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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간지 리뷰] 4·19, 식민지, 공동체감각, 3대위기론, 그리고 대학
[계간지 리뷰] 4·19, 식민지, 공동체감각, 3대위기론, 그리고 대학
  • 최익현 기자
  • 승인 2010.03.08 14: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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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 89호는 특집으로 ‘4·19와 모더니티-4·19와 담론의 정치학’을 기획, 홍태영(419와 국민국가의 계기), 소영현(‘대학생’ 담론을 보라-419정신의 소유권에 관한 일고찰), 권명아(죽음과의 입맞춤:혁명과 간통, 사랑과 소유권)를 배치했다. 여기에 4·19 50주년 기념 특별대담으로 최인훈과 김치수라는 두 상징을 초청, 전면에 내세웠다.

홍태영 국방대 교수(국제관계학부)는 한국 근현대사에서 국민국가(nation-state) 형성이라는 시각을 통해 4·19를 볼 필요성을 제기했다. 그는 1987년 민주화 이후 4·19가 더 이상 ‘기억’의 대상이 아니라 ‘기념’의 대상이 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를 소거하면서 새로운 사유의 전초기지로 호명해냈다. “근대 국민국가의 주체가 ‘국민’이라는 단일 주체를 상정했다면, 이제 다양하고 획일화되지 않은 다중적인 주체가 형성되고 있고, 그들에 근거한 민주주의를 사고해야 한다.”

이점에서 4·19 정신과 ‘국가 만들기’ 기획의 상관적 영역을 더 성찰하자고 제안한 소영현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가 던진 다음과 같은 독백은 경청할만하다. “4·19정신에 의해 ‘완성을 위한 영원한 운동성’을 강조하는 논리, 즉 진보 논리의 한계선까지 성찰되지 않는다면, 4·19정신은 우리에게 결코 단 한 번도 도래한 적이 없다고 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4·19를 끝없이 지연된 미완의 혁명으로 불러야 한다면, 그건 여전히 (개별자로서의) 우리의 일상이 네이션에 깊이 연루되어 있으며 타자라는 거울을 통해서만 자기를 구성할 수 있는 이항 대립의 세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역사비평> 90호의 시선은 <문학과 사회>보다 조금 더 먼 곳을 응시한다. 그곳에는 ‘일제강점 100년’이라는 푯말이 서 있다. 특집 ‘식민지에서 산다는 것-생존, 순응, 저항…’을 꾸리고 이기훈(젊은이의 초상-식민지의 학생, 오늘날의 학생), 류시현(식민지 지식인의 ‘지조’ 지키기-동경삼재의 삶을 중심으로), 이경란(해방을 찾아가는 농민), 이병례(경제불황기 정리해고와 노동자의 대응), 지수걸(지방유지의 ‘식민지적 삶’), 장유정(이 땅에서 ‘별’로 산다는 것은-대중가수의 탄생에서 귀환까지)을 불러냈다.

김성보 편집주간의 기획의 변을 들어보자. “이번 특집에서는 식민지 하에서 학생, 지식인, 노동자, 농민, 지방유지, 연예인 등 다양한 계층이 어떠한 삶을 살아갔는지를 현재의 삶과 비교해 그 생생한 모습을 드러낸다.”

계간지 봄호들이 일제히 얼굴을 내밀었다. 이들은 각각 4·19, 식민지인의 삶, 공동체감각, 작금의 3대위기론, 한국 대학 문제를 특집으로 걸고, 문제의식을 밀고 나갔다.


식민지 교육의 불평등성 속에서 학생들은 입시 지옥을 거쳐 취업 지옥을 살아갔으며, 한편 근대 도시문화의 소비자로서의 삶을 누리거나, 일탈을 감행하거나, 학생운동을 통해 각자의 꿈을 펼쳐나갔다(이기훈 목포대 교수). 농민, 노동자의 삶이 어느 계층보다 핍진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렇다면 지방 有志는? 지수걸 공주대 교수(역사교육)에 의하면, 한말까지만 해도 활발한 정치사회활동을 한 지방 유지들은 일제하 총독부 권력에 종속돼 자율성을 상실하고 ‘관료-유지 지배체제’에 포섭됐다. 해방 이후에는 그 기반이 더 약화돼 박정희 집권기에는 ‘끄나풀형 유지’로 전락했다. 지 교수는 풀뿌리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관료-유지 지배체제’와 ‘끄나풀형 유지’의 유산을 청산할 것을 주장했다.

MB정부 집권 3년차 ‘3대 위기론’

잡지의 커버 색 만큼이나 부피가 경량화된 <오늘의 문예비평> 76호에는 조금 복잡한 사정이 있다. 부산 인문학의 본바닥에서 한국문학의 현장에 도전적으로 개입해온 지 거의 20년이 다 된다. 잡지를 후원하는 뚜렷한 ‘물주’가 없는데도 20년을 달려온 것이다. 기금이 바닥날 수밖에 없다. 폐간을 심각하게 고민했다. 결론은? “지역전문지 <오늘의 문예비평>은 발 딛고 있는 지역에 정초하면서도 지역적 고립주의를 넘어 국민국가나 세계체제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대항논리를 모색해온 지역문화계의 소중한 자산이기도 하다. 이런 자산이 사라지고 만다면 한국 비평계와 지역 문화계의 역량은 그만큼 빈곤해지고 말 것이다. 그래서 이 작업은 멈출 수 없다.”

