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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후기] 진교훈 심사위원장(서울대·철학)
[심사후기] 진교훈 심사위원장(서울대·철학)
  • 교수신문
  • 승인 2002.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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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적 엄밀성과 주제 곰삭힌 호소력 중시해
이번 교수신문 창간 10주년 기념 학술에세이 공모전의 주제인 ‘생명’은 우리 스스로 찾아내고 풀어나가야 할 우리 시대의 중요한 화두이다. 점증하는 생태계 위기와 제어장치를 상실한 생명과학의 질주는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본질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무도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만족할만한 해답을 주지 못하고 있다. 생명의 본질이 워낙 깊고 넓은 것이어서 어떤 하나의 관점에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는 신비를 품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생명에 대한 성찰은 폭넓은 학제적 접근에 의한 상호주관적인 이해를 요구한다.

응모작품 수는 애초 기대와는 달리 모두 60편에 불과했고, 예심은 물론이고 본심에 올라온 30편의 작품조차도 학술에세이 공모전의 본래 취지를 모르고 쓴 글이 상당수 있었다. 이것은 아마도 학술에세이 공모전이 처음 시도된 데다가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글쓰기는 주로 전문적인 학술논문이거나 짤막한 시론 내지 시평 또는 신변잡기류의 가벼운 글이 주종을 이루어 온 탓일 것이다.

학술에세이란 학문적 엄밀성을 유지하면서도 자신의 체험 속에서 우러나와 자연스럽게 무르익어 독자로 하여금 감동을 주는 글쓰기라고 한다면 이번 공모전의 글들은 당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최종심에 올라온 10편들도 생명에 대한 깊은 이해와 철저한 천착이 드물었다. 주제의 중압감에 휘감겨 헤어나지 못했고 1년이라는 긴 시간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글발이 뜸이 덜 들고 결이 삭지 않은 글들이라는 점을 심사위원들은 이구동성으로 토로했다. 그래서 최종 심사위원들은 어떤 글을 자신있게 대상감이라고 추천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학술에세이쓰기 장려를 위해 최우수상을 한편 더 늘리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평가 항목에 따라 심사해서 종합점수로 최고점을 얻은 ‘생태이론과 화쟁사상’(이도흠)과 또 ‘생명: 중과 소통의 생명성’(박재현)의 두 편을 대상이 없는 공동 최우수작으로 선정하는 데 심사위원들은 전원 동의했다. 우리는 그 다음 높은 점수를 받은 작품들을 차례로 우수상과 가작을 주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이로써 심사는 끝났으나 독자들과 올바른 글쓰기 운동을 위해 심사 후의 소감을 몇 마디 부언하지 않을 수 없다.

우선 이번 응모자의 대부분은 인문학 전공자(46.7%)인 반면 자연과학 전공자는 3.3%에 불과했다. 이것은 생명을 학문연구의 직접적 대상으로 삼는 의사와 생물학자의 학문적 편식이 얼마나 극심한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고 하겠다. 그 다음 이번 공모전을 통해서도 우리나라의 학교교육이, 특히 국어교육과 교양교육이 얼마나 부실했는가를 우리 모두가 깊이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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