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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식 연구·텃밭 정서에서 벗어나자
칸막이식 연구·텃밭 정서에서 벗어나자
  • 하연섭 연세대·행정학과
  • 승인 2010.03.08 14: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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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언] 한국 사회과학이 발전하려면

정부에서 이른바 한국사회기반연구사업(SSK: Social Sciences Korea)을 시행한다고 하니 사회과학을 전공하는 한 사람으로서 우선 반가운 일이다. 우리 사회가 당면한 문제를 진단하고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담당해야 할 사회과학분야가 그 소임을 다하고 있는가에 대한 자성과 비판이 제기되는 시점에서, 한국 사회과학의 역할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는 사업이 진행된다는 것은 무척 고무적인 소식임에 틀림없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사회과학만을 위한 본격적인 연구지원 사업이 시행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이기에 기대도 크지만 사업이 추구하는 목적을 제대로 달성했으면 하는 바람은 더욱 간절하다. SSK 사업이 성공하고, 더 나아가서 한국 사회과학이 발전하려면 우리 사회과학의 현 상황에 대한 반성에서부터 출발해야 할 것이다.
사실, 우리의 사회과학은 응용연구와 기초연구 양 쪽에서 모두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응용연구 쪽에서의 대부분의 연구는 용역보고서 류의 연구에 국한돼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문제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기 위해서는 자료가 필요하고 또 대부분의 쓸 만한 자료는 정부에서 갖고 있기 때문에 적실성 있는 연구를 위해서는 용역 혹은 정책연구에 의존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이러한 용역보고서 류의 응용연구는 이미 주어진 결론을 뒷받침하기 위한 연구일 수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실용성은 있을지 모르나 지식의 축적과는 거리가 먼 연구들이 대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정책을 리드할 수 있는 응용연구는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고 할 것이다.

훌륭한 기초연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기초연구들은 지나치게 사소한 문제에 대한 비정상적인 몰입으로 특징지울 수 있다. 아마 지난 10여 년 전부터 모든 대학들에 불어 닥친 평가와 경쟁 문화 때문에 그러하겠지만, 논문 수를 늘려나가기 위한 별 의미 없는 연구들이 대량생산되고 있음을 부인키는 어렵다. 이러다 보니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적실성 있는 기초연구는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아직까지 뿌리 깊은 칸막이식 연구 경향은 적실성 있는 연구를 더더욱 가로막고 있다. 칸막이식 연구는 단순히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과 협동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차원만의 문제는 아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일부 연구자들이 갖고 있는 ‘텃밭 정서’이다. 우리 분야는 우리만 연구해야 하는 것이지, 다른 분야 사람들이 연구하는 것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는 태도이다. 이러한 텃밭 정서가 없어지지 않는 한 융합은 고사하고 절름발이식 문제 진단과 교육으로부터 벗어나기 힘들다.

최근 들어 ‘대학 국제화’가 화두지만, 한국 사회과학이 이러한 국제화에 제대로 대응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스스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국제화를 위해 일부 대학에서 시행하고 있는 영어강의는 불가피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단순히 남의 나라의 교과서에 있는 내용을 영어로 전달한다고 해서 국제화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 ‘맨큐’의 경제학을 영어로 강의한다고 해서 국제화가 제대로 된다고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를 우리의 시각으로 분석하고 이를 영어로 강의해 줄 수 있다면 그 때야 제대로 된 국제화를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SSK 사업이 한국 사회의 근본문제를 깊숙이 들여다 볼 수 있는 연구, 우리 사회를 리드할 수 있는 정책적 함의가 큰 연구, 칸막이식 연구와 ‘텃밭 정서’를 벗어날 수 있는 연구, 그리고 우리 사회의 경험을 세계와 공유할 수 있는 연구들이 활성화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이를 위해서는 이른바 ‘텃밭 정서,’ ‘나눠먹기식 정서’가 평가과정에 끼어들 수 없도록 공정하고 엄격한 평가 틀과 심사과정을 만들어 나가길 기대한다.

하연섭 연세대·행정학과

미국 인디애나대에서 정책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교육부총리 정책보좌관, 연세대 국제처장을 역임했다. 저서로 『제도분석:이론과 쟁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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