<오늘의 문예비평>이 표방한 ‘공동체의 감각’은 요즘 바람이 불고 있는 랑시에르적인 혐의가 있긴 하지만, 이 감각의 주어이자 주체를 ‘한국문학’으로 소환한다는 점에서 눈여겨볼만하다. “공동체의 감각이 발아되는 그 내밀한 자리와 이를 문학이 그 특유의 촉수를 바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지점을 탐구해나가는 과정 속에서, 한국문학은 사회적 모순에 맞선 비판적 전위로서의 역할을 새로운 형태로 수행해나갈 한 방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란 기대에서 말이다. 여기에 호명된 글들에는 문광훈(거품가면의 행렬-공동감각에 대하여), 허정(공동체의 감각은 어떻게 발아하는가-시의 경우), 정은경(뫼비우스의 띠는 어디에서 꼬이는가)의 글이 도열해 있다. 문광훈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공동(체)감각’을 논리화에 주력한다. 문 교수에 따르면 ‘공동감각’은 변증법적 사유, 정치, 감각, 판단과 윤리적 실천, 주체, 사람의 조직 문제 등과 같은 광범위한 영역에 관련된 것으로 사적인 영역에서부터 사회적 이성의 가능성 탐구와 같이 일반적인 영역에까지 이어지고 있다. 예술이 이러한 공동체의 감각을 드러내고 단련시키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보았다. 

올봄은 정치·사회적으로 이명박 정부 집권 3년차가 시작되는 시공간이다. 곳곳에서 이명박 정부 집권 2년을 평가하는 목소리가 다양하다. 특집 ‘3대 위기를 넘어, 3대 위기론을 넘어’를 들고 나온 곳은 <창작과비평>  147호다. 흔히 민주주의·민생·남북관계의 위기를 지적하는 ‘3대 위기론’은 내밀한 분석이 필요한 담론이 분명하다.

<창작과비평>은 “3대 위기론을 바탕으로 각 부문의 난맥상을 구체적으로 분석하고, 각각에 대응할 진보개혁세력의 실천방안을 6월 지방선거 등의 계기와 연결해 제안”하는 데 무게를 실었다. 김종엽(이명박시대, 민주적 법치와 도덕성의 위기), 이남주(정치연합, 진보개혁세력 상생의 길), 전병유(경제위기를 넘어 민생위기 해결로), 백낙청(‘포용정책 2.0을 향하여) 등의 글이 새로운 경로를 길 닦고 있다.

전병유 한신대 평화 공공성센터 부소장은 이른바 서민경제는 여전히 난관에 봉착해 있다고 진단하고, MB노믹스의 ‘경기회복’과는 별개로 존재하는 ‘민생위기’ 해결을 주장한다. 대규모 유동성 공급과 재정투입, 감세와 규제 완화, 민영화로 요약되는 이명박 정부의 위기 대응책은 거시지표상의 회복을 가능케 했지만 2010년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재정적자와 국가채무의 위험을 업고 있으며, 이러한 정책들이 민생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동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이러한 민생위기는 대기업-중소기업의 격차, 국가복지 마비, 사교육비와 부동산 압박 등의 복합요인에 의해 발생하므로, 단순한 성장이나 소득재분배 정책으로는 극복하기 어렵다는 게 전 부소장의 생각이다. 대안으로 양극화된 산업구조 개편, ‘삽질경제’에서 ‘사회서비스경제’로의 체질 개선, 재분배와 복지 부문의 정교한 정책 설계를 주문한다.

대학 안에서 비판적 삶 바라보기

<황해문화> 66호가 한국사회의 아픈 곳 하나를 아주 제대로 잡아냈다. 특집 ‘대졸자 주류사회와 위기의 대학’이 그것이다. 대학을 졸업해야만 이 땅에서 조금 행세할 수 있는 이 천박한 지적 허위의식과 이 허위의식을 거품질하는 대학 문제를 놓치지 않은 건 확실히 <황해문화>의 빼어난 안목 때문일 것이다. 홍윤기 동국대 교수(철학)의 권두언부터 이 문제를 직접 겨냥하고 있다. “공부시킬 것을 자신있게 공부시키는 대학이 아니면 대학의 기능은 대학보다 더 대중야합적인 욕구를 잘 충족시켜줄 사회의 부조리한 욕망에 완전히 고사돼 그 들러니나 설 운명을 면치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괜한 엄포로 들리지 않는다. 김진석(대졸자 주류 사회, 이젠 바꿔야 한다), 양돌규(우리 시대 어떤 신화에 대한 의문-대학을 왜 가는가?), 박권일(대학의 사회적 위상과 가치의 행동-한국인에게 대학이란 무엇인가?), 홍훈(학벌·식민성·권위주의·신자유주의-한국대학의 초상), 최익현(표류하는 대학 인문학), 이은경(이공계 대학의 한국적 정체성), 김명인(대학교수는 무엇으로 사는가?), 한귀용(유럽 대학의 변화와 고민)의 글이 값지게 실려 있다.

김진석 인하대 교수(철학)가 솔직하게 접근했다. 좀 덜 공부하고 덜 노동하는 삶이면 어떠냐, 그런 ‘비주류적 삶’을 이제부터라도 제대로 인정해주자는 것이다. “주류적으로 살지 않아도 억울하지도 않고 비참하게 느끼지 않아도 되는 삶.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되는 당당한 삶” 대학이 대안이 아님을 아는 부모도 자식을 대학으로 밀어 넣는 이 기막힌 현실에서 비주류적 삶을 당당하게 모색하는 일,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진보가 가장 눈여겨봐야 할 곳이 아닐까. 이게 김 교수의 모험적인 글이 도달한 곳이다.

최익현 기자 bukhak64@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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