생산적인 정치사회학적 상상력을 자극하리라 믿는다.

박은홍 성공회대·정치학

필자는 서강대에서 박사 학위를 했다. 저서로 『동아시아의 전환: 발전 국가를 넘어』, 『아시아 민주화와 사회 경제적 불평등의 동학』(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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